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는 영화: 컨택트(Arrival) 영화와 언어

거대한 외계 비행물체 12개가 미국의 몬태나 주를 포함한 지구 곳곳에 출현한다. 얼마 후 미군은 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루이즈 뱅크스(에이미 애덤스 분) 박사를 찾아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해줄 것을 요청한다. 과연 뱅크스는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왜 지구에 왔는지 밝혀낼 수 있을까?

얼마 전에 한국에서 개봉한 캐나다의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2016년작 영화 《컨택트》는 이처럼 언어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나는 것은 SF(science fiction,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에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외계인과 어떻게 의사소통이 가능할지를 진지하게 탐구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언어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보기 드문 영화이니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해가면서 언어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컨택트》의 한국판 포스터

영화 《컨택트》의 영어 원제는 '도착'을 뜻하는 Arrival '어라이벌'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하필이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1997년에 영화화한 《콘택트》와 비슷하게 제목을 붙였다(원제는 Contact). 이 작품도 외계인이 보낸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을 다루는 SF 영화인데 국내 제목을 비슷하게 지어놓았으니 헷갈리기도 하고 국내에서 성공했던 1997년 영화에 기대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국내 제목을 붙인 쪽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컨택트》에 등장하는 대형 외계 비행물체가 콘택트렌즈 모양이기는 하다.

영어 contact /ˈkɒn.tækt/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콘택트'이다. 영어의 모음 음소 /ɒ/는 영국 발음에서 [ɒ]로, 미국 발음에서 [ɑː]로 발음되며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오'로 적는 것이 원칙이고 경우에 따라 미국 발음을 따라 '아'로 적기도 한다(예: column /ˈkɒl.əm/ '칼럼'). 그러니 contact /ˈkɒn.tækt/는 '콘택트'로 적는 것이 원칙이고 미국 발음을 따른다고 해도 '컨택트'가 아니라 '칸택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콘택트'가 표준어로 실려있다. 하지만 concept /ˈkɒn.sɛpt/, conference /ˈkɒn.fəɹ‿ənts/ 등을 외래어 표기 원칙에 따른 '콘셉트', '콘퍼런스' 대신 '컨셉(트)', '컨퍼런스'라고 흔히 쓰는 것처럼 표준 표기인 콘택트 대신 '컨택(트)'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 같다.

그런데 영어 contact가 I will contact you에서처럼 동사로 쓰일 경우 명사와 마찬가지로 /ˈkɒn.tækt/로 발음하기도 하지만 둘째 음절에 강세를 주어 /kən.ˈtækt/로 발음하기도 한다. 이 경우의 발음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컨택트'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은 '접촉', '연락'을 뜻하는 명사로 봐야지 동사로 보고 읽지는 않는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은 미국의 SF 작가 테드 챙(Ted Chiang, 중국어 이름은 姜峯楠 '장펑난')의 1998년작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이다. 영화로 만들면서 원작 소설과 상당히 달라지기도 했고 원래의 제목이 로맨틱 코미디인 것처럼 들린다고 해서 제목을 Arrival로 바꿨다.

영화 초반에 뱅크스 박사를 찾아온 미군의 웨버 대령(포리스트 휘터커 분)은 뱅크스가 예전에 '파르시(Farsi)'를 해독하는데 도움을 줄 때 나온 기밀 취급 허가가 아직 남아있다고 설명을 한다. 영어의 Farsi는 이란에서 쓰는 페르시아어를 페르시아어를 페르시아어로 فارسی ‎fārsi라고 하는데서 나온 이름인데 비교적 최근인 20세기에 쓰기 시작한 이름으로 예전에는 그냥 페르시아어라는 뜻인 Persian으로 불렀으며 지금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Persian이라고 부른다.

페르시아어는 이란의 국어일 뿐만이 아니라 타지키스탄에서 쓰는 타지크어, 아프가니스탄의 다리어도 같은 페르시아어의 방언이다. 그러니 미군에서도 중요하게 취급하는 언어이다. 그러니 페르시아어 번역은 어학병이나 현지 계약자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언어학자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언어 관련 부분 자문을 맡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교의 언어학자 제시카 쿤(Jessica Coon) 교수는 뱅크스가 페르시아어 대신 파키스탄 북부의 부루쇼족이 쓰는 부루샤스키어와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 언어를 번역한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워싱턴 포스트》 기사 참조).

