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이바 부인과 고디바 초콜릿 표기 용례

존 콜리어(John Collier)의 《고다이바 부인》. 1897년경. 허버트 미술관 소장.

'고디바'라는 벨기에 고급 초콜릿 브랜드가 있다. 그 상징인 말을 탄 나체 여인 그림은 전설의 고다이바 부인(영어: Lady Godiva)을 나타낸다. 192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조제프 드랍스(프랑스어: Joseph Draps [ʒozɛf dʁaps])가 설립한 드랍스 초콜릿 회사가 1956년 브뤼셀에 첫 매장을 열면서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에서 이름을 따서 상호를 '고디바'로 바꿨다. 프랑스어로는 Godiva를 [ɡɔdiva] '고디바'라고 발음한다.

고디바 초콜릿 로고.

전설에 따르면 고다이바 부인은 오늘날 영국의 일부인 잉글랜드 코번트리에 살았다. 그는 영주인 남편이 책정한 터무니 없이 높은 세금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남편에게 여러 차례 애원했다. 결국 남편은 고다이바 부인이 나체로 말을 타고 길거리에 나가면 이를 들어주겠다고 답했다. 물론 설마 부인이 이를 따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성의 주민들에게 실내에 머물고 창을 가리라고 명한 뒤 정말로 나체로 말을 타고 코번트리의 길거리를 지나가 백성들을 향한 애정을 증명했다고 한다.

고다이바 부인이든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이든 Godiva의 프랑스어 발음은 [ɡɔdiva] '고디바'이지만 영어로는 /ɡə.ˈdaɪ̯v.ə/ '거다이바'로 발음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고다이바'가 전설의 귀족 부인을 뜻하는 표제어로 나온다. [ə]로 발음되는 o를 철자에 이끌려 '오'로 적는 관습을 인정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에서 [ə]로 발음되는 어말의 a는 '아'로 적도록 하고 있지만 다른 위치에서는 철자에 상관 없이 '어'로 적는 것이 원칙이니 엄밀히 말하면 '거다이바'로 적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ə]로 발음되는 o를 '오'로 적는 경우가 매우 많다. chocolate도 영어 발음 /ˈʧɒk.lᵻt, ˈʧɒk.(ə)l.ᵻt/을 따르면 '초컬릿'으로 써야 하지만 '초콜릿'이 표준 표기로 인정되었다. '초코렛', '초콜렛' 등 '에'로 발음하는 관습이 있는 마지막 모음은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여 '이'로 적으면서도 가운데 음절의 모음만은 '오'로 적는 관습적인 표기를 인정한 것이다.

나체로 말을 타고 코번트리의 길거리에 나섰다는 것은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11세기 잉글랜드 머시아 백작 레프릭(Leofric)의 아내였던 실존 인물이다. 머시아(영어: Mercia /ˈmɜːɹs.i‿ə, ˈmɜːɹʃ-, ˈmɜːɹʃ.ə/)는 10세기 초 잉글랜드의 통일 이전에 존재했던 앵글로색슨 소왕국 가운데 하나였으며 고다이바 부인이 활약했던 11세기에는 잉글랜드 왕국의 주였다. 백작 Leofric은 영어로 /ˈlɛf.ɹɪk/ '레프릭' 외에도 /ˈleɪ̯.əf.ɹɪk/ '레이어프릭', /ˈliː‿əf.ɹɪk/ '리어프릭', /li.ˈɒf.ɹɪk/ '리오프릭' 등으로 다양하게 발음된다.

머시아를 포함한 앵글로색슨 소왕국들을 나타낸 지도.

이처럼 영어 발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Leofric이 고대 영어 이름으로 현대 영어에서는 잘 쓰지 않는 이름이며 현대 영어 화자 입장에서 봤을 때 고대 영어는 완전히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그 발음만 해도 f가 유성음 사이에서 [v]로 실현되고 c, g가 경우에 따라 오늘날의 ch, y처럼 [ʧ], [j]로 실현되는 등 현대 영어 화자에게는 낯선 부분이 많다.

원래의 고대 영어 발음은 [ˈleːovriːʧ] '레오브리치' 정도로 재구성할 수 있다. 오늘날 고대 영어 교재 등에서는 원래의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부호를 추가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Leofric은 Lēofrīċ으로 쓴다. 여기서 e와 i가 장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줄을 그었고 c가 현대 영어에서 ch로 적는 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점을 찍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어 화자들은 고대 영어의 발음을 잘 모르니 Leonard /ˈlɛn.əɹd/ '레너드', leopard /ˈlɛp.əɹd/ '레퍼드' 등에서 유추하여 /ˈlɛf.ɹɪk/ '레프릭'으로 발음하거나 앞서 열거한 다양한 발음을 쓰는 것이다. Lēofrīċ는 '사랑스러운'을 뜻하는 lēof '레오프'와 '권력', '왕국' 등을 뜻하는 rīċe '리체'가 합친 이름인데 Leonard의 leon-과 leopard의 leo-는 각각 고대 고지 독일어와 라틴어·고대 그리스어에서 '사자'를 뜻하니 어원상으로는 Leofric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상단에서 머시아 백작 레프릭과 참회왕 에드워드가 성찬식 빵에 예수의 얼굴이 나타나는 기적을 목격하고 있다. 잉글랜드 토지 대장인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의 13세기 요약본.

