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왓'? 어말 [k, p, t]를 받침으로 적는 문제 표기 용례

세계 최대 규모의 사원이라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는 중세 크메르 제국 시대에 당시 수도인 앙코르에 세워졌다. 크메르어(캄보디아어)로 '앙코르' អង្គរ Ângkôr [ʔɑŋˈkɔː]는 '수도'라는 뜻이고 '와트' វត្ត Voat [ˈʋoat]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어 발음을 직접 옮긴 것이 아니라 영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에서 쓰이는 로마자 철자인 Angkor Wat에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을 적용한 표기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앙코르^와트'로 실려 있으니 '앙코르와트'와 같이 붙여 써도 되고 '앙코르 와트'와 같이 띄어 써도 되지만 여기서는 원어의 단어 구분을 살려 띄어 쓰는 것으로 통일한다.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은 1986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처음 공포된 뒤 발간된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에서 한글 표기 기준이 세부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언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적용한 원칙을 일러두기의 형태로 제시한 것으다. 오늘날에도 외래어 표기법에서 아직 다루지 않는 언어의 한글 표기를 심의할 때 대체로 이 원칙을 적용한다.

앙코르 와트(Commons: sam garza, CC BY-2.0)

로마자 표기를 거치지 않고 오늘날 캄보디아의 공용어이기도 한 크메르어 이름 អង្គរវត្ត Ângkôr Voat의 현대 크메르어 발음 [ʔɑŋˌkɔː ˈʋoat]를 직접 한글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이 발음 기호에서 로마자 표기의 r가 발음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 쓰이는 중부 방언을 포함한 현대 크메르어 대부분의 방언에서 음절말 /r/는 묵음이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앞으로 크메르어 표기법을 마련할 때 정해야 하겠지만 예전에는 발음되었던 음이고 크메르어 철자와 로마자 표기에서도 나타나며 태국 동북부에서 쓰이는 북크메르어 방언에서는 아직도 음절말의 /r/가 발음되니 한글 표기에서도 '르'로 적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크메르어에도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한국어와 비슷한 폐쇄음의 3계열 대립이 있으며 크메르어 철자에도 이게 나타난다. អង្គរ Ângkôr [ʔɑŋˈkɔː]의 k [k]는 한국어의 'ㄲ'처럼 무성 무기음으로 'ㅋ'와 비슷한 , kh [kʰ]와 대비된다. 한국어의 'ㄱ'에 대응되는 음은 없지만 'ㅂ, ㅍ, ㅃ', 'ㄷ, ㅌ, ㄸ'에 각각 대응되는 음이 있는 것이 타이어와도 비슷하다. 크메르어는 아직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 않지만 타이어는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함께 2004년 12월 20일 외래어 표기법에 그 표기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는데 폐쇄음의 3계열 대립을 반영하여 타이어와 베트남어의 한글 표기에는 이례적으로 된소리 표기를 허용하였다. 그러니 크메르어 표기법을 마련한다면 타이어 표기법에서처럼 된소리 표기를 활용하여 អង្គរ Ângkôr는 '앙꼬(르)'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

វត្ត Voat [ˈʋoat]의 표기는 더 까다로운 문제이다. 학자에 따라 [w], [β̞] 등으로 적기도 하는 첫 자음 v [ʋ]는 로마자 표기에서 v로 흔히 적지만 [w]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 좋겠다. 타이어 표기법에서도 로마자로 v로 흔히 적는 음을 [w]로 취급한다. 그런데 뒤따르는 이중모음 [oa]와 합칠 때는 '워아' 또는 '오아'로 적을지, 예외적으로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와 가깝게 '와'로 적을지 고민된다. 이중모음 [oa]는 학자에 따라 [oə]로 적기도 한다.

