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어를 적는 문자를 키릴 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꾼다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 금요일인 10월 26일 카자흐어를 적는 문자를 현재의 키릴 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꾸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령을 포고했다(러시아어 원문, 관련 영어 기사). 이 법령에서는 2025년까지 점진적으로 로마자로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이를 감독할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으며 새롭게 쓸 카자흐어 로마자를 다음 대조표와 같이 확정했다.
카자흐어 로마자 전환을 지시한 법령 569호에 첨부된 대조표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던 카자흐스탄은 1991년 독립을 선포했다. 독립국가연합을 창설하고 소련 해체를 확정지은 알마아타 협정도 얼마 후 당시 카자흐스탄 수도이던 알마티(옛 이름 알마아타)에서 체결되었다.

카자흐스탄 헌법은 국가 언어(state language)를 카자흐어로 지정하는 동시에 국가 기관과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러시아어를 카자흐어와 함께 동등한 자격으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헌법상으로는 카자흐어가 공용어, 러시아어가 준공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뒤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어가 제1공용어 행세를 한다.

카자흐어는 현재 러시아어처럼 키릴 문자로 적는다. 하지만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카자흐어와 인도·유럽어족 슬라브어파에 속하는 러시아어는 계통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쓰는 소리도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현행 카자흐어 키릴 문자는 카자흐어에서 쓰는 소리를 모두 나타낼 수 있도록 러시아어 키릴 문자에서는 쓰지 않는 Ә/ә, Ғ/ғ, Қ/қ, Ң/ң, Ө/ө, Ұ/ұ, Ү/ү, Һ/һ, І/і 등 아홉 글자를 추가로 쓴다(이 가운데 І/і는 1918년 철자 개혁 이전에는 러시아어에서도 썼던 글자로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어와 벨라루스어에서는 계속 쓰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어 키릴 문자 가운데 В/в, Ё/ё, Ф/ф, Х/х, Ц/ц, Ч/ч, Щ/щ, Ъ/ъ, Ь/ь, Э/э는 카자흐어 토박이말에서는 쓰지 않고 주로 러시아어에서 들어온 말에 쓰인다. 카자흐어 키릴 문자에 추가된 문자인 Һ/һ 역시 토박이말에서는 쓰지 않고 주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서 들어온 말에 쓰인다.

튀르크어 문자의 초기 역사

카자흐어처럼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언어로는 터키에서 쓰는 터키어가 대표적이고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쓰는 위구르어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주요 튀르크어 대부분은 옛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지배를 받던 나라에서 쓰인다. 카자흐어를 비롯해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르바이잔어와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어,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어, 키르기스스탄의 키르기스어는 모두 튀르크어족에 속하며 각 나라의 공용어로 쓰인다(중앙아시아의 나머지 한 나라인 타지키스탄의 타지크어는 튀르크어가 아니라 페르시아어의 일종이다). 또 러시아 연방의 구성 공화국인 타타르스탄에서 러시아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이는 타타르어, 현재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크림 자치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이는 크림타타르어도 튀르크어족에 속한다.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튀르크어 기록은 8세기경 등장한 돌궐어 비문이다. 돌궐 문자는 당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주요 교통어였던 인도·유럽어족 이란어파 언어인 소그드어를 적는 문자에서 따왔다. 돌궐을 멸망시킨 회골(위구르 제국)의 언어를 적기 위해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쓰인 회골 문자도 소그드 문자를 흘려 쓴 것에서 나왔다. 회골 문자는 후에 몽골 전통 문자와 만주 문자의 바탕이 된다. 회골(回鶻)은 오늘날 위구르(Uyghur)라고 부르는 이름의 옛 형태를 음차한 것이므로 이들을 그냥 위구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은 구별하는 것이 편리하다. 위구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으므로 역사에 나오는 회골과 오늘날의 위구르는 같은 튀르크족이고 활동 무대가 겹친 것 외에는 그다지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오늘날의 위구르어는 회골어에서 나온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튀르크어족 내에서도 완전히 다른 어파에 속한다.

옛 회골과 이름만 같은 오늘날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어는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로 적는다. 위구르어 뿐만 아니라 약 10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천 년의 세월 동안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언어는 보통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로 적었다. 튀르크족 대부분이 이슬람교와 함께 페르시아 문화를 고급 문화로 받아들이면서 그 문자를 빌려 자신들의 언어도 적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어도 소그드어처럼 이란어파에 속하는데 7세기 후반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랍 이슬람군에게 정복되었기 때문에 약 8세기부터 이전의 팔라비 문자 대신 아랍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페르시아어에서 쓰는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원래의 아랍 문자에 자음 글자 네 개를 추가한 것을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도 중국의 위구르어 외에 이란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쓰는 아제르바이잔어도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와 달리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를 쓰며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투르크멘인들이 쓰는 투르크멘어도 투르크메니스탄에서와 달리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를 쓴다.

아랍 문자는 모음을 따로 나타내는 글자가 없기 때문에 모음 표시가 극히 제한적이고 짧은 모음은 철자에서 아예 생략한다. 그러니 모음 소리가 풍부한 튀르크어 발음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보면 특정 방언의 발음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발음 차이가 많이 나는 방언도 같은 문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튀르크어에서 흔한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에서 들어온 말은 단순히 원어 철자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다.

그래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서 쓰인 오스만 튀르크어와 중앙아시아에서 쓰인 차가타이어 등 20세기 초까지 주요 튀르크어 기록은 대부분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로 남겨졌다. 물론 이 밖에도 시리아 문자, 아르메니아 문자, 히브리 문자, 그리스 문자가 튀르크어를 적는데 응용되기도 했으며 유럽에서는 로마자로 튀르크어를 기록하기도 했다. 14세기 초에 라틴어로 기록된 언어 교재인 《쿠만의 서(Codex Cumanicus)》는 헝가리 등지에서 살던 킵차크 튀르크계 민족인 쿠만인의 언어인 쿠만어를 로마자로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 치하의 튀르크어

16세기부터 이미 볼가강 유역 타타르스탄의 튀르크족을 지배하기 시작한 러시아 제국은 19세기 대대적인 정복 활동을 통해 캅카스와 중앙아시아로 영토를 크게 확장하면서 이들 지역의 튀르크족도 지배하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이들은 독립을 시도했으나 새로 들어선 볼셰비키 정부의 진압으로 실패했다. 볼셰비키 정부는 치하의 튀르크족이 단결하지 못하도록 이들 지역을 나누어 통치하기 시작했다.

