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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5 시청(hôtel de ville)을 호텔(hôtel)로 오인, 하룻밤을 보낸 영국 관광객 [8]
2009/08/19 프랑스에서는 '브뤼셀'을 잘못 발음한다? [44] 2009/08/08 '웰빙'과 '리니지'라는 표기 분석 [9] 2009/04/03 Donald Knuth는 '커누스'일까, '크누스'일까? [30] 2009/04/01 제83차 외래어심의위 심의 결과 [7]
UK tourist trapped in French hall (BBC 보도, 영어)
Elle passe la nuit à l'hôtel... de ville (Europe1 보도, 프랑스어) 한 30대 여성 영국 관광객이 금요일 저녁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작은 마을 단마리(Dannemarie)에 도착했다. 투숙할 곳을 찾던 그는 Hôtel de Ville이라는 간판의 아름다운 건물을 발견했다. 프랑스어로 '오텔(Hôtel)'이면 '호텔' 아닌가? 영어의 Hotel도 프랑스어에서 온 단어이다. '빌(Ville)'은 '도시'란 뜻이니 Hôtel de Ville은 '도시의 호텔'이란 뜻으로 짐작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관광객은 체크인하기 전에 우선 화장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Hôtel de Ville은 프랑스어에서 '시청'이란 뜻이다. 단마리 시청 직원들은 관광객이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회의를 끝내고 모두 퇴근하면서 건물 문을 잠그고 나갔다. 혼자 건물 안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관광객은 불을 켰다 끄면서 바깥에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바깥에서는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짧은 프랑스어로 '여기 갇혔습니다. 문 열어주실 수 있나요?'라고 쪽지를 정문의 유리창에 남기고 대기실의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9시 반에 한 약제사가 그 쪽지를 발견하여 건물 관리인에게 알려 비로소 관광객은 '구조'될 수 있었다. 폴 묑바크(Paul Mumbach) 시장에 의하면 관광객은 프랑스어를 잘 못했지만 진짜 호텔을 찾아달라는 의도를 확실하게 전달했고, 시장은 멀리 떨어진 마을에 있는 호텔을 알려주어 관광객은 겸연쩍은 모습으로 단마리를 떠났다. 스위스와 독일 국경 근처의 인구 2500의 작은 마을인 단마리에는 당시 영업 중인 호텔이 없었던 것이다. 묑바크 시장은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시청'을 영어와 독일어로도 써붙여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호텔과 호스텔 우리가 보통 '호텔'로만 아는 프랑스어 hôtel은 현지에서 여러 다른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자. 고급 여관을 뜻하는 '호텔'과 상대적으로 값이 싼 숙박 시설을 뜻하는 '호스텔'은 각각 영어의 hotel과 hostel에서 온 외래어이다. 요즘에는 배낭여행을 하는 이들이 많아져 젊은 여행객을 위한 숙박 시설인 '유스호스텔(youth hostel)'도 친숙해졌다. '대접이 좋은'이란 뜻의 라틴어 hospitalis에서 유래한 후기 라틴어 단어 hospitale는 '숙박소'라는 뜻으로 쓰였다. 주로 환자나 죽음을 앞둔 이들을 수용하는 숙박소라는 의미에서 오늘날 '병원'을 뜻하는 프랑스어 '오피탈(hôpital)'과 영어 '호스피털(hospital)'이 유래했다. Hospitalis의 어근인 라틴어의 hospes는 '주인' 또는 '손님'을 뜻하는데 여기서 프랑스어와 영어의 hospice가 유래했다. '호스피스'는 '죽음에 가까운 이들을 위한 특수 병원'을 뜻하는 외래어이다. 한국어에서는 '호스트바'나 '호스티스' 등 술집에 관련된 이미지만 있지만 원래 '주인'을 뜻하는 영어의 host와 hostess, 프랑스어의 hôte와 hôtesse도 hospes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어에서 hospitale는 hostel로 형태가 변했다. 프랑스어에서 라틴어의 h는 묵음이 되었으니 ostel로 적는 경우도 많았다(오늘날 프랑스어에서는 h 발음 자체가 쓰이지 않는다). 이 hostel은 점차 오늘날과 같이 '여관'이란 뜻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고, 이 의미와 형태로 영어에도 전해졌다. 그 후 프랑스어에서 hostel의 s는 발음하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어에서 모음 뒤, 자음 앞의 s가 묵음이 된 사례는 꽤 많은데, 해당 모음에 ^와 같이 생긴 부호, 즉 악상 시르콩플렉스(accent circonflexe)를 붙여 원래 s가 있다가 사라진 것을 철자에 나타내게 되었다. 그래서 hostel은 hôtel로 표기하고 [ɔtɛl]이라고 발음하게 되었다. 이렇게 형태가 변화한 단어는 또다시 영어에 전해져 영어에서는 hostel과 hôtel 두 단어가 공존하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hôtel은 좀더 고급스런 여관을 뜻하는 것만 다를 뿐. Hôtel은 영어화되는 과정에서 부호가 생략되어 hotel로 쓰이게 되었다. 