일단 익숙한 '와'로 적기로 한다고 해도 저절로 វត្ត Voat가 '와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크메르어에서 어말의 [t]는 불파음(不破音), 즉 터뜨리지 않는 소리인 [t̚]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hype [ˈhaɪ̯p], height [ˈhaɪ̯t], hike [ˈhaɪ̯k] 등의 단어를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할 때에는 어말의 [p], [t], [k] 등을 터뜨리기 때문에 '하이프', '하이트', '하이크'처럼 들리는데(물론 '으' 모음이 실제 있는 것은 아니고 [p], [t], [k]가 각각 초성 'ㅍ', 'ㅌ', 'ㅋ'인 것처럼 발음된다는 것을 흉내낸 것이다) 빠르게 발음할 때에는 파열 도중에 기류를 막아 '하입', '하잇', '하익' 비슷한 불파음이 될 수가 있다. 즉 영어에서는 어말 폐쇄음을 불파음으로 발음해도 되고 그러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선택 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어의 '밥', '밭', '밖'을 천천히 발음할 때의 영어처럼 '바브/바프', '바트', '바끄/바크'처럼 [p], [t], [k]를 터뜨려서 발음했다가는 딱 외국인 억양이 된다. 한국어에서는 어말 폐쇄음이 영어처럼 선택적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불파음이기 때문이다. 보통 발음 기호에서는 불파음 여부를 따로 나타내지 않지만 굳이 불파음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면 폐쇄음 기호의 오른쪽 위에 모서리 모양 부호를 더해서 [p̚], [t̚], [k̚] 등으로 적는다.

크메르어에서도 어말 폐쇄음은 필수적으로 불파음이므로 크메르어 발음을 살리려면 '와트'보다는 '왓'(또는 '워앗', '오앗')이 더 어울리는 표기이다. 하지만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서는 어말의 무성 폐쇄음 [p], [t], [k]는 모두 '으'를 붙여 적도록 했기 때문에 '와트'로 쓰는 것이다. 세계의 여러 언어 가운데 어말 무성 폐쇄음이 불파음인 것은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그렇게 원칙을 정한 것이다.

크메르어에서 '사원'을 뜻하는 វត្ត Voat는 '울타리 친 장소'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वाट vāṭa에서 나왔다. 크메르 제국에서 쓴 말은 고대 크메르어이지만 문자 언어로는 고대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주로 썼으며 대부분의 기록을 산스크리트어로 남겼다. 산스크리트어는 크메르 제국 뿐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문자 언어로 쓰여 옛 한국과 일본에서 문자 언어로 쓰인 한문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또 산스크리트어와 가까운 인도의 언어인 팔리어도 불경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널리 전해졌기 때문에 오늘날 크메르어 어휘의 상당수는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에서 왔다. '앙코르' អង្គរ Ângkôr도 어원을 따지면 결국에는 '도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낱말인 नगर nágara '나가라'에서 왔다. 이런 인도계 차용어는 크메르어 철자에 따른 일반적인 발음 규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크메르어를 배울 때 헷갈리기 쉽다. វត្ត Voat도 크메르어 철자만 보면 모음이 ô [ɔ]이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oa [oa]인 것은 인도계 차용어이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타이어도 마찬가지이다. 타이어의 วัด wat [wát] '왓'도 크메르어의 វត្ត Vôtt와 뜻과 어원이 같다. '새벽 사원'을 뜻하는 방콕의 왓 아룬(วัด อรุณ Wat Arun [wát ʔarun])을 예로 들 수 있다.

왓 아룬(Commons: Rolf Heinrich, Köln, CC BY-3.0)

'왓 아룬'은 2004년 12월 20일에 추가된 타이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이다. 타이어 표기법에서 음절말 폐쇄음은 받침으로 적는다. 이전에는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 따라 '와트 아룬'으로 적어야 했지만 타이어 표기법의 제정으로 음절말 폐쇄음이 언제나 불파음으로 발음되는 실제 발음과 가깝게 '왓 아룬'으로 표기가 바뀐 것이다.