캅카스의 튀르크족 다수 지역은 1918년 이웃 페르시아 아제르바이잔주의 이름을 따서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으로서 독립을 선포한 바가 있는데 1920년 볼셰비키 군에게 정복이 된 후에도 아제르바이잔이란 이름을 계속 썼다. 중앙아시아에서는 1920년대에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경계가 확정되었다. 이들은 1936년 키르기스스탄을 마지막으로 모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지위를 얻었다. 1922년 출범한 소련은 형식적으로는 이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이룬 연방이었다. 물론 소련 시절에는 모스크바의 중앙 정부가 실권을 쥐었기 때문에 이게 별 의미가 없었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모두 독립국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여담으로 러시아 제국에게 지배를 받은 역사가 가장 긴 타타르스탄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지위를 얻지 못하고 러시아에 속한 자치공화국에 그쳤기 때문에 1992년 국민투표에서 대다수가 독립을 지지했지만 독립을 얻는데 실패했다). 결국 현재의 중앙아시아 국경은 소련 시절 이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려 한 결과이다.

볼셰비키(후에 소련) 정부는 공산주의 교육을 위해 모든 민족에게 각자의 언어로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튀르크어와 페르시아어(타지크어)를 이슬람교의 영향을 상징하는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로 쓰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1926년 이들을 적기 위해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를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전통 문자를 쓰던 식자층의 특권은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전통 문자 교육을 주관하던 이슬람교의 영향력도 약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튀르크어와 페르시아어 뿐만이 아니라 아랍 문자로 썼던 체첸어와 인구시어, 아디게어를 비롯하여 몽골 회골 문자와 키릴 문자를 썼던 칼미크어, 키릴 문자를 썼던 압하스어 등 소련의 여러 비슬라브계 언어에 로마자를 도입하였다. 심지어 중국어도 한자 대신 로마자로 쓰는 Latinxua Sin Wenz '라틴화 신원쯔(신문자)'를 도입하기도 했다.

소련에서는 문자 언어의 표준화도 각 지역마다 독립적으로 이루어져 구성 공화국 단위로 카자흐어, 투르크멘어, 우즈베크어, 키르기스어로 나누어졌다. 그러면서 각 지역의 튀르크어 사이의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이 강조되었다. 예를 들어 우즈베크어는 모음조화가 있는 북쪽 방언이 아니라 페르시아어의 영향으로 모음조화가 사라진 남쪽 방언을 기준으로 표준화하여 다른 튀르크어와 차별화시켰다. 그리하여 로마자의 도입은 범이슬람주의와 범튀르크주의를 동시에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또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계승하여 튀르크어권의 맹주가 된 터키 공화국도 견제한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때까지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키 공화국에서도 이미 전통 문자를 버리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근대 터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 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일환으로 오스만 제국과 이슬람교의 전통을 상징하는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 대신 서유럽 문화를 상징하는 로마자를 도입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1928년 언어학자들을 만나 이 계획을 발표해 이듬해 1월 1일을 기준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엄청난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터키어를 쓰는 문자가 이처럼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이렇게 도입된 터키어 로마자는 소련에서 튀르크어에 쓰인 로마자와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어쨌든 전 세계 튀르크어 사용 인구 대부분이 다시 같은 문자권으로 들어온 셈이니 소련 입장에서는 범튀르크주의의 위협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1920년대에 각 민족의 언어를 포함한 민족 문화의 발전을 장려했던 소련의 정책은 1930년대 스탈린 치하에서 180도 바뀌었다. 민족주의자들은 숙청되었고 소련 전역에서 비러시아인에게도 러시아어를 의무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940년을 전후로 소련의 튀르크어를 적는 문자도 로마자 대신 러시아어와 같은 키릴 문자로 대체되었다. 정치적인 계산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로마자가 도입된지 고작 10여년 만이었다.

로마자를 쓴 1937년도 카자흐스탄 신문 《소치얄드 카자흐스탄(Sotsijaldь Qazaƣьstan》. Ƣ/ƣ, Ꞑ/ꞑ, Ə/ə를 비롯하여 키릴 문자의 연음 부호 Ь/ь 등을 쓴 당시의 독특한 로마자 철자를 확인할 수 있다.

독립 후 다시 로마자로

이런 역사 때문에 튀르크 민족주의자 가운데는 키릴 문자를 탄압의 상징으로 여기고 로마자를 다시 도입하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은 1991년 독립하자마자 공식 문자를 키릴 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꾸었고 1993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도 그 뒤를 따랐다. 아제르바이잔은 성공적으로 단기간에 로마자로 전환했지만 투르크멘어는 2000년까지 로마자 전환을 완료한다는 당초 계획에도 불구하고 아직 키릴 문자를 많이 쓴다.

우크라이나의 크림 자치공화국에서는 1997년 공식적으로 크림타타르어를 로마자로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한 후 키릴 문자가 다시 공식적으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1995년 로마자를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한동안 키릴 문자와 병행하다가 2000년까지 로마자 전용으로 간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키릴 문자가 많이 쓰이며 로마자 전용 시점은 2005년으로, 다시 2010년으로 계속 미루어졌다.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그동안 이따금 카자흐어는 로마자로 써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이웃 우즈베키스탄이 로마자 도입에 난항을 겪는 것을 보면서 실행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드디어 때가 왔다고 결심한 모양이다. 4월에 그는 학자들에게 2025년까지 키릴 문자를 로마자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카자흐어 로마자 시안을 주문했다. 지난달 그 시안이 의회에 소개되었고 몇 가지 수정을 거쳐 이번에 확정되었다.

옛 소련의 튀르크계 공화국 가운데 민족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터키에 가장 가까운 아제르바이잔과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중앙아시아에서는 그래도 가까운 투르크메니스탄은 비교적 단기간에 로마자를 도입할 수 있었던 반면 러시아계를 비롯한 비튀르크계 주민이 많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키릴 문자를 버리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편 러시아의 타타르스탄에서는 타타르어를 공식적인 용도로 키릴 문자 외에 로마자나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 등 다른 문자로 쓰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1999년 타타르스탄 공화국 정부는 2001년 도입을 목표로 로마자 철자법을 확정지었지만 러시아 연방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타타르어는 비공식적으로만 로마자로 쓴다.