지금도 고풍스럽게 보이려고 영어에서도 hôtel이라고 쓰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의 복잡한 역사 때문에 hôtel은 프랑스어에서 '호텔' 뿐만이 아니라 '관저', '저택'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그래서 hôtel de ville은 '시청'이란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텔디외(hôtel-Dieu)', 즉 '신의 hôtel'은 예전에 '시립 병원'이란 의미로 많이 쓰였고 지금도 프랑스의 오래된 병원 가운데는 hôtel-Dieu라고 불리는 것이 많다. 프랑스어에서 들어온 영어 단어의 h 발음 영어에서 hostel은 [ˈhɒst(ə)l]로, hotel은 [hoʊˈtel]로 발음된다.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에 따르면 hostel은 사실 '호스틀' 또는 '호스털'로 적어야 하지만 이미 굳어진 표기인 '호스텔'을 표준으로 정했다. 이들이 처음 영어에 들어왔을 때는 프랑스어 발음을 흉내내어 h 발음을 하지 않았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history, humble, herb 등 프랑스어에서 온 단어의 h는 묵음이었다. 하지만 후에 표기에 이끌려 이런 단어에서도 h 발음을 하기 시작해서 오늘날 hostel과 hotel의 h는 묵음이 아니다. 대신 영국식 발음에서 hostel의 h는 언제나 발음하지만 상대적으로 최근에 들어온 hotel의 h 발음은 하지 않고 '오텔'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history의 h는 언제나 발음하지만 거기에서 파생된 historic, historical은 특히 영국에서 h를 묵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관사 a 대신 an을 써서 an historic, an historical이라고 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약이나 향료로 쓰는 식물을 뜻하는 외래어 '허브'의 어원인 herb를 발음할 때 영국에서는 h 소리를 내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h 소리를 생략한다. Honour/honor, honest, hour 같은 일부 단어에서는 프랑스어에서처럼 영어에서도 h 발음을 하지 않는다.
벨기에의 수도는 브뤼셀이다. 벨기에 북부에서는 네덜란드어, 남부에서는 프랑스어를 쓰는데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의 사용자 비율은 대략 3:2이다. 소수이지만 동쪽에는 독일어 사용자도 있으며 세 언어가 모두 공용어이다.
지도를 보면 수도 브뤼셀은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사용 지역 간의 경계선 북쪽에 있다. 하지만 브뤼셀과 수도권 지역에서는 프랑스어 사용자가 대다수이며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가 둘 다 공용어이다. 브뤼셀은 프랑스어로 Bruxelles이라고 쓰며 발음은 [bʁysɛl]이다. 발음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면 '브뤼셀'이다. 우리야 '브뤼셀'이라는 표기에 워낙 익숙하니 전혀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그런데 벨기에 남쪽의 이웃 프랑스에서는 Bruxelles을 [bʁyksɛl], 즉 '브뤽셀'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어에서 x라는 철자는 [ks]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으니 Bruxelles이라는 철자를 보고 발음이 '브뤽셀'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엄격하게는 '브뤽셀'은 틀린 발음으로 간주되고 현지에서 쓰는 발음인 '브뤼셀'을 옳은 발음으로 쳐주는 것 같다. 고유 명사를 포함한 프랑스어 사전에도 맞는 발음은 '브뤼셀'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프랑스어에서 틀리기 쉬운 것을 소개하는 책에도 '브뤽셀'이란 발음은 틀렸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프랑스 방송의 아나운서들도 '브뤼셀'이라고 발음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 올바른 언어 사용에 신경을 쓰는 이들, 한국으로 치면 '짜장면' 대신 '자장면'을 고집하는 이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만난 프랑스인들은 모두 벨기에의 수도를 '브뤽셀'이라고 불렀다. 방송에서도 '브뤽셀'이란 발음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심지어 '김대중' 같은 한국 이름도 한국어의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는 등 고유 명사 발음에 평소 각별한 신경을 쓰는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나시오날(Radio France Internationale)에서도 '브뤽셀'이란 발음을 들을 수 있다. 