라오스의 공용어인 라오어에서 사원을 뜻하는 단어는 ວັດ wat [wat]이다. 라오 문자는 타이 문자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지만 라오어는 타이어와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타이어와 라오어가 동일 방언 연속체에 속한다고 보기도 한다. 발음도 상당 부분 비슷하며 음절말 폐쇄음이 불파음인 것도 당연히 같다. 그러니 라오어 ວັດ wat는 타이어 วัด wat처럼 '왓'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라오어의 한글 표기를 심의할 때 타이어 표기법을 적용한 적이 없다. 그러니 현행 방식으로는 라오어 ວັດ wat는 '와트'로 적어야 한다.

예를 들어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있는 '황금 도시 사원'을 뜻하는 Wat Xieng Thong (라오어: ວັດຊຽງທອງ Wat Xiang Thong [wat síəŋ tʰɔ̌ːŋ])은 통용 로마자 표기에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을 적용하면 '와트 시엥 통'이다. 하지만 '왓 시엥 통'으로 적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사실 '도시'를 뜻하는 ຊຽງ xiang [síəŋ]의 이중모음을 어떻게 표기하느냐에 따라 '왓 시엉 통' 또는 '왓 시앙 통'이 더 나을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참고로 이에 대응되는 타이어 이름은 วัดเชียงทอง Wat Chiang Thong [wát ʨʰia̯ŋ tʰɔːŋ]이며 여기에 타이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왓 치앙 통'이다.

와트 시엥 통(Commons: Philip Maiwald, CC BY-3.0)

이처럼 '사원'을 뜻하는 크메르어의 វត្ត voat, 타이어의 วัด wat, 라오어의 ວັດ wat는 세 언어 모두 음절말 [t]가 불파음 [t̚]를 나타낸다. 하지만 현재 운이 좋게 표기법이 따로 있는 타이어 단어만 '왓'으로 적고 나머지 둘은 '와트'로 적는 것이 현행 방식이다. 앞으로 크메르어와 라오어 표기법이 마련된다면 타이어 표기법에서처럼 음절말 [t]를 받침 'ㅅ'으로 적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Pol Pot, ប៉ុល ពត Pŏl Pôt [pɔl pɔːt])도 '뽈 뽓'으로 표기가 바뀌고 흔히 '시엠립'이라고 부르고 표준 표기는 '시엠레아프'인 앙코르 와트의 관문인 Siem Reap(សៀមរាប Siĕm Réap [siəm riəp])도 '시엄리업'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는 언어 가운데 어말의 무성 폐쇄음 [p], [t], [k]를 예외 없이 받침으로 적게 하는 언어는 타이어와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등 2004년 12월 20일에 표기 규정이 추가된 동남아시아 3개 언어 뿐이다. 베트남어의 승려 Thích Nhất Hạnh [tʰǐk ɲɜ̌t hɐ̂ʔɲ]은 국내에 '틱낫한'으로 알려져 있는데 베트남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틱녓하인'이다. 통용되는 표기와 규정에 따른 표기 모두 'ㄱ', 'ㅅ' 받침을 썼다. 베트남어의 어말 폐쇄음도 불파음인 까닭이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표기법에서는 한술 더 떠서 유성 폐쇄음 /b/, /d/, /ɡ/도 어말에서 받침으로 적게 했고 심지어 마찰음 /f/, /x/도 받침으로 적게 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통화 단위인 ringgit [riŋɡit]을 '링깃'으로 적을 뿐만이 아니라 이름인 Ahmad [a(h)mat]은 '아맛'으로 적고 Yusuf [jusuf]은 '유숩'으로 적는 것이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에서 음절말의 /b/, /d/, /ɡ/는 보통 불파음인 [p], [t], [k]로 발음되기 때문에 이렇게 정한 것이다. /f/, /x/도 외래 음소이니 각각 /p/, /k/와 합쳐질 수 있다고 보고 그렇게 정한 것 같은데 실제 발음을 관찰하면 적어도 /f/는 음절말에서도 마찰음으로 제대로 발음하니 이를 살려 Yusuf는 '유수프'와 같이 적는 것이 더 나았을 듯하다. 마찰음인 /s/는 어말에서 '스'로 적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기존 연구만 보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어말 폐쇄음이 필수적으로 불파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kobalt [kobalt] '코발트' 같은 최근의 차용어에서는 폐쇄음이 어말 자음군의 마지막 자음이라서 한글로 옮길 때 받침으로 적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예외가 있더라도 어말 폐쇄음을 불파음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아가서 말레이인도네시아어 고유 어휘에서 철자상의 어말 -k는 성문 폐쇄음 [ʔ]로 발음되는데 이는 그 전에 불파음 [k̚]의 단계를 거쳤다는 것을 입증한다.