제시카 쿤은 뱅크스가 웨버에 의해 '번역의 달인' 정도로 소개되는 부분도 바꾸려고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언어학자는 언어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을 다루지 번역을 주로 하지는 않는다. 언어학자라고 꼭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웨버는 뱅크스에게 외계인이 내는 소리를 녹음한 것을 들려주며 해석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뱅크스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외계인과 직접 대면해서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웨버가 외계인을 접근하게 허락해줄 수는 없다며 버클리 대학교의 언어학자를 찾아가려 하자 뱅크스 박사는 그 언어학자에게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이란 낱말이 무엇이며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얼마 후 돌아온 웨버는 뱅크스에게 '전쟁'은 산스크리트어로 gavisti이며 '논쟁(an argument)'이라고 해석했다고 전한다. 뱅크스는 같은 단어를 '소를 더 원하는 것(a desire for more cows)'이라고 해석한다. 이에 웨버는 뱅크스를 다른 언어학자 대신 뱅크스를 데리고 가기로 결심한다.

산스크리트어 गविष्टि gáviṣṭi '가비슈티'는 '전쟁'보다는 '전투'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소'를 뜻하는 गो 에 '원하는 것'을 뜻하는 इष्टि ‎iṣṭi가 합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소털이가 분쟁의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어원인데 문화와 언어는 떼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든 예 같다. 하지만 보통 말하는 '전쟁'이란 뜻의 단어로는 युद्धम् yuddhám '유담'이 있으니 영화에서 쓴대로는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은 다리가 일곱 개라고 하여 고대 그리스어로 '일곱'을 뜻하는 ἑπτά heptá '헵타'에서 온 hepta-와 '다리'를 뜻하는 πούς poús '푸스'의 속격형 ποδός podós '포도스'에서 온 -pod를 합친 '헵타포드(heptapod)'라고 부른다. 뱅크스 박사의 노력으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영화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미군의 웨버 대령(포리스트 휘터커 분)은 뱅크스 박사에게 빨리 외계인들에게 온 목적을 물어볼 수 없냐고 다그친다. 그러자 뱅크스 박사는 '캥거루'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선원들이 주머니에 새끼를 넣고 뛰어다니는 동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원주민에게 물어보았더니 '캥거루'라고 대답해서 그렇게 불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캥거루'는 원주민의 언어로 '못 알아듣겠다'라는 뜻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고 나서 웨버 대령이 자리를 뜨자 이를 듣고 있던 물리학자 이언 도널리(제러미 레너 분)이 뱅크스 박사에게 훌륭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자 뱅크스 박사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지만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전달한다고 대답한다.

'캥거루'라는 이름의 유래〉라는 글에서 다룬 것처럼 '캥거루'라는 영어 이름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언어 가운데 하나인 구구이미디르어에서 실제로 캥거루를 부른 이름에서 나왔지 '못 알아듣겠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잘못된 상식을 퍼뜨리는 것으로 보여 걱정했는데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도 일부러 대령을 속인 것이었다.