철자는 알아도 발음은 모른다 '브뤼셀' 혹은 '브뤽셀'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외국의 지명을 한글로 표기할 때 현지 발음을 알기 위해 같은 언어권의 사람들에게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어에서 '브뤼셀'이라는 표기가 굳어진 것은 네덜란드어 이름인 Brussel ([ˈbrʏsəl], '브뤼설')이나 결정적으로 영어 이름인 Brussels ([ˈbrʌs(ə)lz], '브러슬스')에서 [ks] 발음이 나지 않는 덕분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올바른 발음에 따른 표기가 되었다. 만약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프랑스에서 들리대로 '브뤽셀'이라고 표기를 정했더라면... 한글로 쓰인 지명은 자음동화('선릉'은 [설릉]이냐 [선능]이냐), 사잇소리 첨가('학여울'은 [항녀울]이냐 [하겨울]이냐) 등 일부 음운 현상을 빼면 발음을 예측하기가 쉽다. 한국어 발음과 한글 철자의 관계가 꽤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어 가운데는 표기만으로는 발음을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예가 많다. 비중이 큰 외국어 가운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 세 언어에 대해서는 철자 대신 발음 기호(국제 음성 기호)를 보고 한글 표기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영어 지명의 발음은 영어를 하는 사람에게 확인하기만 하면 되고, 프랑스어 지명의 발음은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에게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발음을 알만한 사람에게 확인해야 한다. 영국 사람 가운데 미국 아이오와 주의 Des Moines ([dɪˈmɔɪn], '디모인')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주 이름인 Arkansas ([ˈɑrkənsɔː], '아컨소', 표준 한글 표기는 '아칸소')의 발음도 잘 모르는 이가 꽤 될 것 같다. 반대로 아마 미국 사람 가운데 영국의 Warwick ([ˈwɒrɪk], '워릭')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고 Edinburgh ([ˈed(ə)nb(ʌ)rə], '에든버러')마저도 발음을 잘못 아는 이가 상당할 것 같다. 오스트레일리아의 Brisbane ([ˈbrɪzbən], '브리즈번')의 발음을 오스트레일리아를 잘 모르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잘 알려진 지명이 아니면 그 나라 안에서도 발음을 잘 모르기 쉽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 지방 출신이 아니면 자국의 Auxerres ([osɛʁ], '오세르'), Metz ([mɛs], '메스')도 '옥세르', '메츠'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철자를 보고 발음을 얼렁뚱땅 맞추는 것이다. 프랑스 동부의 독일어에서 유래한 지명, 미국 동부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 지명 같은 경우 철자가 어찌나 생소한지 외부인들은 올바른 발음을 절대 짐작 못하는 것이 많다. 지명의 발음이 워낙 불규칙적이니 지역 토박이들은 주변의 지명을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안다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삼는다. 그래서 외국어 지명의 한글 표기를 정할 때는 이런 지명들의 올바른 발음을 알려주는 지명 사전이 유용하다. 아쉽게도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지명 사전은 대부분 발음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그래도 나라 별로, 주 별로, 군 별로 지명의 발음을 알리는 사이트는 꽤 많이 찾을 수 있다. 맛보기로 몇 개만 소개한다. 개인 홈페이지의 일부인 것도 있어 얼마나 믿을만한 자료인지는 모르지만 이들 언어에서 지명의 올바른 발음을 알아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The Columbia Gazetteer of the World Online (영어, 유료 회원가입 필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지명 (영어) 미국 메릴랜드 주의 지명 (영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지명 (영어)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지명 (프랑스어)
2000년을 전후해서 이른바 '웰빙 열풍'이 불었을 때 이 '웰빙'이란 신조어를 매우 어색해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에서 온 외래어인 것 같기는 한데 원래 표현은 뭘까? 설마 well-being을 한글로 표기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면 분명히 '웰비잉'일 텐데?