지금까지 살핀 언어와 같이 음절말, 특히 어말 무성 폐쇄음이 필수적으로 불파음인 언어는 주로 아시아에서 발견된다. 한국어를 비롯해 크메르어, 타이어, 라오어,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모두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쓰이는 언어이다.

동남아시아 3개 언어 표기 규정이 추가되기 이전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는 아시아 언어는 중국어와 일본어 뿐이었다. 그런데 표준 중국어와 일본어에는 어말 폐쇄음이 없다. 즉 'ㅂ', 'ㅅ', 'ㄱ' 등의 받침으로 적을만한 음이 어말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한자음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의 중국어는 어말 폐쇄음이 있었으며 지금도 표준 중국어가 속한 북방어를 제외한 광둥어, 민난어 등 다른 중국어계 언어에는 보통 어말 폐쇄음이 남아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불파음으로 발음된다. 기존 표기 용례 가운데 표준 중국어 이외의 다른 중국어계 언어 발음을 따른 것들이 종종 있는데 여기서 어말 폐쇄음은 받침으로 적는다. 홍콩의 첵랍콕(Chek Lap Kok, 광둥어: 赤鱲角 Cek3laap6gok3 [ʦʰɛ̄ːk.làːp.kɔ̄ːk]) 공항, 싱가포르의 고촉통(Goh Chok Tong, 민난어: 吴作栋 Gô Chok-tòng [ɡɔ̌ ʦɔk tɔ̭ŋ]) 전 총리를 예로 들 수 있다. 영어에서 쓰는 로마자 표기를 거친 간접적인 한글 표기이긴 하지만 앞으로 광둥어와 민난어 표기법을 따로 마련한다고 해도 받침으로 적을 것이다.

홍콩 쳅락콕 국제공항(Commons: Wylkie Chan, CC BY-3.0)

중국어와 같이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티베트어와 버마어도 어말 폐쇄음이 불파음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티베트어 이름인 དགེ་ལེགས་ dge legs Gelek [kèlèʔ, -lèk]은 '겔레그'나 '겔레크' 대신 '겔렉'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비슷하게 티베트어에서도 어말 -k는 보통 성문 폐쇄음 [ʔ]으로 발음되고 격식을 갖출 때나 [k]로 발음한다.

