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행성 일곱 개를 거느린 '트라피스트-1'과 벨기에 맥주 이야기 어원

벨기에의 천문학자 미카엘 지용(프랑스어: Michaël Gillon [mikaɛl ʒijɔ̃])이 이끄는 국제 연구진은 22일 지구에서 39광년 떨어진 왜성 주위에 지구와 크기가 비슷한 암석 행성 일곱 개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 적어도 세 개, 어쩌면 일곱 개 모두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추정되어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진이 '지구의 일곱 자매'로 별명을 지은 행성들이 주위를 돌고 있는 왜성의 이름은 TRAPPIST-1이다. 국내 언론 보도를 보니 한글 표기는 처음 보도될 때에는 '트라피스트-1'과 '트래피스트-1'이 혼용되다가 점차 '트라피스트-1'로 통일되고 있는 듯하다.

트라피스트-1의 상상도

왜성 트라피스트-1은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라시야(라틴아메리카 에스파냐어: La Silla [la siˈʝa]) 관측소의 트라피스트(TRAPPIST) 망원경에서 이름을 땄다. 영어로 '통과 행성 및 미행성 소형 망원경–남쪽'을 뜻하는 Transiting Planets and Planetesimals Small Telescope–South를 줄인데 흔히 '트라피스트회'라고 부르는 가톨릭 교회 수도회인 엄률 시토회(라틴어: Ordo Cisterciensis Strictoris Observantiae)에서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 '트라피스트(프랑스어: trappiste [tʁapistə])'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라 트라프(프랑스어: la Trappe [la tʁapə]) 수도원에서 출발한 수도회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TRAPPIST의 영어 발음 [ˈtɹæp.ᵻst]를 기준으로 표기하면 '트래피스트'이지만 수도회 이름은 원래의 프랑스어 발음에 따라 '트라피스트'로 쓰며 망원경과 왜성의 이름은 수도회 이름을 딴 것이니 '트라피스트'로 표기를 통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트라피스트회 수도원에서는 대부분 성 베네딕토가 6세기에 작성한 수도 규칙서(라틴어: Regula Benedicti)를 따라 노동을 중요시하여 수입을 위해 치즈, 빵, 초콜릿 등을 생산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일부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맥주가 유명하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뛰어난 맛과 품질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린다. 오늘날 맥주를 생산하는 트라피스트회 수도원은 벨기에에 여섯 곳, 네덜란드에 두 곳, 오스트리아와 미국, 이탈리아에 각각 한 곳씩 있다. 그러니 트라피스트 맥주라고 하면 보통 벨기에에서 생산된 것을 떠올린다.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하는 벨기에의 양조장은 다음 여섯 곳이다.
  • Achel 네덜란드어: [ˈɑxəl] '아헐'
  • Chimay 프랑스어: [ʃimɛ] '시메'
  • Orval 프랑스어: [ɔʁval] '오르발'
  • Rochefort 프랑스어: [ʁɔʃəfɔːʁ] '로슈포르'
  • Westmalle 네덜란드어: [ʋɛstˈmɑlə] '베스트말러'
  • Westvleteren 네덜란드어: [ʋɛstˈfleːtərən] '베스트블레테런'
이 가운데 특히 벨기에 북서부의 베스트블레테런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베스트블레테런 12'는 세계 최고의 맥주로 꼽히기도 한다. 네덜란드어 발음은 사실 '베스트플레터런' 또는 벨기에식으로 '웨스트플레터런'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베스트블레테런'이다. 벨기에 사람들은 트라피스트 맥주를 포함해서 자국에서 생산되는 맥주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 모음(Wikimedia: Philip Rowlands, CC BY-SA 4.0)

트라피스트 망원경이 사실 지용이 소속된 벨기에 리에주 대학에서 조종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칠레에 있는 망원경이 왜 하필 맥주로 유명한 트라피스트회의 이름을 땄는지의 수수께끼가 자연스럽게 풀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개최한 기자 회견을 통해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연구진은 행성 일곱 개의 이름은 지을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행성들은 현재 트라피스트-1b, 트라피스트-1c 등 b에서 h까지의 글자를 붙여 부르지만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도 지을 생각인지를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지용은 연구진끼리는 벨기에 맥주의 이름을 붙이자는 얘기를 했지만 공식 이름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정말로 이들에게 '베스트블레테런' 같은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붙이면 네덜란드어를 못하는 이들은 꽤나 고생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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