꼭 표기 문제가 아니라도 좀 의아한 신조어였던 것은 분명하다. Well-being이라는 영어 표현은 말 그대로 '잘 있음', 즉 '복지'를 뜻하는데 그렇다고 welfare처럼 고급스럽거나 전문용어 같은 느낌은 없이 평이하게 쓰인다. 예를 들면 '정신적인 건강'을 emotional well-being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것을 건강한 생활 양식(특히 의식주)에 관련된 좁은 의미로 따와서 너도나도 '웰빙'을 찾는 모습은 좀 어색해 보였다. 거꾸로 미국에서 'jal isseum' 열풍이 분다고 생각해보라. 본론으로 돌아가서 well-being의 발음을 살펴보자. 국제 음성 기호로 나타내면 [ˌwɛl.ˈbiː.ɪŋ], 세 음절의 단어이다.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서 사전에서는 보통 생략하는 음절 구분 표시(.)도 넣었다. '웰비잉'이라고 적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다. 그렇다면 왜 '웰빙'이라고 적었을까? 평소에 사용하는 인터넷 영어사전에서 well-being의 발음을 찾아보라. 아마 [wélbíːiŋ]이라고 나와있을 것이다. 즉 being의 앞 음절의 모음을 [iː]로, 뒤 음절의 모음을 [i]로 나타낸 것이다(í에 붙은 악센트 부호는 음절에 강세가 오는 것을 나타낸다). 이를 보면 두 음절의 모음은 음가가 똑같고 길이만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íːi]는 음절 구분 없이 하나의 장모음인 것으로 알기 쉬운데, 장모음은 따로 나타내지 않는다는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에 따라 '이' 한 음절로만 적어야 된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하지만 영어에서 see의 장모음 [iː]와 sit의 단모음 [ɪ]는 길이 뿐만이 아니라 음가도 확실히 다르다. 단모음 [ɪ]를 발음할 때 혀는 [i]를 발음할 때보다 조금 더 입 안쪽으로 온다. 한국어의 '이'는 [i]로 see의 장모음과 음가는 같지만 길이가 짧아서 구별된다. [ɪ]는 한국어에 없는 모음이다. 흉내내려면 '이'보다는 혀의 위치를 약간 '에'나 '으'를 발음할 때에 가깝게 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영어사전 대부분은 이 [ɪ] 모음을 그냥 [i]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영어에서 [i]는 장모음에만 오고 [ɪ]는 단모음에만 오니 기호 수를 줄이기 위해 각각 [iː], [i]로 쓰던 예전 습관을 아직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단순화된 표기 때문에 발음을 잘못 알기 쉽다고 하여 1977년 English Pronouncing Dictionary를 시작으로 [iː], [ɪ]와 같이 음가의 차이와 길이의 차이를 둘 다 나타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해리 포터》의 프랑스인 억양 흉내내기 러시아어권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어의 '오'와 '어' 발음을 잘 구별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오'와 '어'의 구별이 매우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i]와 [ɪ]의 구별이 없는 언어를 하는 이들은 영어를 배울 때 이들을 혼동하거나 똑같이 발음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에서는 의미 있는 구별이다. ![]() 마법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의 아동 소설 해리 포터(Harry Potter) 연작에서는 대화 내용을 쓸 때 방언이나 외국인들이 영어를 할 때의 억양을 흉내내어 적는 경우가 많다. 네번째 소설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에서는 프랑스 마법 학교의 학생들이 영국의 마법 학교에 찾아오는 내용이 있는데, 프랑스인들의 대화 내용은 프랑스식 억양을 흉내내어 적었다. 프랑스인들은 영어의 h 발음을 생략한다든지 유성음 th를 z로 대체하는 것 외에도 영어의 단모음 [ɪ] 대신 장모음 [iː]를 쓰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예를 들어 "Is it over?" 대신 "Eez eet over?"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프랑스어에서도 한국어에서처럼 [ɪ] 모음이 없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하면 보통 [i]로 대체하여 발음하고, 이게 영국인들에게는 특이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영어를 하면서도 sit의 모음을 see의 모음과 비슷한 음가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성악을 할 때이다. 성악에서는 이탈리아어의 모음 [a e i o u]를 좋은 소리를 내는 모음으로 쳐주기 때문에 일부러 보통 말할 때와 다르게 sit의 모음을 [i] 비슷하게 발음할 때가 많다. 또 오스트레일리아 영어에서 쓰는 sit의 모음은 다른 영어권 나라 사람들이 듣기에는 see의 모음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래서 '시드니(Sydney)'를 농담 삼아 Seednee라고 표기하기도 한다(Sydney [ˈsɪd.ni]의 앞 음절은 sit의 모음, 뒤 음절은 see의 모음을 쓴다). 오스트레일리아 영어에서 sit 모음과 see 모음은 주로 길이로만 구별되는 것이다. '리니지'는 맞는 표기일까? (도마도님의 지적에 따라 설명 일부 수정, 보강) 롤플레잉 게임 '리니지'는 동명 만화 《리니지(Lineage)》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lineage의 영어 발음은 ['lɪn.i(ː).ɪdʒ]이다. 빨리 발음하면 두 음절인 ['lɪn.iɪdʒ]가 되는데, 뒤의 두 모음이 [iɪ]라는 독특한 상승 이중모음으로 축약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축약 과정을 거친 [i]는 반모음 [j]로 실현되니 실제 발음은 ['lɪn.jɪdʒ]이고, 영어에서 [jɪ]는 보통 이중모음이 아니라 반모음과 단모음의 결합으로 분석한다. [i]가 축약 과정을 통해 반모음 [j]로 변모하듯 [u]는 반모음 [w]가 된다. Influence는 원래 ['ɪn.flu.