그런데 버마어에서는 비슷한 현상이 다른 자음에도 적용되어 음절말의 -k, -t, -p, -s 등이 수세기 전에 이미 모두 성문 폐쇄음 [ʔ]로 합쳐졌다. 하지만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에서는 이들이 아직도 발음되는 것처럼 적을 때가 많다. Chauk라고 보통 쓰이는 미얀마 지명 ချောက် Hkyauk이 한 예이다. 이 지명은 기존 용례에 '차우크'로 나와있지만 '차우'로 적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깝다. 실제로 더 최근에 심의된 Kyaukpyu로 보통 쓰이는 미얀마 지명 ကျောက်ဖြူ Kyaukhpru는 철자상의 음절말 -k를 무시한 '차우퓨'로 표기가 정해졌다. 하지만 앞으로 버마어 표기법을 정할 때 만약 성문 폐쇄음이 없는 경우와의 구별을 위해 이를 일부러 나타낸다면 '차욱'이든 '차웃'이든 받침을 써서 나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쓰는 타갈로그어도 어말 무성 폐쇄음이 불파음이다(대신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달리 유성 폐쇄음은 음절말에서도 무성음화하지 않고 분명하게 발음된다). 필리핀 지명 가운데 Tarlac는 기존 표기 용례에서 '타를라크'로 쓰는데 '타를락'으로 적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필리핀에는 표준 필리핀어의 바탕이 되는 타갈로그어 외에도 지역마다 쓰이는 언어가 백여 개가 되지만 거의 모두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말레이·폴리네시아 어파에 속하여 계통이 같으니 필리핀의 고유 언어를 표기할 때는 어말 무성 폐쇄음을 불파음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가 공용어로 쓰이지만 자바어, 순다어, 이반어 등 계통이 같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지역별 고유 언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다고 아시아의 언어가 다 어말 무성 폐쇄음을 불파음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몽골어를 비롯하여 위구르어, 우즈베크어, 페르시아어 등 중앙아시아의 여러 언어와 벵골어, 힌디어, 타밀어를 비롯한 남아시아의 여러 언어는 어말 무성 폐쇄음을 받침으로 처리하기 곤란하다. 그러고 보면 어말 무성 폐쇄음이 필수적으로 불파음인 것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버마어, 티베트어, 중국어 등이 쓰이는 지역을 경계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지역적인 현상이다. 오스트로아시아 어족에 속하는 크메르어와 베트남어, 크라·다이 어족(타이·카다이 어족)에 속하는 타이어와 라오어,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에 속하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타갈로그어, 다른 언어와의 친연 관계가 밝혀진 것이 없는 한국어 등 계통이 다른 여러 언어들에서 나타나므로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한 상호 영향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하겠다.

크메르어, 라오어 등 아직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 않는 언어의 표기 세칙을 제대로 마련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아직 표기법이 마련되어있지 않더라도 이제부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언어를 표기할 때 어말 파열음을 받침으로 적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적어도 사원을 뜻하는 단어가 타이어로는 '왓'이고 크메르어와 라오어로는 '와트'가 되는 불일치는 해결할 수 있겠다.

덧글

  • 남중생 2017/03/29 22:26 # 답글

    저는 한편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외국어 표기법이 라오스와 태국이라는 두 나라를 구분해주는 역할을 해준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봤습니다. 라오스 사람들은 그 언어/문화적 유사성 때문에 태국인들에게 반 식민지 취급을 받는다더군요.
    하지만, 실제 발음 차이를 기반으로 한게 아니라면, 그저 소가 뒷걸음치다 쥐잡은 격이겠죠.
  • 끝소리 2017/03/30 05:57 #

    표준 언어로서의 라오어와 타이어는 쓰는 문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한글 표기 규정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무슨 숨은 의도가 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타이어와 라오어의 관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이겠죠. 라오어와 타이어를 구별하려는 특별한 의도가 있던 것이 아니라 타이어 표기 규정을 마련하면서 라오어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타이 동북부 이산 지방의 방언은 라오어에 속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타이에서는 타이어의 방언으로 간주된다는 껄끄러운 문제도 있습니다.

    약간 비슷한 예로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을 마련하면서 정작 벨기에 북부에서 네덜란드어를 쓴다는 것은 고려한 흔적이 없습니다. 당시에 마련한 용례집에는 네덜란드와 수리남, 퀴라소 등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의 고유명사 표기를 다룬 반면 벨기에 고유명사는 전혀 다루지 않습니다. 표기 규정 자체도 벨기에에서 쓰이는 발음에 대한 고려 없이 네덜란드 북부식 발음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고요.
  • 알카시르 2017/05/05 05:10 # 답글