외계인들의 언어는 실제 언어학자의 자문을 통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을 누설하지는 않겠다. 영화에서는 사고가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외계인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외계인과 같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은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 그들이 쓰는 언어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는 언어결정론으로 볼 수 있다. 이 강한 가설은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더구나 촘스키를 필두로 언어의 보편적인 특징을 강조하게 된 20세기 중반에는 개별 언어의 차이에 따른 영향을 다룬 사피어·워프 가설은 찬밥 신세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 여러 연구를 통해 제한적으로 상황에 따라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약한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결과도 나왔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언어학자 로만 야콥손은 '본질적으로 언어는 전달해야 하는 것에서 차이가 나지 전달할 수 있는 것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Languages differ essentially in what they must convey and not in what they may convey)'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각각의 언어는 전달해야 하는 필수 요소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높임말을 쓰기 때문에 끊임없이 말하는 상대를 비롯하여 거론되는 여러 이들의 상하 관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높임말을 쓰지 않은 영어와 같은 언어를 쓰는 이보다 여기에 신경을 쓰게 되어있다. 한국어를 쓰는 이는 영어를 쓰는 이에게는 없는 초능력이 있어서 언제 높임말을 쓸지 아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세계를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언어에서 필수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을 더 신경쓰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오감을 통해 세계를 인지하면서 시시각각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두뇌는 그 가운데에 사고를 위해 필수적인 정보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걸러낸다. 이 과정에서 언어에 따라 필수적인 정보가 무엇인지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라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이미 모든 이들이 세계를 인지하는 것 가운데 자신의 언어에서 요구하는 부분에 따라 특정 부분에 집중적으로 신경을 써서 그러는 것이지 다른 언어의 화자들이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터득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는 분명히 다른 생명체인 외계인의 언어를 배운다고 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까지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은 판타지다운 시적 허용으로 이해해야 하겠다.

뱅크스는 딸 해나(Hannah)에게 Hannah가 회문(回文), 즉 거꾸로 읽어도 제대로 읽은 것과 같은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영어로는 '팰린드롬(palindrome)'이라고 한다. 영화의 미국 개봉일은 11월 11일이었고 한국 개봉일은 2월 2일이었던 것도 비슷한 의도로 보인다.

언어와 관계된 세부적인 사항 가운데 이런저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 언어학자를 그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손에 쥔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언어와 생각의 관계와 같은 깊은 주제를 다룬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많지만 상대방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한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지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으면 좋겠다. 자동 번역기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서 가까운 미래에는 언어의 장벽이 무너질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언어에 담긴 상대방의 문화와 사고 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장벽은 남아있을 것이다.

덧글

  • bearpaw 2017/02/14 01:41 # 삭제 답글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SF와 판타지를 구분해 주시면 더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그리고 사이언스 픽션의 역어인 공상과학은 시초부터 잘못된 표현인데다가 '공상'은 허황된 생각이라는 부정적인 뜻이 있어서 요즘은 잘 안 쓰고 그냥 SF라고 합니다.
  • 끝소리 2017/02/14 02:52 #

    덧글 감사합니다. SF라는 표현은 본 적이 있고 이게 한국에서 science fiction의 준말로 쓰는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지만(영어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에스에프'가 표제어로 실려있네요. '공상'이 크게 부정적인 뜻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팬덤에서 그렇게 여긴다면 표현을 바꿔보겠습니다. 그런데 SF와 판타지의 경계가 뚜렷한 것은 아니고 스포일러인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도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bearpaw 2017/02/14 16:41 # 삭제 답글

    어...영어권 화자들은 사이언스픽션이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Sci-fi라는 슬랭을 쓰기도 하지만 글에서는 SF novel, SF movie 하는 식의 약칭도 곧잘 씁니다. SFnal이라는 형용사까지 만들어 쓰는데요. ^^

    영화는 소설과는 달리 영상적으로도 suspension of disbelief가 기능해 줘야 하니 판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판타스틱한 요소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원작 중편인 Story of Your Life는 완벽한 하드SF였습니다.
  • 끝소리 2017/02/16 04:54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SF story, SF novel 등이라고 하면 science fiction도 되지만 speculative fiction (사변물)을 이를 수도 있다네요. 둘이 겹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SFnal이 무언가 했는데 science fictional을 줄인 신조어이군요. 처음 배웠습니다.
  • bearpaw 2017/02/15 00:18 # 삭제 답글

    https://youtu.be/AkZzUWSiyn8

    영화 컨택트에 자문으로 참가한 맥길의 언어학자들과의 인터뷰인데 재밌습니다. 인지이론 쪽도 꽤 충실한듯.
  • 끝소리 2017/02/16 05:01 #

    예, 실제 언어학자 사무실의 책을 영화에서 소품으로 쓴 이야기나 언어학 이론이 외계 언어에는 어떻게 적용될지 이야기도 있네요. The Ling Space라는 언어학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만든 것인데 이 채널 다른 동영상도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 2017/02/19 19: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2/20 23: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2/21 11: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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