əns] 세 음절이지만 축약되면 ['ɪn.flwəns] 두 음절로 발음된다. 사실 lineage나 influence 같은 단어가 세 음절로 발음되느냐, 두 음절로 발음되느냐의 경계는 모호하다. 비슷한 예로 영어의 fire도 두 음절인 [faɪ.ə]로 발음될 수도 있고 삼중모음(!)을 써서 한 음절인 [faɪə]로 발음될 수도 있다. 영국식 발음에서는 특히 [faə]로 평탄화(smoothing)가 되는 일이 잦다. ['lɪn.i(ː).ɪdʒ]라는 발음만 따지면 한글로는 '리니이지'라고 쓰는 것이 맞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모음 자체가 다르고, 음절도 구별되기 때문에 '리니이지'처럼 n과 g 사이의 모음을 나눠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 ['lɪn.jɪdʒ]라는 발음은 '리니지'라고 적어도 된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분명히 [iɪ]는 단순한 장모음이 아니라 첫 부분과 끝 부분의 음가가 다른 이중모음이다. 하지만 이중모음인 이상 한 음절로 발음되고 [i]와 [ɪ] 모두 한글로는 '이'로 적게 되니 이중모음 전체를 '이' 하나로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영어의 so 같은 단어에 나오는 이중모음 [oʊ]는 각 부분의 한글 표기는 '오'와 '우'로 다르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 '오'로만 적도록 하고 있지 않나? [ji]는 '이'로 적게 되어 있는데 앞의 [n]과는 어떻게 합치느냐에 따라 '리니지'가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lineage의 발음을 두 음절인 ['lɪn.jɪdʒ]라고 봤을 때 '리니이지'와 '리니지' 가운데 어느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워낙 특이한 경우이기 때문에 선례를 찾기도 힘들다. 세 음절인 ['lɪn.i(ː).ɪdʒ]를 원 발음으로 쳐 '리니이지'로 적는 것이 맞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리니지'가 틀린 표기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well-being도 비슷한 이유로 '웰빙'이라고 적을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하실 수 있겠다. 하지만 well-being에서는 be 음절에 강세가 오기 때문에 being이 한 음절로 축약되지 않는다. 사실 partying [ˈpɑː.ti.ɪŋ]처럼 [i]가 든 음절에 강세가 오지 않는 경우에도 -ing이 앞 음절과 축약되지 않는데, 이건 -ing이라는 접미사의 발음 특성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 Donald Knuth는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의 저자이고 TeX 조판 시스템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름의 한글 표기를 놓고 많은 혼란이 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실린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Knuth는 'Ka-NOOTH'라고 발음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을 번역한 류광은 '도널드 커누스'라는 표기를 택했다. 그는 크누스, 커누스, 카누스라는 글을 통해 표기를 '커누스'로 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 크누스와 커누스가 남았습니다. 저도 크누스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도은이 아버님 글에 나온 것과 거의 같은 이유에서요. 간단히 말하면 KaNOOTH의 a는 K가 묵음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번역 막바지까지도 원고에 크누스라고 했었습니다.여기서 언급한 도은이 아버님 글은 크누스, 크누쓰, 커누스, 커누쓰라는 글이다. 그 글에서는 '크누스'라는 표기가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Ka의 "a"는 "K"를 읽어달라는 의미이고, Ka가 한 음절이라 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분명 한 음절이 되는 것이 틀림없었다면 당연히 KA라고 자신있게 썼을 것이다) K와 N 사이에 "어떤 모음"이 있는 듯이 읽으라는 요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K가 소리가 난다는 것이지 "a"가 /ɨ/인지 /ə/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였을 거라 짐작한다. 이 "어떤 소리"는 'ㅡ'로도 'ㅓ'로도 쓸 수 있는 것일테지만 생각건대 'ㅓ'는 "약화된 모음"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소리일 것이다. (지역간 개인간에 'ㅓ'는 조음 위치의 편차가 너무 크지 않나?) 게다가, 개인 발음에 의하면, "ㅓ->ㅜ"는 긴장도가 너무 크다. "ㅡ->ㅜ"가 적당하다!!! 'ㅜ' 모음 음절 앞에서 'ㅓ'는 과장된 음절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도 이 표기는 적절하지 않다. Ka-NOOTH의 의미 각 자모가 음소 하나에 대응되는 한글과 달리 영어는 철자와 발음의 대응이 매우 불규칙해 철자만으로는 발음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그래서 사전에서는 국제 음성 기호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국제 음성 기호를 모르니 발음을 적을 때 비교적 발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철자를 바꿔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LaTeX이 [ˈleɪ.tek], 즉 '레이텍'으로 발음된다고 설명하고 싶으면 LAY-teck이라고 쓰는 방식이다. 영어를 하는 일반인은 lay라는 단어를 국제 음성 기호로 [leɪ]라고 쓴다는 것은 몰라도 어떻게 발음되는지는 안다. 