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 탐사선 주노와 그리스·로마 신화 표기 용례

2011년 8월 5일 발사된 미국 항공 우주국의 목성 탐사선 '주노'가 5년 가까운 여정 끝에 미국 시각으로 지난 7월 4일 밤 목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국내 보도에서 하나같이 쓰고 있는 표기 '주노'는 영어 이름 Juno [ˈʤuːn.oʊ̯]를 따른 것이다. 이 이름은 로마 신화의 유노(라틴어: Juno)에서 왔다. 즉 탐사선 이름은 라틴어 발음에 따른 표기인 '유노' 대신 영어 발음에 따른 표기인 '주노'로 쓰고 있는 것이다.

목성 궤도에 진입한 주노 탐사선을 그린 상상도(출처)

로마 신화의 유노는 그리스 신화의 우두머리 여신인 헤라(고대 그리스어: Ἥρα Hḗra)에 해당한다. 헤라는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고대 그리스어: Ζεύς Zeús)의 누이이자 아내이다. 제우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유피테르(라틴어: Juppiter)라고 부른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신들의 이름만 그에 대응되는 로마 신들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2세기경 로마에서 제작된 유노의 대리석상. 코·입·목·팔·발 등은 후대에 복원한 것으로 천문의 여신인 우라니아(고대 그리스어: Οὐρανία Ouranía, 라틴어: Urania)인 것처럼 한 손에 구체를 든 모습도 추가되었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출처).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원조는 그리스 신화라는 것을 인정하여 신들의 이름도 고대 그리스어 이름을 따라 '제우스', '헤라'로 부르는 것이 친숙하지만 대부분의 유럽 언어에서는 오랫동안 라틴어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로마식 이름을 주로 썼다. 그래서 이런 로마식 이름은 대개 현대 유럽 언어, 특히 영어를 통해 접하기 마련이고 영어식 발음으로 친숙한 것이 많다. 미와 사랑의 여신은 고대 그리스어 이름에 따라 '아프로디테(Ἀφροδίτη Aphrodítē)'라고 부르거나 영어 이름에 따라 '비너스(Venus [ˈviːn.əs])'라고 부르지 라틴어 이름에 따라 '베누스(Venus)'로 부르는 것은 낯설다. 사실 고전 라틴어에서 v의 발음은 [w]이었으니 '웨누스'로 쓰는 것이 원래의 발음에 가깝겠지만 〈외래어 표기 용례의 표기 원칙〉 가운데 포함된 라틴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서는 라틴어의 v의 표기를 'ㅂ'으로 통일하였다. 그의 아들인 사랑의 신은 고대 그리스어 이름을 따른 '에로스(Ἔρως Érōs)' 또는 영어 이름을 따른 '큐피드(Cupid [ˈkjuːp.ᵻd])'로 친숙하지 라틴어 이름인 '쿠피도(Cupido)'는 처음 듣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영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 언어에서 목성은 유피테르와 이름이 같다. 영어의 Jupiter [ˈʤuːp.ᵻt̬.əɹ] 주피터, 독일어의 Jupiter [ˈjuː.pi.tɐ] 유피터, 프랑스어의 Jupiter [ʒy.pi.tɛːʁ] 쥐피테르 등은 로마 신의 이름인 동시에 목성의 이름으로도 쓰인다. 라틴어에서는 Juppiter로 주로 쓰였지만 현대 유럽 언어에서는 보통 p가 하나인 형태로 쓰인다.

로마 시대에 알려져 있던 나머지 행성들도 로마 신의 이름을 땄다. 수성은 그리스 신화의 전령신 헤르메스(Ἑρμῆς Hermês)에 해당하는 메르쿠리우스, 금성은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베누스, 화성은 전쟁의 신 아레스(Ἄρης Árēs)에 해당하는 마르스, 토성은 농경의 신인 티탄족 크로노스(Κρόνος Krónos)에 해당하는 사투르누스로 불렀다.

1781년에 발견된 천왕성은 예외적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Οὐρανός Ouranós)를 라틴어화한 Uranus로 이름지어졌다. 그리스 신화의 우라노스에 대응하는 로마 신은 카일루스(라틴어: Caelus)이다.