주요 튀르크어 로마자 대조표
터키어아제르바이잔어투르크멘어크림타타르어타타르어우즈베크어카자흐어IPA
A aA aA aA aA aO o
/ɒ/
A a/ɑ/
-Ə əÄ ä-Ä äA aAʼ aʼ/æ/
B bB bB bB bB bB bB b/b/
C cC cJ jC cC cJ j-/ʤ/
J jJ jŽ žJ jJ jJ j/ʒ/
Ç çÇ çÇ çÇ çÇ çCH chCʼ cʼ/ʧ/
D dD dD dD dD dD dD d/d/
E eE eE eE eE eE eE e/e/
F fF fF fF fF fF fF f/f/ /ɸ/
G gG gG gG gG gG gG g/ɡ/ /ɟ/
Ğ ğĞ ğĞ ğĞ ğGʻ gʻGʼ gʼ/ɣ/ /ʁ/
H hH hH h-H hH hH h/h/
-X xH hX xX x/x/ /χ/
I ıI ıY yI ıI ı-Y y/ɯ/
İ iİ iI iİ iİ iI iI i/i/
K kK kK kK kK kK kK k/k/ /c/
-Q qQ qQ qQ qQ q/q/ /ɢ/
L lL lL lL lL lL lL l/l/
M mM mM mM mM mM mM m/m/
N nN nN nN nN nN nN n/n/
--Ň ňÑ ñÑ ñNG ngNʼ nʼ/ŋ/ /ɴ/
O oO oO oO oO oO oO o/o/
Ö öÖ öÖ öÖ öÖ öOʻ oʻOʼ oʼ/ø/
P pP pP pP pP pP pP p/p/
R rR rR rR rR rR rR r/r/
S sS sS s /θ/S sS sS sS s/s/
Ş şŞ şŞ şŞ şŞ şSH shSʼ sʼ/ʃ/
T tT tT tT tT tT tT t/t/
U uU uU uU uU uU uU u/u/
Ü üÜ üÜ üÜ üÜ ü-Uʼ uʼ/y/
V vV vW wV vV vV vV v/v/ /β/
----W wYʼ yʼ/w/
Y yY yÝ ýY yY yY yIʼ iʼ/j/
Z zZ zZ z
/ð/
Z zZ zZ zZ z/z/

로마자 표기안 분석

보통 로마자라고 하면 영어에서 쓰는 기본 로마자 스물여섯 자를 떠오른다. 그런데 언어마다 의미가 구별되는 소리의 단위, 즉 음소의 개수가 다르니 이들을 로마자에서 쓰는 글자와 일 대 일로 대응시키기는 어렵다. 그래서 한 글자가 여러 소리를 나타내기도 하고 여러 글자의 조합으로 한 소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어는 글자와 소리와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니 논외로 하고 글자와 소리의 대응이 훨씬 더 규칙적인 에스파냐어의 예를 들더라도 한 글자로 나타내기 곤란한 글자를 CH/ch, LL/ll처럼 두 글자의 조합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Ñ/ñ처럼 기본 글자에 부호를 더해서 나타내기도 한다. 아이슬란드어의 Ð/ð, Þ/þ, Æ/æ처럼 아예 새로운 글자를 추가한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영어에서 쓰는 J/j, W/w도 중세에 도입된 새 글자이며 U/u와 V/v의 구별도 중세에 도입된 것이다.

터키어에서는 기본 로마자에 자음 글자 Ç/ç, Ğ/ğ, Ş/ş와 모음 글자 Ö/ö, Ü/ü를 추가하였으며 소문자에도 점이 없는 I/ı와 대문자에도 점이 있는 İ/i를 구별한다. 그래서 대체로 한 소리는 한 글자로 나타낸다(대신 차용어에서 나타나는 소리 구별을 다 나타내지는 못한다). 이는 Ә/ә, Ç/ç, Ğ/ğ, Ş/ş, Ö/ö, Ü/ü를 쓰는 아제르바이잔어와 Ç/ç, Ä/ä, Ž/ž, Ň/ň, Ö/ö, Ş/ş, Ü/ü, Ý/ý를 쓰는 투르크멘어도 마찬가지이다. 우즈베크어는 기본 글자에 왼쪽 작은따옴표와 같은 모양의 기호를 붙인 Oʻ/oʻ, Gʻ/gʻ만 추가하였다.

터키의 카자흐인들은 카자흐어를 비공식적으로 로마자로 쓸 때 터키어 철자법을 흉내내어 여러 특수 기호를 쓴다. 하지만 이번에 확정된 카자흐어 로마자 철자법은 ç, ğ, ş, ö, ü, ı 같은 글자를 전혀 쓰지 않고 아포스트로피(apostrophe, 오른쪽 작은따옴표 같은 모양의 기호)를 붙인 Aʼ/aʼ, Gʼ/gʼ, Iʼ/iʼ, Nʼ/nʼ, Oʼ/oʼ, Sʼ/sʼ, Cʼ/cʼ, Uʼ/uʼ, Yʼ/yʼ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는 유니코드 문자 U+02BC ʼ MODIFIER LETTER APOSTROPHE를 썼는데 현실적으로는 문장 부호로 쓰이는 U+2019 ’ RIGHT SINGLE QUOTATION MARK가 더 입력하기 편해서 더 자주 쓰일 것으로 보인다.

아포스트로피 외에 다른 특수 기호는 전혀 쓰지 않고 W/w와 X/x를 제외한 기본 로마자 스물네 자만 활용한다는 점에서 카자흐어 키릴 문자가 러시아어에서 쓰지 않는 글자를 아홉 자나 추가해서 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본 로마자와 아포스트로피만 쓰면 특수 기호를 입력하기 위한 키보드나 글꼴 지원 같은 문제는 없다. 카자흐어 로마자 전환을 추진하면서 입력이 불편한 특수 기호를 쓰지 않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다른 튀르크어 로마자와 상당한 차이가 나며 글자와 발음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불편함이 있다.

카자흐어 문자 대조표
키릴 문자로마자아랍 문자음소
А аA aا‎/ɑ/
Ә әAʼ aʼٵ‎/æ/
Б бB bب‎/b/
В вV vۆ‎/v/
Г гG gگ‎/ɡ/
Ғ ғGʼ gʼع‎/ʁ/
Д дD dد‎/d/
Е еE eە‎/e/, /je/
Ё ёيو‎/jo/
Ж жJ jج‎/ʒ/, /ʐ/
З зZ zز‎/z/
И иIʼ iʼٸ‎/əj/, /ɪj/
Й йIʼ iʼي‎/j/
К кK kك‎/k/
Қ қQ qق‎/q/
Л лL lل‎/ɫ/, /l/
М мM mم‎/m/
Н нN nن‎/n/
Ң ңNʼ nʼڭ‎/ŋ/
О оO oو‎/o/, /wo/
Ө өOʼ oʼٶ‎/œ/, /wœ/
П пP pپ‎/p/
Р рR rر‎/ɾ/
С сS sس‎/s/
Т тT tت‎/t/
У уYʼ yʼۋ‎/w/, /ʊw/, /ʉw/
Ұ ұU uۇ‎/ʊ/
Ү үUʼ uʼٷ‎/ʉ/
Ф фF fف‎/f/
Х хH hح‎/χ/
Һ һH hھ‎/h/
Ц цتس‎/ʦ/
Ч чCʼ cʼچ‎/ʨ/
Ш шSʼ sʼش‎/ʃ/, /ʂ/
Щ щشش‎/ɕː/
Ъ ъ
Ы ыY yى‎/ə/
І іI iٸ‎/ɪ/
Ь ь
Э эە‎/e/
Ю юيۋ‎/jʉw/, /jʊw/
Я яيا‎/jɑ/