    1.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 꼰바웅 왕조의 발음이 [kóʊɴbàʊɴ kʰɪʔ]라고, 위키백과에 나오더군요. 두 가지 의문이 있는데, 우선 ʊ인데 앞의 것은 생략하고 뒤의 것은 표기하는 것도 불공평하니, 그리고 장음 표기가 아닌 모음의 연속으로 봐야 할 듯하니, 역시 꼬운바웅이라 표기하는 게 맞을까요? 그리고 분명히 ɴ으로 끝나는데 ㅇ 받침을 붙일 근거가 없으니, 종합해서 꼬운바운 키, 꼬운바운 왕조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

    2. 같은 이치로, 꼰바웅 왕조의 초대 왕 Alaungpaya [ʔəláʊɴ pʰəjá] 역시 발음을 감안하면 알라웅파야가 아닌 얼라운 퍼야가 맞겠군요?

    3. 꼰바웅 왕조의 서울이었던 Mandalay [màɴdəlé]는 만덜레가 맞을까요?

    4. 미얀마의 전 서울인 랑군이 미얀마어 발음으로는 양곤이라더군요. 그런데 위키백과를 보니 [jàɴɡòʊɴ mjo̰]라 된 것을 감안하면, 양곤도 틀린 발음으로, 사실은 얀고운 묘가 맞나요?

    5. 몇 해 전에 미얀마가 Naypyidaw로 천도했지요. 이를 한국에서는 으레 네피도라 하던데, 발음 기호가 [nèpjìdɔ̀]인 것을 감안하면, 네쁘이도가 맞을까요?

    6. 영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켜 왕을 자처했던 독립 영웅 Saya San 말이죠. 미얀마어로는 [sʰəjà sàɴ]이라 하던데, 영어의 sh와 같은 발음으로 간주하여 셔야 산 또는 스허야 산이라 표기하면 될까요?

    7. 지금까지 계속 미얀마라 했지만, 듣자하니 버마가 맞는 이름이라고도 하더군요. 보니까 미얀마어로는 버마를 [bəmà], 미얀마를 [mjəmà]라 한다던데, 이를 한글로 표기하면 각기 버마와 며마가 맞나요?

    8. 위키백과를 보니 비록 현대 발음으로는 며마이지만 원래 발음은 Mranma였다던 것 같은데요. 저 발음은 뭐라 읽어야 할까요? 음란마? 므란마?

    9. 그것도 그렇지만, 동남아 언어에서는 ə를 ㅓ가 아닌 ㅡ로 표기하는 관습이 있는 것 같더군요. 말레이어의 səlamat을 슬라맛으로 표기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혹시 버마어, 크메르어, 타이어 등의 ə역시 ㅓ가 아닌 ㅡ로 표기해야 했던 것은 아니겠죠? 설마 그렇다면 Burma는 브마, Myanmar는 미으마, Mandalay는 만들레가 될까요?
  • 끝소리 2017/05/05 20:05 #

    1. 영어의 표기에서 [oʊ]는 '오'로 적고 [aʊ]는 '아우'로 적는 것을 생각하면 [oʊ]를 '오우'로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편 버마어의 비음 음소는 어말에서 이중모음인 [aʊ] 다음에는 혀가 연구개를 접근해 [ŋ] 비슷한 자음 소리를 내므로 통상적으로 aung으로 적는 것이고 이를 '아웅'으로 적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Konbaung은 '콘바웅'으로 적을 수 있고 앞으로 된소리를 반영한다면 '꼰바웅'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2. 버마어에서는 두 음절 단어에서 앞의 음절이 약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운모가 [ə]가 됩니다. 하지만 음절 약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여러 음절로 된 이름에서 우리가 버마어의 단어 경계를 알아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버마어의 음절 약화는 로마자 표기에도 반영하지 않으며 한글 표기에도 반영할 이유가 없습니다. Alaungpaya는 '알라웅파야'로 적으면 됩니다.

    3. 마찬가지 이유로 Mandalay도 버마어 발음을 따르면 '만달레'가 좋습니다.