또 teck이라는 철자는 check [tʃek]에서 첫 자음만 [t]로 바꾼 것과 같이 발음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LAY를 대문자로 써서 첫 음절에 강세가 온다는 것을 나타낸다. 영어에서는 어느 음절에 강세가 오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이를 통상적으로 대문자를 사용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니 Ka-NOOTH의 a를 소문자로 적은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Ka라는 음절에는 강세가 오지 않고 NOOTH에 강세가 온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며 Knuth가 고유명사이고 또 'Ka-NOOTH'가 출처에서는 문장 첫머리에 왔기 때문에 K는 대문자로 썼기 때문에 우연히 a만 소문자로 적게 된 것이다. 그러니 a만 소문자로 적은 것을 가지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 a는 canal의 첫 음절과 같은 [ə]를 나타낸다고 알려왔다고 하는데, 이는 철자를 바꿔써서 발음을 나타낼 때 통상적으로 쓰는 방법이다. [ɑ]라는 발음을 표현하려면 보통 ah로 적고, [eɪ]는 보통 ay로 적는다. a만 쓰면 보통 [ə]를 나타낸다. 또 nooth는 tooth [tuːθ]의 첫 자음만 [n]으로 바꾼 것과 같은 발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Ka-NOOTH라는 설명은 [kə.ˈnuːθ]라는 발음을 나타낸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커누스'가 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θ] 발음을 'ㅅ'으로 옮기는 것에 관한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영어의 음운 제약 그럼 '크누스'라는 표기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영어에서 /kn/이란 자음군이 음절 첫머리에 올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각 언어의 음운 체계는 어떤 음소가 있는지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각 음소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칙, 즉 음운 제약도 음운 체계의 일부이다. 영어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영어에서 음절 첫머리에 올 수 있는 음소는 다음과 같다.
음절 첫머리에 허용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호한 자음군도 있다. /sr/의 경우는 '무성 마찰음+/j/ 이외의 접근음'에 해당하므로 영어를 하는 사람이라면 발음이 특별히 어려운 자음군은 아니다. 하지만 외래어를 제외한 영어 단어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니 보통 /sr/라는 발음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Sri Lanka와 같은 단어의 'sr'는 사람에 따라 /sr/로 발음하기도 하고 shrimp 같은 단어에서 쓰는 비슷한 자음군인 /ʃr/로 대체하여 발음하기도 한다. /kn/이란 자음군은 어떨까? /kn/은 /sr/와 달리 위에서 나열한 어느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영어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kn/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그래서 Knuth 같은 이름에서 k와 n을 모두 발음해야 할 경우 삽입 모음 [ə]를 넣어 [kə.ˈnuːθ]와 같이 발음한다. 고대 영어에는 /kn/이란 자음군이 있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know, knee, knight와 같이 kn으로 적는 철자는 원래 고대 영어에서 실제 /kn/으로 발음했다. 하지만 영어의 음운 체계가 변화를 겪으면서 모두 /n/으로 발음하게 되었다. 독일어를 비롯한 다른 현대 게르만어파 언어에서는 /kn/이란 자음군이 보존되어 있다. 영어의 knee에 해당하는 독일어 Knie는 [kni:], 즉 '크니'로 발음된다. 독일어 등 /kn/ 자음군이 있는 언어를 아는 사람은 영어를 할 때도 /kn/ 자음군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Knuth라는 이름도 [knuːθ]로 발음할 것이다. 이들의 발음을 따른다면 '크누스'라는 표기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크누트 1세의 예 기존 외래어 표기 용례 가운데 그나마 참고할만한 사례는 크누트 1세(Cnut I)의 경우이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여기서 별표(*)는 해당 표기가 관용 표기 존중 등의 이유로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Cnut 일세. *크누트 일세 : 잉글랜드의 왕(?~1035). 그런데 이 크누트 1세는 잉글랜드 뿐만이 아니라 덴마크, 노르웨이의 왕이었으며 스웨덴인 일부도 통치했다. 덴마크어로는 Knud, 노르웨이어와 스웨덴어로는 Knut라고 부른다. 이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각각 '크누드', '크누트'이다. 표기를 '크누트'로 정하게 된 데에는 이것이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Longman Pronunciation Dictionary에 따르면 Cnut의 영어 발음은 [kə.ˈnjuːt]이다. /kn/ 자음군을 허용하지 않고 [ə]를 삽입한 발음이다. 사실 영어권에서 크누트는 Cnut라는 철자보다는 Canute라는 철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Canute는 [kə.ˈnjuːt] 또는 [kə.ˈnuːt]로 발음된다. 이를 외래어 표기법 규정에 따라 적으면 '커뉴트' 또는 '커누트'가 될 것이다. 