지난달 발표된 첫 시안에서는 아포스트로피마저 쓰지 않았다. 대신 두 글자의 조합을 쓰는 전략을 썼다. aʼ, gʼ, nʼ, oʼ, sʼ, cʼ, uʼ는 각각 ae, gh, ng, oe, sh, ch, ue로 적었고 yʼ는 w로 적었으며 최종안에서 iʼ로 적는 음의 일부는 j로, 일부는 i로 적었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모호한 경우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예브게니 드로뱌스코(Евгений Дробязко Yegeniy Drobyazko)라는 페이스북 사용자는 асхана '아스하나'와 намазхана '나마즈하나'를 각각 ashana, namazhana로 쓰면 *ашана '아샤나', *намажана '나마자나'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원문). 최종안에서는 ш와 ж를 각각 sʼ와 j로 적으니 이런 혼동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

또 키릴 문자의 У/у를 W/w로 적기로 한 것도 논란이 되었다. 키릴 문자 у는 카자흐어의 반모음 /w/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ʊw/, /ʉw/, /əw/, /ɪw/ 등 모음 음소와 /w/의 조합이 [u]로 발음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며 러시아어에서 들어온 차용어에서도 원어의 /u/에 해당하는 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에서 남자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Тимур '티무르'는 첫 시안을 따르면 Timwr로 적어야 했다. 마치 영국 웨일스에서 쓰이는 웨일스어 같다는 평도 나왔다. 웨일스어에서는 w가 자음 /w/ 외에 모음 /ʊ/, /uː/도 나타내며 웨일스어 지명에 많이 등장하는 cwm [kʊm] '쿰'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영국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w를 모음으로 쓰는 것이 어이없어 보인다.

그래서 최종안에서는 w 대신 yʼ를 썼는데 이것도 [w], [u]를 나타내는 글자로 쓰는 것이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티무르'는 Timyʼr가 되고 카자흐어 여자 이름 Аяулым '아야울름'은 Aiʼayʼlym이 된다. 키릴 문자의 Ы/ы는 양 로마자 표기안에서 Y/y로 옮기며 중설 비원순 중모음 /ə/를 나타내는데 다른 튀르크어의 후설 비원순 고모음 /ɯ/, 즉 '으'의 소리에 대응되며 실제 이 기호를 쓰기도 할 정도로 발음도 비슷하다. 그러니 이 기호를 고른 의도를 짐작하자면 '으'는 y로 적으니 이와 비슷한 음인 '우'는 yʼ로 적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꼭 이렇게 정해야만 했을까? u /ʊ/와 uʼ /ʉ/는 이미 다른 음을 나타내니 어쩔 수 없더라도 예를 들어 /w/ 발음에는 w를 쓰고 [u]는 원형을 밝혀 uw, uʼw, yw, iw 등으로 쓰든지 uw로 통일하는 방식은 고려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키릴 문자에서 у가 [w]와 [u]를 둘 다 나타내는 글자로 쓰였기 때문에 이를 분리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을 것이다. 첫 시안이나 최종안이나 키릴 문자로 쓴 카자흐어 문서를 단순 변환을 통해 로마자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원래의 у를 w와 uw로 나눈다면 단순 변환이 불가능하다. 러시아어에는 /w/가 없으므로 러시아어용 키릴 문자에는 /w/를 나타내는 글자가 따로 없어서 카자흐어를 키릴 문자로 적을 때 [w]와 [u]를 한 글자로 나타낸 것이 끝까지 자연스러운 로마자 표기를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로마자로 바꾸면서 키릴 문자에서 나타내던 구별 가운데 사라지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키릴 문자에서 І/і는 모음 /ɪ/, Й/й는 반모음 /j/를 나타내며 И/и는 /əj/, /ɪj/ 등 모음 음소와 /j/의 조합이 [i]로 발음되는 것과 러시아어에서 들어온 차용어에서 원어의 /i/에 해당하는 음을 나타낸다.

첫 시안에서는 й를 j로 적고 і와 и는 i로 합쳤다(첫 시안에서는 Ж/ж를 J/j 대신 ZH/zh로 썼다). 반면 최종안에서는 키릴 문자의 і만 i로 적고 и와 й는 iʼ로 합쳤다. 즉 키릴 문자에서 세 글자로 나눠 쓰던 음이 로마자로 옮기면서 두 글자로 나눠 적게 된 것이다. 그 조합은 안마다 달라졌지만.

카자흐어 반모음과 고모음 표기 대조표

키릴 문자로마자 첫 시안로마자 최종안발음음소 분석
Й йJ jIʼ iʼ[j]/j/
И иI i[i]/əj/, /ɪj/
І іI i[ɪ]/ɪ/
Ы ыY yY y[ə]/ə/
У уW wYʼ yʼ[w]/w/
[u]/ʊw/, /ʉw/
Ұ ұU uU u[ʊ]/ʊ/
Ү үUE ueUʼ uʼ[ʉ]/ʉ/

이 밖에 러시아어와 페르시아어, 아랍어계 차용어에 나타나는 무성 구개수 마찰음 /χ/와 페르시아어와 아랍어계 차용어에서 나타나는 성문음 /h/는 키릴 문자에서 각각 Х/х, Һ/һ로 나누어 썼지만 로마자로는 H/h로 합친다. 그렇게 아포스트로피를 남발할 것이면 둘 가운데 하나는 hʼ로 써서 구별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둘 다 어차피 차용어에만 쓰는 음이라서 그다지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일 수 있겠다.

최종안에서 C/c는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한국어의 'ㅊ' 비슷한 파찰음 /ʨ/를 나타내는 Cʼ/cʼ에만 쓰인다. c만 따로 쓰지 않을 것이면 구태여 아포스트로피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지적도 있다. 혹시라도 카자흐어에서 쓰지 않는 음인 러시아어의 Ц/ц /ʦ/를 C/c로 나타내려는 것이 아닐지 지켜봐야 하겠다. 그렇다면 카자흐어에서는 쓰지 않는 음이라서 법령과 함께 발표된 대조표에서는 생략되었을 것이다.

아포스트로피가 많아 보기 흉하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카자흐어 음을 표현하는데 지장이 없다면 상관이 없을 텐데 반모음 /w/, /y/를 각각 yʼ, iʼ로 적는 것은 아무래도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시간'을 뜻하는 카자흐어 уақыт '와크트'는 로마자 표기는 yʼaqyt가 되고 '뿔'을 뜻하는 мүйіз '뮈이즈'의 로마자 표기는 muʼiʼiz가 된다. 또 《위키백과(Wikipedia)》의 카자흐어 이름 Уикипедия '위키페디야'는 Yʼiʼkiʼpediʼiʼa가 된다. и를 뒤따르는 я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Yʼiʼkiʼpediʼa가 될 수도 있겠다. 만약 다른 튀르크어와 비슷한 로마자 표기 방식을 따랐다면 각각 waqıt, müyiz, Wïkïpedïya 정도로 적었을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언어 사정

카자흐스탄의 국가공용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바꾸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지, 카자흐스탄인들의 반응은 어떨지 예측하려면 먼저 카자흐스탄의 언어 사정부터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국가공용어가 카자흐어라고 해서 카자흐스탄의 언어 생활이 카자흐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다.

