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뉴릿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Quentin Tarantino 는 ..
by 질문 at 12/15 감사합니다. by ghistory at 11/29 Kjoonlee님 반갑습니다.. by 끝소리 at 11/29 Stephen은 사실 영어에.. by 끝소리 at 11/29 영어의 bargain은 [ˈ.. by 끝소리 at 11/29 답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by 끝소리 at 11/29 끼어들어 죄송합니다만, .. by 서임현 at 11/10 조금만 더 여쭤 보지요.... by 서임현 at 11/10 안녕하세요, User:Kjoo.. by Prentice at 11/06 고맙습니다. by 서임현 at 11/05 최근 등록된 트랙백
Mc까비의 생각
by mckabi's me2DAY kabbala의 느낌 by kabbala's me2DAY 바톤 받았어요 >.< 기.. by 새퍼 양파의 런던 일기 이글루스 문답 바통 넘.. by finnegans cake 문답 바통 by 추유호's encyclopedia 끝소리님으로부터 바통 .. by 대체로 무해함 찌아찌아족 과연 한글로.. by Hanury.NET 소수민족의 한글 채택과.. by 이쁜왕자 만쉐~~ ▣ 한글의 세계화, 인.. by 초하뮤지엄.넷 choha.. 어딘가 좀 찜찜 by 漁夫의 'Questo e quell.. 이전블로그
이글루링크
the releaser in the rye
펜큐어의 거센소리 슈타인호프의 홀로 꿈꾸.. 현재영토 : 캐나다 런던 새퍼 양파의 런던 일기 finnegans cake 아안리양랑 파리13구님의 이글루 추유호's encyclopedia Lund life 대체로 무해함 이글루 파인더
|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대왕은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등의 집현전 학자들에게 한국의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음운서를 편찬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렇게해서 1448년 반포된 한국 최초의 음운서가 바로 《동국정운(東國正韻)》이다. 동국, 즉 한국의 바른 운을 제시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어떤 이는 이 《동국정운》의 편찬을 두고 결국 훈민정음은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창제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한다. 거기까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음운학에 조예가 깊던 세종대왕은 당시 조선에서 쓰이던 한자음에 많은 혼란이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를 위한 연구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신숙주가 쓴 《동국정운》 서문의 일부를 보자(원문: http://cc.kangwon.ac.kr/~sulb/kl-data/dongguk.htm). 대저 음 자체에 異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같음과 다름이 있는 것이며, 사람 그 자체에 異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 에 異同이 있는 것이니 대개 지세가 다르면 기후가 다르며, 기후가 다르면 사람들이 숨쉬는 것(발음)이 다르니, 동쪽과 남쪽 사 람은 齒音과 脣音을 많이 쓰며, 서쪽과 북쪽 사람은 목소리(喉音)를 많이 쓰는 것이 곧 이것이다. 그래서 드디어 온 세상의 문물 제도를 (중국의 제도처럼) 통일시킨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성음은 같지 않은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까지 한국에서 쓰이던 한자음에 대해서는 이두나 향찰 같은 차자 표기나 지명, 인명 등의 한자 표기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동국정운》 서문을 보면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느정도 알 수 있다. 표음문자가 없고 그렇다할 한국식 운서도 없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국정운》을 편찬한 것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외래어 표기법을 마련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자음 표준화에 대해 세운 기본 방침을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 편으로 속습을 채집하고 널리 전적을 상고하여 널리 쓰는 음을 근본으로 삼고, 古韻의 반절에도 맞도록 하며, 자모 칠음 청탁 사 성등에 걸쳐 그 본말을 밝히지 않음이 없도록 해서 그 올바른 것을 회복하라고 명령하시었다. 즉 당시 민간에서 널리 쓰이던 발음도 고려하되 중국의 음운학에 따른 음운 체계도 규칙적으로 반영하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한자음을 동국정운식 한자음이라고 하는데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 초기 한글 문헌의 주음에 사용되었지만 너무 중국의 음운학 체계에 맞추려 한 나머지 당시 쓰이던 현실 한자음과는 동떨어진 표기가 되었다. 그래서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쓰이지 않게 되고 16세기부터는 현실 한자음에 따른 표기가 일반화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