그러니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서 별표를 붙여 실제 발음에 따른 표기가 아니라는 것을 밝힌데다 다른 언어의 발음의 영향을 받았을만한 사유가 충분히 있는 '크누트'라는 표기는 영어 이름의 /kn/ 자음군을 처리하는데 참고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ə]는 '으'로 적을 수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영어의 약화된 모음인 [ə]는 언제나 '어'로 적는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지금까지의 수많은 영어 표기 용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도은이 아버님 주장은 [ə]를 '으'로도 적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영어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어 방언에서는 약화된 모음이 중모음에 가깝냐 고모음에 가깝냐에 따라서 두 가지 있다. 이 가운데 중모음은 /ə/로 적고 고모음은 영국에서는 보통 /ɪ/로, 미국에서는 보통 /ɨ/로 적는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전자는 '어', 후자는 '이'로 적는다. 여기서 고모음 /ɪ/~/ɨ/는 한국어의 '으'에 가깝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로 통일하고 있다. 예를 들어 captain [ˈkæp.tɪn]의 둘째 모음은 사실 약화된 모음인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캡틴'으로 적는다. 영어의 이 두 가지 약화된 모음 가운데 어느 것이 쓰이는지는 방언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발음에서는 둘이 합쳐졌고, 미국 발음에서는 영국 발음에 비해 약화된 모음이 고모음보다는 중모음으로 발음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Knuth에 삽입되는 모음은 분명히 [ə]이다. Knuth는 절대 [kɪ.ˈnuːθ]로 발음되는 일이 없다. 그러니 여기서는 영어의 [ə]로 한정해서 얘기하겠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의 [ə]를 '으'로도 적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몇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 듯하다. 일단 영어에는 l, m, n이 성절 자음이 될 수 있다. 모음이 따로 없이 이들이 음절의 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음이 없으니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한국어의 삽입 모음 '으'를 사용하여 표기한다. 예를 들어 little [ˈlɪt.l]은 '리틀', rhythm [ˈrɪð.m]은 '리듬', prison [ˈprɪz.n]은 '프리즌'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l, m, n에 [ə]를 붙여 [əl], [əm], [ən]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사전에서는 편의상 가능한 여러 발음 가운데 가장 흔한 하나만을 적는 일이 많다. 그래서 rhythm의 경우 보통 발음을 [ˈrɪð.əm]으로만 적는다. 이 발음만 보고는 '리듬'에서는 [ə]를 '으'로 적은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리듬'이라는 표기는 발음을 [ˈrɪð.m]으로 보고 정한 것으로, [ə]를 '으'로 적은 것이 아니다. 또 영어의 자음군의 발음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 위에서 봤듯이 영어에는 현대 한국어에는 없는 다양한 자음군들이 있다. 이런 자음군들은 말 그대로 자음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영어에서는 그 사이에 어떤 모음도 삽입하지 않고 발음한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그런 자음군이 없으니 '으'를 삽입하여 표기한다. 영어의 star는 /s/와 /t/ 사이에 모음이 없이 한 음절로 발음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스타'로 적고 두 음절로 발음한다. 현대 한국어에서 'ㅅ' 다음에 'ㅌ' 발음이 바로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영어의 자음군 표기에 삽입하는 '으'는 영어의 어떤 모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한국어에 비슷한 자음군이 없기 때문에 한국어로 발음할 수 있도록 넣는 것이다. 이상은 영어의 외래어 표기법 표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른 언어에서는 [ə]를 '으'로 적는 일이 있다. 프랑스어의 [ə]는 '으'로 적도록 되어 있다. 프랑스어에서 [ə]로 통상적으로 적는 음은 철자상으로는 e로 나타내며 사실 [œ]에 음가가 가깝다. 그런데 흔히 '묵음 e (e caduc)'라고 부르는 이 e는 경우에 따라 [ə]로 발음하기도 하고 탈락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ppeler 같은 단어는 프랑스 북쪽에서는 보통 [a.ple], 남쪽에서는 보통 [a.pə.le]라고 발음한다. [ə]를 '으'로 적기로 함으로써 둘 다 '아플레'로 표기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비슷한 이유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고대 히브리어의 '슈바'(도은이 아버님이 '셰와'라고 부른 음) 역시 '으'로 적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히브리어의 슈바는 시대에 따라 [ə] 비슷한 모음으로 발음되기도 했고 탈락하기도 했으며 개역한글판을 비롯한 주요 성경 번역에서도 '으'로 적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의 외래어 표기에서 [ə]를 '으'로 적은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국 수학자 De Morgan을 '드모르간'이라고 적은 예가 있지만 이 경우는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따른 것이 아니라 관용 표기를 그대로 쓰는 것이 확실하다(규정을 따르자면 '더모건'이라고 적어야 한다). 