카자흐스탄에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대규모 기근으로 인해 카자흐계 주민이 급감했다. 그래서 1939년 통계에서는 놀랍게도 카자흐스탄 주민의 40.2%가 러시아계로 38.0%에 그친 카자흐계를 앞질렀다. 소련은 카자흐스탄에 반체제 인사를 보내기도 하고 폴란드인, 고려인, 라트비아인, 에스토니아인, 루마니아인, 독일인, 크림타타르인, 체첸인, 칼미크인 등 여러 민족을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1970년대까지는 카자흐스탄 최대 민족은 러시아인이었으며 독립 직전인 1989년까지도 카자흐계가 39.7%, 러시아계가 37.4%로 대등했다. 하지만 독립 이후 러시아계 주민들은 러시아로 대거 떠나가고 높은 출산율로 카자흐계 주민 비율이 증가하였다. 그래서 2014년 통계에 의하면 카자흐계 주민이 65.5%로 21.5%에 그친 러시아계 주민을 크게 앞질렀다. 카자흐스탄은 이 밖에도 우즈베크인, 우크라이나인, 위구르인, 타타르인, 독일인, 고려인, 벨라루스인 등의 소수 민족이 있다(인구 통계).

하지만 사용 언어로 따지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러시아어를 강요한 소련의 교육 정책의 후유증으로 카자흐계 주민 상당수가 카자흐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며 카자흐스탄의 여러 민족은 서로 의사 소통을 위해 러시아어를 쓴다.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여러 세대를 지낸 독일인, 고려인, 벨라루스인 등도 대부분 러시아어를 모어로 쓴다. 그래서 도시 지역에서는 러시아어를 주로 쓰며 특히 아직도 슬라브계 주민이 많은 북쪽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쓴다. 또 카자흐계 주민 가운데도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들, 특히 장년층일수록 러시아어를 선호하는 편이다.

2009년 통계(PDF 문서)에 의하면 카자흐스탄 인구의 62%가 카자흐어를 모어로 쓰고 74%가 알아들을 수 있다. 러시아어는 카자흐스탄 인구의 23%만이 모어로 쓰는 반면 94%가 알아들을 수 있다. 독립 이후 러시아어 사용 비율은 소폭 하락했지만 아직도 카자흐어보다는 러시아어를 쓰는 비율이 앞서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인터넷 도메인 .kz를 쓰는 웹사이트에서는 2015년 기준으로 84%가 러시아어를 쓰고 13%가 영어, 3%만이 카자흐어를 쓴다(출처). 행정은 명목상의 공용어인 카자흐어보다는 러시아어로 주로 이루어지며 카자흐어 로마자 전환을 포고한 법령조차 러시아어로 작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카자흐스탄의 실질적인 제1공용어는 러시아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자흐어 표기 수단이 키릴 문자에서 로마자로 바뀌더라도 이러한 언어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이는 앞으로 카자흐스탄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를 정할 때에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카자흐스탄은 원래 카작스탄

'카자흐스탄'이라는 국호는 러시아어 Казахстан Kazakhstan을 따른 것이다. 카자흐어로는 Қазақстан이며 로마자로는 Qazaqstan이 된다. 카자흐어의 қ/q는 무성 구개수 폐쇄음 [q]를 나타낸다. 무성 연구개 폐쇄음 [k]보다 더 입 뒤에서 발음되는 소리이며 한글로는 'ㅋ'으로 옮길 수 있다. 즉 카자흐어로는 '카작스탄'인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마련한 적 있는 아랍어 한글 표기 시안에서는 아랍어의 [q]를 [k]와 구별한다며 'ㄲ'으로 적지만 카자흐어의 [q]는 유기음이므로 'ㄲ'보다는 'ㅋ'에 가깝게 들린다. 사실 조음 위치로 구별되는 [k]와 [q]를 조음 방법으로 구별되는 'ㅋ'과 'ㄲ'에 대응시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다.

왜 '카작스탄'이 '카자흐스탄'이 되었을까? 카자흐인을 이르는 이름인 Қазақ/Qazaq '카자크'는 중세 중앙아시아에서 누군가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한 사람이나 집단에 흔히 붙여졌다. 그러다가 오늘날 우리가 카자흐인이라고 부르는 민족의 명칭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드네프르 강 하류나 돈 강 유역 등 러시아 제국 변경에서 자치를 누린 여러 집단도 러시아어로 Казак Kazak '카자크'(영어로는 Cossack)라고 불렀다. 그래서 17세기 러시아 제국에서는 이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인은 끝 소리를 약간 바꿔 Казах Kazakh라고 부른 것이 '카자흐'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처럼 소련의 일부였던 벨라루스는 독립 이후 영어에서 국호를 러시아어 이름인 Белоруссия Belorussiya에 따라 Belorussia 또는 Byelorussia로 써왔던 것을 벨라루스어 Беларусь Belarus'에 따라 Belarus로 고치게 하는데 성공했다. 또 새 국호의 예전 러시아어 형태인 Белорусь Belorus'에 따라 '벨로루시'라고 쓰던 한국도 벨라루스 정부의 요청으로 '벨라루스'로 바꾸었다(예전 글 참조).

카자흐스탄도 혹시 영어 국호를 Kazakhstan에서 Qazaqstan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지만 어쩌면 영어에 그치지 않고 벨라루스처럼 한국어 국호도 '카작스탄'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쪽에서 요청하지 않는 이상 한국어에서 그동안 써왔던 '카자흐', '카자흐스탄'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호 외에도 카자흐스탄의 주요 지명은 러시아어 형태를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옛 수도 '알마티'는 러시아어 Алматы Almaty를 기준으로 한 표기이고 카자흐어 Алматы/Almaty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알마트'가 된다. 우주 기지로 유명한 '바이코누르'는 러시아어 Байконур Baykonur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카자흐어 이름은 Байқоңыр/Bayqonʼyr '바이콩으르'이다. 둘 다 원래 카자흐어 지명인데 러시아어로 흉내낸 형태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예이다. 이들도 괜히 카자흐어 형태를 따른다고 한글 표기를 바꿀 필요는 없겠다.