    4. 버마어 '묘' myo (mrui)는 '시'라는 뜻입니다. 서울시를 로마자로 Seoul이라고 하지 Seoul-si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한글 표기에서 '묘'는 제외해야 합니다. 한편 단어 내부의 비음 음소는 뒤따르는 자음과 같은 조음 위치의 비음으로 실현되므로 Yangon을 '양곤'으로 적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위키백과에서 쓰는 발음 표기에서는 버마어의 비음 음소를 [ɴ]으로 통일해 적고 있지만 이처럼 위치에 따라 발음 양상이 다양합니다.

    5. 음절초 [pj]를 끊어 적을 이유가 없습니다. '네피도'가 표준 표기이고 된소리를 반영한다면 '네삐도'로 적을 수 있습니다.

    6. 버마어의 [sʰ]는 [s]에 기식음이 붙은 것이지 영어의 sh [ʃ]와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된소리를 쓸 경우 'ㅅ'을 쓸지 'ㅆ'을 쓸지의 문제가 있지만 한국어의 발음과 정확히 대응시키기 어렵고 젊은 층에서 버마어 [s]와 [sʰ]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으니 [s]처럼 'ㅅ'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Saya San은 '사야 산'으로 적으면 됩니다.

    7. 버마와 미얀마의 국호 문제는 짧게 설명드리기 힘듭니다. 결국은 같은 이름인데 위상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 것입니다. 버마어 발음을 따른다면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음절 약화를 반영하지 않고 Bama는 '바마', Myanma는 '먄마'로 적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안마'도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어의 표기에서 mian '몐', miao '먀오'로 적는 것처럼 버마어 myan, myo도 '먄', '묘' 등으로 합쳐 적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8. Mranma는 '므란마'로 적으면 됩니다. mr-는 여기서 단순히 음절초 자음군입니다.

    9. [ə]의 표기는 각 언어의 사정을 고려하여 정해야 합니다. 말레이어의 [ə]는 삽입 모음으로도 쓰이고 상당히 고모음으로 실현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으'로 표기하는 것입니다. 또 실제 발음에서 /r/와 위치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어서 kertas가 [krəˈtas] 또는 [kərəˈtas]로 발음되기도 하는데 [ə]를 '으'로 적는다면 '크르타스'로 표기가 통일됩니다.

    버마어에서는 영어에서처럼 다양한 모음이 강세에 따라 [ə]로 약화되는 것인데 말씀드린 것처럼 음절 약화를 한글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ㅇㅇ 2017/06/13 09:16 # 삭제 답글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Pol Pot, ប៉ុល ពត Pŏl Pôt [pɔl pɔːt])도 '뽈 뽓'으로 표기가 바뀌고 흔히 '시엠립'이라고 부르고 표준 표기는 '시엠레아프'인 앙코르 와트의 관문인 Siem Reap(សៀមរាប Siĕm Réap [siəm riəp])도 '시엄리업'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

    이렇게 기존 표기가 바뀌는 건 매우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미 한국어 화자들 사이에서 널리 폴 포트, 시엠립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꾸면 혼란만 초래할 겁니다. 국립국어원의 신뢰도는 더 떨어지겠죠.
    실제로 국립국어원이 2004년에 말레이어, 태국어, 베트남어 한글 표기법을 제정하고 2005년에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러시아어 한글 표기법을 제정하면서 기존 표기들이 대규모로 바뀌어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당시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9&oid=127&aid=0000002016
    이런 비판도 있었고요.

    좀 다르지만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anguage&no=29346
    이런 비판도 있었고요.