Godiva는 원래 고대 영어 이름인 Godgifu를 라틴어식으로 적은 것이다. 둘째 g가 오늘날의 y처럼 발음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점을 찍어 Godġifu와 같이 쓸 수 있으며 그 발음은 [ˈɡodjivu] '고드이부' 정도로 재구성할 수 있다. '신'을 뜻하는 god '고드'와 '선물'을 뜻하는 ġifu '이부'가 합친 이름이다. 중세 라틴어식으로 ġi [ji]는 그냥 i로 흉내내고 f [v]는 v로 적어 Godiv-가 된 것이며 라틴어에서 여성 이름이 흔히 -a로 끝나므로 이를 따라 Godiva가 된 것이다. 11세기 당시 고대 영어 발음에서는 어차피 Godġifu의 마지막 모음이 분명하게 발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금 드문 노르웨이어 여자 이름 가운데 Synnøve [²synːøvə] '쉰뇌베'가 있는데 10세기에 아일랜드에서 노르웨이로 건너갔다는 성인 Sunniva '순니바'에서 나온 현대 노르웨이어 이름이다. 이 이름은 '태양'을 뜻하는 sunne '순네'와 ġifu '이부'가 합친 고대 영어 이름 Sunnġifu '순이부'가 고대 노르드어 Sunnifa '순니바'를 거쳐 중세 라틴어 Sunniva '순니바'가 된 것이다(고대 노르드어에서도 유성음 사이의 f가 [v]로 발음된다). 여기서도 고대 영어 이름의 -ġifu가 라틴어 -iva에 해당한다.

노르웨이의 한 교회 제단 장식으로 조각된 성 순니바 상. 1520년대. 베르겐 박물관 소장. 출처 Wikimedia: Nina Aldin Thune, CC-BY SA 3.0.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은 13세기 중세 잉글랜드의 연대기 《플로레스 히스토리아룸(Flores Historiarum)》에 처음 등장했다. '역사의 꽃들'을 뜻하는 라틴어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라틴어로 쓰인 연대기이다.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는 고대 영어로 쓰인 문서가 꽤 많았지만 1066년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노르만 왕조가 들어선 후 영어는 한동안 문자 언어로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노르만어/프랑스어나 라틴어가 주로 쓰였다(이 시점을 기준으로 고대 영어와 중세 영어를 나눈다).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라틴어식 이름인 Godiva가 오늘날 영어에서 쓰는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신 Lēofrīċ의 라틴어식 형태인 Leuricus '레우리쿠스' 또는 Leofricus '레오프리쿠스'는 잊혀지고 고대 영어 형태인 Leofric을 쓰는 것이다. Godġifu는 중세 잉글랜드에서 꽤 흔한 여자 이름이었지만 후대에는 쓰이지 않게 되었고 대신 여기서 나온 Goodeve /ˈɡʊd.iːv/ '구디브'가 성으로 드물게 쓰인다.

중세 잉글랜드에서 쓰인 Godiva의 라틴어 발음은 [ɡoˈdiːva] '고디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세 영어 후기에 해당되는 15세기에 시작되어 근대 영어 시기까지 계속된 대모음 추이(Great Vowel Shift)로 영어 장모음의 음가가 심한 변화를 겪었다. 중세 영어에서는 단모음 i /i/와 가까운 음가였던 장모음 i /iː/는 대모음 추이를 통해 현대 영어의 /aɪ̯/ '아이'로 변했다. 거기에 영어 발음의 특징인 모음 약화 때문에 원래의 /o/와 /a/가 불분명한 무강세 모음 [ə]로 변해 오늘날 Godiva의 영어 발음은 /ɡə.ˈdaɪ̯v.ə/ '거다이바'가 된 것이다. '침'을 뜻하는 라틴어 saliva '살리바'가 영어에서 /sə.ˈlaɪ̯v.ə/ '설라이바'가 된 것도 같은 이치이다.

영어의 대모음 추이를 나타낸 표. 출처 Wikimedia: Olaf Simons, CC-BY 3.0.