카자흐스탄 인명의 표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카자흐스탄 인명은 보통 러시아어 형태를 기준으로 한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카자흐스탄 대통령)
통용 로마자 이름: Nursultan Nazarbayev
러시아어 이름: Нурсултан Назарбаев Nursultan Nazarbayev
카자흐어 이름: Нұрсұлтан Назарбаев / Nursultan Nazarbaev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영화감독)
통용 로마자 이름: Timur Bekmambetov
러시아어 이름: Тимур Бекмамбетов Timur Bekmambetov
카자흐어 이름: Темір Бекмамбетoв / Temir Bekmambetov

알리야 유수포바(리듬체조 선수)
통용 로마자 이름: Aliya Yussupova
러시아어 이름: Алия Юсупова Aliya Yusupova
카자흐어 이름: Әлия Жүсіпова / Aʼliʼiʼa (Aʼliʼa) Jusipova

사비나 알틴베코바(배구 선수)
통용 로마자 이름: Sabina Altynbekova
러시아어 이름: Сабина Алтынбекова Sabina Altynbekova
카자흐어 이름: Сабина Алтынбекова / Sabiʼna Altynbekova

카자흐어 인명에서 쓰이는 러시아어에서 온 접미사 -ев/-ev와 -oв/-ov는 원어 발음을 따라 각각 '에프/예프', '오프'로 적으면서 위의 인명을 카자흐어 형태를 기준으로 표기한다면 각각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테미르 베크맘베토프', '앨리야 주시포바', '사비나 알튼베코바'가 된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러시아어와 카자흐어 형태를 따른 한글 표기가 동일하지만 나머지 경우는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어 형태를 기준으로 한 로마자 표기로 알려져 있으니 한글 표기도 러시아어 형태를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카자흐어를 다루지 않지만 러시아어 표기 규정은 있다는 현실적인 고려도 있다.

그렇다고 옛 소련의 튀르크어 인명을 언제나 러시아어 형태를 기준으로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아니다. 2013년 10월 16일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제111차 회의에서 Rustam Ibrahimbeyov로 통용되는 아제르바이잔 영화감독 이름을 아제르바이잔어 Rüstəm İbrahimbəyov에 따라 '이브라힘배요프, 뤼스탬'으로 심의한 바가 있다. 아제르바이잔어 ə /æ/를 '애'로 적고 ü /y/를 '위'로 적은 것이 인상적이다. 아제르바이잔 독립 이후 로마자로 쓰는 아제르바이잔어가 명실상부한 공용어가 되었으므로 아제르바이잔 고유명사를 한글로 표기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우즈베키스탄도 카자흐스탄과 사정이 비슷하다. 지금까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인명은 줄곧 러시아어 형태를 기준으로 심의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카자흐어와 우즈베크어가 각각 공용어이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어가 교통어 역할을 하고 대외적으로도 러시아어 이름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우즈베키스탄 인물 가운데는 우즈베크계가 아닌 이들이 많다.

K리그에서도 뛴 적이 있어서 친숙한 우즈베키스탄 축구 선수로 독일계인 알렉산드르 게인리흐(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Гейнрих Aleksandr Geynrikh, 독일어: Alexander Heinrich '알렉산더 하인리히', 통용 로마자: Alexander Geynrikh)와 크림타타르계인 세르베르 제파로프(러시아어: Сервер Джепаров Server Dzheparov, 크림타타르어: Server Ceparov, 통용 로마자: Server Djeparov)가 있다. 이들은 러시아어를 주로 쓰며 우즈베크어는 거의 못 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이들을 우즈베크어 이름을 기준으로 한글로 표기할 명분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다만 점차 우즈베크어와를 기준으로 한 로마자 표기로 알려지는 인명도 늘어나고 있으니 경우에 따라 우즈베크어 이름을 기준으로 한글 표기를 정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우즈베크어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 Abdulla Qahhor(1907년~1968년)의 경우 러시아어 이름 Абдулла Каххар Abdulla Kakhkhar에 따른 '아브둘라 카하르'보다는 우즈베크어 이름에 따라 '압둘라 카호르'로 적는 것이 나을 것이다.

카자흐스탄 인명도 앞으로 비슷한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카자흐어로 작품 활동을 한 시인 Міржақып Дулатұлы(1885년~1935년)는 예전에는 러시아어 이름인 Мир-Якуб Дулатов Mir-Yakub Dulatov '미르야쿠프 둘라토프'에 따라 Mir Yakub Dulatov로 널리 알려졌지만 요즘에는 카자흐어 이름에 따라 Mirjaqip Dulatuli로 많이 쓴다. 새로운 로마자 표기로는 Mirjaqyp Dyʼlatuly, 이에 따른 한글 표기는 '미르자크프 둘라툴르' 정도가 되겠다.

계획대로 카자흐어를 적는 문자가 로마자로 바뀐다면 [w] 또는 [u]를 나타내는 yʼ처럼 원 발음을 알기 어려운 철자로 이들 이름을 접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그런 경우 카자흐어 로마자 표기에 대한 지식 없이 철자만 보고 발음을 짐작하여 한글로 표기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물론 카자흐어를 로마자로 적게 되더라도 대외적으로 쓰는 로마자 표기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어 인명 Gauß '가우스', 네덜란드어 인명 Kuijt '카위트', 세르비아어 인명 Ђоковић/Đoković '조코비치'는 영어권에서는 각각 Gauss, Kuyt, Djokovic로 알려져 있다(세르비아어는 특이하게 키릴 문자와 로마자를 둘 다 쓰는데 키릴 문자가 우세한 편이다). 다른 언어 화자가 발음을 짐작하기 힘든 철자를 더 발음하기 쉽게 고친 것이다. 또 소말리아의 대통령은 Mohamed Abdullahi Mohamed라는 로마자 표기로 알려져 있지만 소말리어 이름은 Maxamed Cabdulaahi Maxamed '마하메드 압둘라히 마하메드'이다. 소말리어는 공식적으로 로마자를 쓰지만 x가 무성 인두 마찰음 /ħ/를 나타내고 c가 유성 인두 마찰음 /ʕ/를 나타내는 소말리어 로마자가 생소해서 외부인들이 발음을 짐작하기 힘든 탓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다만 이 인명의 경우 통용 로마자 표기가 이에 대응되는 아랍어 이름을 기준으로 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예를 들면 Аяулым Қайратқызы/Aiʼayʼlym Qaiʼratqyzy와 같은 카자흐어 이름도 대외적으로는 카자흐어에서 쓰는 로마자 철자가 아니라 Ayawlym Qayratqyzy와 같이 실제 발음을 연상하기 쉬운 로마자 표기로 알려질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는 원래의 카자흐어 철자와 그에 대응되는 발음을 고려하여 '아야울름 카이랏크즈'로 적어야 할 것이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17/10/30 19:36 # 답글

    오랜만에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코사크(카자크)"와 "카자흐"가 원래 이름이 같은 건지 다른 건지 아니면 같은 건데 번역자에 따라 표기가 왔다갔다 하는건지 헷갈렸는데 그런 연유로 다르게 이름지어진 거였군요. 고맙습니다!
  • 끝소리 2017/10/30 20:01 #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카자흐와 카자크의 관계는 저도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러시아어로 왜 '카자흐'가 되었는지 배웠습니다. '카자크'는 폴란드어와 우크라이나어에서 '코자크'가 되었고 프랑스어에서 cosaque '코자크'라고 적은 것이 영어에서 Cossack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 끝소리 2017/10/30 21:20 #