    표기법 제정하면서 기존 표기들을 바꾸는 건 굉장히 바람직하지 못한 겁니다. 일반 언중에게 '폴 포트'는 '폴 포트'일 뿐이지 ប៉ុល ពត가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글 표기만 사용할 뿐이지 원어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어 화자들이 한국어로 소통할 때 사용하는 어형일 뿐인데 원어를 의식할 필요도 없죠. 한국어 화자들끼리만 잘 알아보고 잘 알아들으면 그만이니까요(그래서 따지고 보면 원음에 집착할 이유도 사실 없습니다). 따라서 이미 굳어진 한글 표기는 (설령 원음이나 표기법과 차이가 있더라도) 절대 바꿔서는 안 됩니다.
  • 끝소리 2017/06/13 16:05 #

    사실 본문에서는 제가 그렇게 썼지만 실제로 크메르어 표기 규정이 새로 제정된다고 해도 이에 따라 표준 표기를 바꾼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반 언중에 잘 알려진 크메르어 이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들을 예로 들어 이러이러한 식으로 표기 방식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주러 한 것이지 꼭 '폴 포트'의 표준 표기가 바뀔 것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외래어 표기법에는 규칙에 어긋나더라도 이미 굳어진 표기는 관용 표기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준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누구한테는 매우 익숙한 표기가 다른 누구한테는 고쳐도 전혀 상관이 없는 낯선 표기일 수도 있고 심지어 사람에 따라 익숙한 표기가 다른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어 표기법을 제정하면서 관용 표기로 인정한 것은 화가 van Gogh '반 고흐'와 선원 Hamel '하멜' 외에 축구 감독인 Verbeek '베어벡', Advocaat '아드보카트' 등이었는데 '호이겐스', '레벤후크', '베르메르'로 쓰던 Huygens, Leeuwenhoek, Vermeer 등의 주요 역사 인명은 새 표기 규정에 따라 '하위헌스', '레이우엔훅', '페르메이르'로 바꾼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세대가 지나면 잊혀질 축구 감독 이름은 관용 표기로 인정하면서 과학사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명의 표기는 바꾼 것이니까요.

    어차피 지금도 혼란은 존재합니다. '시엠레아프'가 표준 표기이지만 민간에서는 '시엠립', '씨엠립', '씨엠리앱' 등으로 많이 씁니다. 이미 굳어진 표기가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또 개화기 이후 외국어 고유 명사의 표기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생각하면 그러한 표기는 '절대' 바꿔서 안 된다고 주장하기가 어렵습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 체계가 도입된 1986년 이후 교육을 받은 세대에게는 주요 고유 명사의 표기는 바뀐 적이 없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뉴욕'을 '뉴우요오크', '뉴—요—크' 등으로 썼다는 것을 생각하면 캄보디아 고유명사의 표기가 바뀐다고 해서 심각한 혼란이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폴 포트'의 표기를 '뽈 뽓'으로 꼭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용 표기 인정의 기준 문제, 그리고 표기 변경에 따른 혼란의 정도 등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나친 원음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것처럼 한 번 썼던 표기는 끝까지 고집한다는 지나친 표기 보수주의도 해가 될 수 있습니다.
  • 12345 2017/06/20 11:17 # 삭제

    글쎄요.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었거나 널리 쓰이지 않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컴퓨터와 인터넷이 아주 보편화된 현재는 기존 표기들이 바뀌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게 맞습니다.

    이런 글도 있었습니다.
    http://korean.go.kr/front/board/boardReplyView.do?board_id=15&mn_id=64&b_seq=2164&b_parent_seq=2164

    이 부분을 주목하세요.

    "언론 입장에서 한말씀 더 드리자면 현재의 언론에서 데이터베이스(DB)가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알고는 계십니까? 국어연구원의 '뒷북' 때문에 유명인들 이름이 수시로 바뀌면 DB를 검색하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 줄 아시나요?"

    기존 표기의 변경은 오히려 이러한 불편을 초래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아주 보편화된 지금도 굳어진 표기를 쉽게 바꿀 수 있다고(또는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좀 위험한 발상이라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겠군요.

    "한 번 썼던 표기는 끝까지 고집한다는 지나친 표기 보수주의도 해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기존 표기를 계속 유지하는 게 과연 해가 될까요? 위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지만,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한글 표기는 한국어 화자들끼리만 잘 알아듣고 잘 알아보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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