'거다이바'는 너무 어색하다고 느낀 것인지 아니면 중간의 /aɪ̯/ '아이' 발음은 들었지만 나머지 모음은 [ə]로 약화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정한 표기인지는 몰라도 '고다이바'가 전설의 부인 이름의 표준 표기로 정해졌다. 하지만 초콜릿 브랜드 Godiva는 프랑스어권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왔으므로 프랑스어 발음을 따라 '고디바'로 적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 쓰는 상호도 '고디바'이다. 프랑스어로는 고다이바 부인도 Dame Godiva '담 고디바'라고 하고 영어로는 고디바 초콜릿도 Godiva chocolate '고다이바 초콜릿'이라고 하는데 한국어에서는 '고다이바 부인', '고디바 초콜릿'으로 표기를 구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세 잉글랜드의 라틴어식 인명이고 당시에는 '고디바'로 발음했을 테니 '고디바 부인'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중세 잉글랜드 인물 가운데 라틴어식 이름으로 알려진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7~8세기에 활약한 성직자이자 라틴어로 《잉글랜드인들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를 쓴 역사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비드'로 실려있다. 그가 쓴 라틴어 이름 Beda '베다' 대신 영어 이름 Bede /ˈbiːd/를 따라 '비드'로 쓴 것이다. 아무래도 중세 잉글랜드 인물 가운데 그나마 알려진 인물들은 많이 쓰는 영어식 이름이 따로 있어 굳이 라틴어 이름을 쓸 이유가 없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은 학계에서 라틴어보다는 고대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뉘른베르크판 《리베르 크로니카룸(Liber Chronicarum '연대기')》의 비드 삽화. 1493년.

이미 언급한 앵글로색슨 소왕국 머시아의 이름은 머시아 사람을 일컫는 고대 영어 Mierċe '미에르체' 또는 Myrċe '뮈르체'(본뜻은 '변경 사람')를 라틴어식으로 어미 -ia를 추가한 Mercia로 적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고전 라틴어 방식으로 읽으면 '메르키아'이다. 하지만 고대 영어의 표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라틴어에서 전설 모음 앞의 c는 잉글랜드에서 파찰음을 거쳐 결국 [s]로 변했기 때문에 '메르치아'가 당시 발음에 더 가까울 것이고 이게 현대 영어에서 '머시아'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앵글로색슨 소왕국으로 Northumbria도 있는데 고대 영어 Norþhymbra '노르스휨브라'에서 온 라틴어명이다. 고대 영어 철자의 þ는 현대 영어의 th 음에 해당하며 위치에 따라 무성 치 마찰음 [θ] 또는 유성 치 마찰음 [ð]로 발음되었다. 그러니 이를 고전 라틴어 방식으로 읽어 '노르툼브리아'로 표기하기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보통 현대 영어 발음 /nɔːɹ.ˈθʌm.bɹi‿ə/에 따라 '노섬브리아'라고 적는다.

이처럼 중세 잉글랜드식 라틴어 발음에 어울리게 표기하려면 손봐야 할 부분이 몇몇 있기 때문에 라틴어 발음을 따르려 하기보다는 라틴어 이름이라도 아예 현대 영어식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그러니 Godiva 하나만 따지면 '고디바'로 적는 것이 무난하더라도 중세 잉글랜드의 라틴어식 고유 명사를 표기하는 방식을 하나로 통일하라면 현대 영어 발음을 따르는 것이 제일 쉬워보인다.

덧글

  • UnPerfect 2017/09/04 00:17 # 답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냥 라틴어-영어 발음의 관계인 줄 알았더니 상당히 복잡한 뒷사정이 있었네요. 고대 영어라. 영어 외에 라틴어의 영향을 받은 다른 유럽어의 대강의 사정도 궁금합니다.
  • 끝소리 2017/09/05 03:28 #

    감사합니다. 라틴어는 오늘날 로마자를 쓰는 모든 유럽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참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습니다. 인명만 따져도 고대 브리튼의 켈트인 지도자 Boudica/Boudicca를 라틴어 발음에 따라 '보우디카'로 적을지 영어 발음에 따라 '부디카'로 적을지의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현대 웨일스어식으로는 Buddug '비디그'라고 합니다.

    라틴어식 이름으로 알려진 옛 인물의 표기를 어떻게 할지를 따지자면 네덜란드의 철학자 Desiderius Erasmus는 네덜란드어 발음을 따라서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로 적고(실제 발음은 '데지데리위스'가 가깝겠지만)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Duns Scotus는 영어 발음을 따라서 '던스스코터스'로 적는 것이 표준 표기로 정해진 반면 프랑스의 예언가 Nostradamus는 '노스트라다뮈스' 대신 '노스트라다무스'로 적고 존재론적 논증으로 유명한 아오스타 출신 잉글랜드 신학자는 영어 Anselm을 딴 '앤셀름' 대신 라틴어 Anselmus를 따른 '안셀무스'로 적습니다. 여기에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를 라틴어식 성을 그대로 딴 영어식 이름인 Christopher Columbus를 기준으로 영어 발음에 따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적는 예도 있으니 참으로 가지각색입니다.
  • 위장효과 2017/09/20 20:16 # 답글

    진중한 포스팅에다가 약간 뻘쓰런 댓글하나만 달자면...(일단, 죄송합니다)

    잔지바르 태생이자 파르시 혈통인 영국 모 록 밴드 가수는 저 Lady Godiva를 "레이디 겟다이바~~~"이런 삘 나게 발음을 했었지요. (이 밴드 최고의 히트곡중 하나의 가사...) 그 대목이 인트로의 느린 비트가 빨라진 후인 곳인지라 발음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기에는 바로 전 대목은 아주 또렷하게 들리는 구간인지라...^^;;;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