    아, 다시 확인해보니 폴란드어와 우크라이나어에서 쓰는 Kozak가 원형이고 러시아어에서 모음 약화로 인해 Kazak가 된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네요. 이들은 Quzzāq 비슷한 튀르크어 단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보통 Qazaq와 어원이 같다고 봅니다.
  • hanur 2017/10/30 21:29 #

    때문에 러시아/소련 초기에는 카자흐에 대해 "키르기즈"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요,
    이게 또 중앙아시아에 키르기즈가 따로 있다보니 얘들은 "카라 키르기즈"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Encyclopaedia of Islam, Second Edition 같은 예전 자료들에서는 키르기즈 항목에 초기 카자흐 칸국 역사가 서술되어 있는 혼돈의 카오쓰...
  • 끝소리 2017/10/30 22:41 #

    예, 역사에서 쓰인 민족명 같은 것을 따지면 이런 일이 수두룩하죠. 그런데 EI2라면 꽤 최근에 나온 자료인데도 그런 오류가 나오나요? 인터넷에 나오는 짤막한 미리보기만 봐서는 알 수 없네요.
  • 슈타인호프 2017/10/30 22:55 #

    이야아, 정말 복잡하군요;;
  • hanur 2017/10/30 23:11 #

    EI2 초창기 권들의 경우에는 40년대인가 50년대인가 작성되서 그런거 같습니다.
  • 끝소리 2017/10/30 23:29 #

    그렇군요. 오랜 세월에 걸쳐 집필되었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오래 전부터인지는 몰랐습니다.
  • 피그말리온 2017/10/30 20:58 # 답글

    논문 읽는 기분이네요...
  • 끝소리 2017/10/30 21:22 #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 제트 리 2017/11/01 12:22 # 답글

    이야 이런 사정이 있었군요.. 근데 로마자를 채용 하는 걸 보면, 역시 로마자가 범용성이 큰 것이 이유 일 거 같군요
  • 끝소리 2017/11/01 14:48 #

    예, 키릴 문자는 금방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로마자는 오래 전부터 서로 다른 유럽 여러 언어에서 써왔다는 보편성 때문에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 알카시르 2017/11/30 13:17 # 답글

    1. 굳이 잘 쓰던 키릴 문자를 버리고 로마자를 채택한 것에는 민족주의 말고도 언어학적인 고려가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키릴 문자로는 튀르크어의 여러 발음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더욱 발달한 로마자를 선택한 것일까요? 같은 알타이어족에 속한 몽골어의 경우, 몽골 문자를 다시 쓰려 했지만 키릴 문자가 편하다 하여 그냥 계속 쓰게 된 것을 보면 몽골어를 표현하는 데는 잘 맞는 것 같은데, 튀르크어에는 잘 안 맞았던 것인가 싶네요.

    2. 키릴 문자 하니 말인데, 키릴로스가 굳이 새 문자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고유의 글라골 문자가 이미 있었고 정 필요하면 그냥 그리스 문자나 로마자를 사용해도 됐을 것 같은데요. 게르만족도 게르만어를 표기하는 데 가장 적합한 룬 문자를 버리고 로마자를 채택했고 말이죠. 혹시 그리스 문자나 로마자로는 슬라브어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가요?

    3. 소련 때문에 우즈베크어가 왜곡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소련이 무너진 뒤에 이를 복구하려고 하지는 않았나요? 전통적인 표준어였던 북부 방언을 새로운 표준어로 채택했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4. 케말 파샤는 언어 개혁으로 유명하지요. 비단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사용한 오스만어와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새로운 언어를 창제하여 전 국민에게 보급시켰다니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을 지경입니다. 이를 보면 한국의 영어 공용어화도 가능할 것 같아서 무섭군요. 그나저나 케말 파샤가 창제한 터키 문자가, 다른 튀르크어족 제어에서도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인가요? 어휘나 문법에 유사점이 많다고 하니 문자도 통일할 수 있을 수도 있겠네요.

    5. 바예지드 1세는 일디림이라고도 불렸다 합니다. 그런데 터키어의 발음을 감안하면, 이을드름이 맞을 것 같은데요. 이것도 옛한글 ᆜ와 같은 발음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외래어 표기에서 저 모음을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6. 위키백과의 Turkic languages 문서를 봐도 확실히 나오지 않았는데, Old Turkic과 Old Uyghur는 어느 어파에 속할까요? Western Yugur가 이들 언어의 직계 후손이라던데, 이를 감안하면 Northeastern Common Turkic의 South Siberian의 Yenisei Turkic에 속한다고 보면 될까요?

    7. 옛날에는 투르크라 하던 것을 요즘은 터키어를 고려했는지 몰라도 튀르크라고들 하더군요. 다른 튀르크 제어에서는 뭐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투르크라고 잘 쓰던 것을 튀르크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8. 케말이 만든 터키어에는 ㅡ 발음이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확실히 돌궐 제국 시대에는 이 발음이 있던 것 같지만, 오스만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진 발음 아닐까요? 즉 이미 사라진 발음을 다시 부활시킨 것 아닐까요? 셀주크나 오스만 시기의 로마자나 페르시아 문자로 쓰인 기록에도 딱히 사람 이름에 ㅡ 발음을 감안하여 표기한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9. 메흐메트 2세는 오스만어로는 메흐메디 사니, 터키어로는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라 표기하면 될까요?

    10. 한국어 위키백과는 터키의 대통령과 총리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아흐메트 다우토을루라 표기했더군요. 장음 표기 등을 고려하면 레제프 타이프 에르도으안, 아흐메트 다부토을루가 맞지 않을까요? 심지어 펫훌라흐 귈렌이라는 표기도 있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함메트 페툴라흐 귈렌 호카에펜디 정도가 맞을 것 같은데 말이죠.
  • 끝소리 2017/11/30 17:25 #

    1. 글에서 언급했듯이 카자흐어에서 쓰이는 발음을 키릴 문자로 표현하기 위해 러시아어에서 쓰지 않는 새로운 글자 아홉 자를 포함하여 42자를 씁니다. 영어에서 쓰는 로마자는 26자 뿐입니다. 이 42자로 카자흐어의 여러 발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 새 글자를 추가하지 않고 로마자 26자로만 쓰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로마자가 키릴 문자보다 발달한 것은 아닙니다. 둘 다 그리스 문자를 뿌리로 만들었고 자음 글자, 모음 글자를 포함한 20여 자로 된 문자이니 두 문자 사이에 차이는 많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느 언어를 어느 문자로 적는 것이 좋은가는 단순히 문자만 봐서는 알 수 없고 정서법(맞춤법)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몽골어를 적는 키릴 문자도 몽골어에 최적화된 것은 아니지만 전통 몽골 문자에서 쓰는 철자법은 고전 몽골어를 바탕으로 한 것에 비해 키릴 문자 철자법은 보다 현대 할흐 몽골어를 충실합니다. 또 전통 몽골 문자는 원래 회골어 즉 고대 위구르어(이름은 같지만 현대 위구르어의 조상이 아님)를 쓰던 문자에서 왔기 때문에 몽골어에 필요한 발음 구별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알타이어족이란 가설은 오늘날 언어학에서는 폐기되었습니다. 튀르크어족과 몽골어족이 친족 관계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2. 키릴 문자는 키릴로스의 이름을 땄지만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가 만든 것은 아니고 그들의 사후 불가리아 제1제국에서 동로마 제국에서 쓰던 그리스 문자로 슬라브어를 적은 것입니다. 초기 키릴 문자는 당시 동로마 제국에서 쓰던 그리스 문자와 거의 동일하며 슬라브어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 글자를 추가한 형태입니다.