그러니 발음을 근거로 Knuth를 '크누스'로 적자고 주장하려면 원 발음이 [knuːθ]라고 봐야 한다. 원 발음이 [kə.ˈnuːθ]라 하면서 이를 '크누스'로 적자고 할 수는 없다. 발음 대신 철자를 따라 적는다면? 영어에서 [ə]는 'a', 'o', 'e' 등 철자상의 모음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Knuth에서는 [ə] 발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낼만한 철자상의 모음이 없다. 그래서 '크누스'로 적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분명히 [ə]가 선택적으로 발음되는 경우에는 철자상으로 모음으로 나타날 경우에는 '어'로,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으'로 적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Logan을 '로건'으로 적는 것은 a라는 철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little을 '리틀'로 적는 것은 t와 l 사이에 모음이 없다는 사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button, sudden, Johnson의 경우처럼 예외도 매우 많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ə]가 들어간 발음과 탈락된 발음이 둘 다 가능할 때만 해당되는 얘기라는 것이다. 영어 화자 절대 다수에게는 Knuth [kə.ˈnuːθ]의 [ə]는 생략할 수 없는 모음이니 이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영어는 철자와 발음의 관계가 매우 불규칙하여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철자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이 발음에 따라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모르는 일반인은 철자에 따라 적는다고 생각하기 쉽고, 실제로 흔히 볼 수 있는 영어의 한글 표기의 오류는 철자에 가깝게 써서 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려면 발음을 무시하고 철자에 가깝게 적자고 할 수는 없다. 결론 Knuth는 철자상의 kn을 /n/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 영어 이름으로는 예외적인 이름이다. 본인이 제시하는 발음은 [kə.ˈnuːθ]이고, 대다수 영어 화자도 kn의 /k/와 /n/을 모두 발음하라고 하면 그렇게 삽입 모음 [ə]를 넣어 발음한다. 이를 따르면 '커누스'라는 표기가 맞다. 독일어 등 다른 언어를 접하여 /kn/ 자음군을 발음할 수 있는 일부 영어 화자들은 [knuːθ]라고 발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Knuth에서는 [ə] 모음이 철자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무시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크누스'라고 적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kn/ 자음군을 발음할 수 있는 일부 화자를 설정하는 것은 조금 억지라는 생각이다. 외국어 이름을 볼 때 그 언어의 발음을 아는 사람들은 영어에 없는 발음이더라도 흉내내곤 한다. 그러나 Knuth를 외국어 이름으로 볼 것 같지는 않다. 만약 Knuth를 덴마크어나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독일어 이름으로 본다면 이들 언어에는 [θ] 발음이 없으므로 '크누트'라고 표기하게 되어 실제 영어 발음에서 멀어진다. 그러니 Knuth는 영어 이름으로 봐야 하며 대다수 영어 화자의 발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본인이 제시한 발음이 [kə.ˈnuːθ]라면 이에 따라 '커누스'로 적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 하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사람들이 이 표기를 받아들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국립국어원 게시판에서:
제83차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 심의 결과이 외에도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다룬 바 있는 아이슬란드 총리 Jóhanna Sigurðardóttir는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로, 가나의 대통령 John Evans Atta-Mills는 '존 에번스 아타밀스'로 적기로 결정했다. John, Evans, Mills는 영어 이름으로 보고 표기했다. Atta는 영어 이름이 아니라 아칸어(Akan)에서 온 듯하다. 가나의 공용어는 영어이며 현지 언어 가운데는 아칸어의 사용자가 제일 많다. 타이 총리 อภิสิทธิ์ เวชชาชีวะ (Abhisit Vejjajiva)는 '아피싯 웨차치와'로 표기가 결정되었다. '웻차치와'로 적지 않은 것은 타이어 표기 규정 가운데 같은 계열의 자음이 겹쳐 있을 때(pp, tt, pph, tth)에는 겹치지 않은 경우와 같이 적는다는 규칙을 파찰음인 ช (ch)에도 적용했기 때문인 듯하다. 몰도바의 수도 Chişinău에는 루마니아어 표기 규정을 적용하여 '키시너우'로 적기로 했다. 몰도바의 공용어는 몰도바어라고 부르지만 언어학적으로 루마니아어와 동일 언어이며 정치적인 이유로 이름이 다를 뿐이다. 제25차 회의(1998년 12월 15일)에서 정한 국명, 수도명, 화폐명, 공용어명 목록에서는 '키시네프'라고 정했었는데, 이는 아마 러시아어 이름 '키시뇨프(Кишинёв)'의 로마자 표기인 Kishinev에서 왔을 것이다. 최근 정치적 사태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마다가스카르와 관련된 인명은 이번 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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