    룬 문자는 고대 이탈리아 문자에서 유래했으므로 로마자와 거의 비슷하며 게르만어를 표기하기 위해 룬 문자가 특별히 적합하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슬라브어 가운데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교 지역에서 쓰이는 것은 로마자, 동방 정교 지역에서 쓰이는 것은 키릴 문자를 씁니다. 세르비아어 같은 경우 두 문자가 혼용됩니다. 슬라브어가 아니라 로망어인 루마니아어도 원래는 키릴 문자로 썼습니다. 어느 문자를 쓰느냐는 순전히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그리스 문자, 로마자, 키릴 문자, 룬 문자는 모두 같은 계통의 문자로 생각하시는 것만큼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3. 우즈베크어가 왜곡되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소련이 우즈베키스탄의 문자 언어를 표준화할 때 남부에서 쓰던 방언을 골라서 '우즈베크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우즈베크어'라고 하면 보통 북부 방언을 이르던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전통적인 표준어'라고 부르기는 힘듭니다. 소련 이전에 문자 언어는 아직도 전통 차가타이어이었으니까요. 이제와서 새로운 표준어를 도입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4. 언어를 창제했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입니다. 기존에 쓰던 언어에서 페르시아어와 아랍어 영향을 '정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오스만어도 지배 계층에서만 사용한 인위적인 요소가 큰 언어였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영어를 공용어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어에서 한자어와 외래어를 최대한 없앤 것을 표준어로 정하는 것에 견줄 수 있겠습니다. '터키 문자'는 케말 파샤가 창제한 것이 아니고 그의 지시로 터키어를 적기 위한 로마자 철자법을 만든 것입니다. 아제르바이잔 문자 등 다른 튀르크어에서도 터키 문자를 100%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따르고 있습니다.

    5. Yıldırım의 한글 표기는 yı [jɯ]를 어떻게 적느냐에 달렸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로 적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보통 '이으'로 적습니다. 그러니 Yıldırım은 '이을드름'입니다.

    6. 돌궐어(Old Turkic)와 회골어(Old Uyghur)는 시베리아어파, 일명 동북 공통 튀르크어파(Northeastern Common Turkic)로 분류됩니다. 사멸한 언어이니 그보다 더 세부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7. Türk는 '튀르크'이지만 페르시아어, 아랍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에서 [y] 음이 따로 없어서 [u]로 옮겨 Turk '투르크'로 적었던 것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튀르크^어파', '오스만^튀르크', '셀주크^튀르크'를 표제어로 씁니다. 터키어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튀르크어에서 Türk '튀르크'라고 합니다. 어차피 언어에 따라 쓰는 형태가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굳이 통일한다면 튀르크어에서 쓰는 형태와 가깝게 하는 쪽이 낫겠다고 해서 그렇게 정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투르크'를 많이 쓰기는 했지만 '튀르크'도 적어도 1930년대부터 쓰던 형태이며 Atatürk '아타튀르크'를 통해서 친숙하여 이전부터 '튀르크'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에 표준 표기로 인정된 것 같습니다.

    8. 케말 파샤가 [ɯ] 발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아나톨리아 튀르크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튀르크어에서 쓰던 모음입니다. 오스만 튀르크어에서 쓰던 페르시아식 아랍 문자로는 모음을 나타내기가 어려워서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던 것을 로마자를 도입하면서 전용 글자인 ı를 붙인 것 뿐입니다. 제발 언어와 문자를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오스만 시대에 사라졌다가 부활한 것이 아닙니다. 한편 오스만 제국과 셀주크 제국 인명은 페르시아어나 아랍어에서 온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들 언어에서 쓰지 않는 음인 ı를 보기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9. 오스만 튀르크어 محمد ثانى‎ Meḥmed-i sānī에서 페르시아어식 조사 i와 '둘째'를 뜻하는 sānī까지 한글로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메흐메드 2세'라고 번역하면 됩니다. 터키어 Fatih Sultan Mehmet도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로 쓰기보다는 '정복제 메흐메트'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William the Second를 '윌리엄 더 세컨드'라고 하지 않고 '윌리엄 2세'라고 하고 William the Conqueror를 '윌리엄 더 콩커러'라고 하지 않고 '정복왕 윌리엄'이라고 하며 '세종대왕'은 영어로 Sejong Daewang이 아니라 King Sejong the Great라고 하는 것처럼요.

    참고로 터키어 철자법에서는 어말 폐쇄음의 무성음화를 철자에 반영하기 때문에 오스만 튀르크어의 محمد Meḥmed '메흐메드'가 Mehmet '메흐메트'가 되는 것입니다.

    10. 이들은 외래어 표기법에 공식으로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외래어 표기 용례의 기준이 되는 이른바 터키어 표기 시안을 따릅니다. Recep Tayyip Erdoğan [ɾeˈʤep tɑjˈjip ˈæɾdoɑn]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으로 적습니다. Tay-는 '타이'로 적고 -yip는 '이프'로 적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ğ는 모음 앞에서는 적지 않습니다.

    Ahmet Davutoğlu [ahˈmet davuˈtoːɫu]를 '아흐메트 다우토을루'로 적는 것은 이 시안에서 v를 모음 앞에서 [w]인 것처럼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로 변이음을 따지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며 ğ도 이 위치에서 앞선 모음을 길게 하는 것으로만 실현되므로 '다부톨루'로 적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Fethullah Gülen [fet(h)uɫˈɫɑh ɟyˈlɛn]을 '펫훌라흐 귈렌'이라고 적은 것도 시안을 따른 표기인데 어원상 th는 아랍어 자음군 tḥ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t를 받침으로 적고 h를 'ㅎ'으로 적은 것입니다. 참고로 존칭 Hocaefendi는 '호카에펜디'가 아니라 '호자에펜디'입니다. c는 [ʤ]를 나타냅니다. 한편 터키어 철자에 나타나는 어말 폐쇄음 무성음화만 반영한다면 Muhammed는 '무함메드'로 적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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