그 후에는 다시 행성에 로마 신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부활되어 1846년 발견된 해왕성은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신 포세이돈(Ποσειδών Poseidôn)에 해당하는 로마 신인 넵투누스의 이름을 땄고 지금은 왜행성으로 분류되지만 1930년 발견된 후 오랫동안 행성으로 여겨졌던 명왕성도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ᾍδης Hāídēs 하이데스)에 해당하는 로마 신인 플루토의 이름을 땄다. 고전 그리스어 이름을 따르면 '하이데스'로 써야 하지만 긴 이중모음 ᾳ āi의 발음이 변하여 나중에 α a와 합쳐졌기 때문에 이를 라틴어화한 Hades를 따라 '하데스'로 쓰는 것이 표준 표기로 정해졌다(《표준국어대사전》 기준).

라틴어영어독일어프랑스어
수성Mercurius 메르쿠리우스Mercury [ˈmɜːɹk.juə̯ɹ.i, -jəɹ.i] 머큐리Merkur [mɛʁ.ˈkuːɐ̯] 메르쿠어Mercure [mɛʁ.kyːʁə] 메르퀴르
금성Venus 베누스Venus [ˈviːn.əs] 비너스Venus [ˈveː.nʊs] 베누스Vénus [ve.nys] 베뉘스
화성Mars 마르스Mars [ˈmɑːɹz] 마스Mars [ˈmaʁs] 마르스Mars [maʁs] 마르스
목성Jupitter 유피터Jupiter [ˈʤuːp.ᵻt̬.əɹ] 주피터Jupiter [ˈjuː.pi.tɐ] 유피터Jupiter [ʒy.pi.tɛːʁ] 쥐피테르
토성Saturnus 사투르누스Saturn [ˈsæt̬.ɜːɹn, -əɹn] 새턴Saturn [za.ˈtʊʁn] 자투른Saturne [sa.tyʁnə] 사튀른
천왕성Uranus 우라누스Uranus [ˈjʊə̯ɹ.ən.əs] 유러너스Uranus [ˈuː.ʁa.nʊs] 우라누스Uranus [y.ʁa.nys] 위라뉘스
해왕성Neptunus 넵투누스Neptune [ˈnɛp.tjuːn] 넵튠Neptun [nɛp.ˈtuːn] 넵툰Neptune [nɛp.tynə] 넵튄
명왕성Pluto 플루토Pluto [ˈpluːt̬.oʊ̯] 플루토Pluto [ˈpluː.to] 플루토Pluton [ply.tɔ̃] 플뤼통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이탈리아어: Galileo Galilei [ɡa.li.ˈlɛˑ‿o ɡa.li.ˈlɛˑ‿i])는 1610년 1월경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찰하여 그 주변에 위성 네 개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늘날에는 목성을 공전하는 67개의 위성이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네 개의 위성들을 갈릴레이가 발견했다 하여 '갈릴레이 위성'이라고 부른다.

목성과 갈릴레이 위성을 동일 축척으로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든 복합도. 위성은 위에서부터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출처).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천문학자 시몬 마리우스(라틴어: Simon Marius 독일어: [ˈziː.mɔn ˈmaː.ʁi̯ʊs] 지몬 마리우스, 본명은 지몬 마이어 독일어: Simon Mayr [ˈziː.mɔn ˈmaɪ̯.ɐ])도 독자적으로 같은 위성 네 개를 발견하였다. 오늘날 이들은 갈릴레이가 아니라 마리우스가 지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우스는 새로 발견한 위성들을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독일어: Johannes Kepler [jo.ˈha.nəs, -nɛs|ˈkɛp.lɐ])의 제안을 따라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유피테르(제우스)의 연인들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하여 이오(라틴어: Io), 유로파(라틴어: Europa 에우로파), 가니메데(라틴어: Ganymedes 가니메데스), 칼리스토(라틴어: Callisto)의 이름이 붙여졌다. 각각 그리스 신화의 이오(Ἰώ Iṓ), 에우로페(Εὐρώπη Eurṓpē), 가니메데스(Γανυμήδης Ganumḗdēs), 칼리스토(Καλλιστώ Kallistṓ)에 해당하며 모두 제우스가 연정을 품었던 주인공들이다. 주요 신이 아닌 인물들이라 로마식 이름이 따로 없고 단지 고대 그리스어 이름을 라틴어식으로 옮겼다.

이오와 칼리스토는 라틴어 이름에 따른 표기이지만 유로파는 Europa의 영어 발음인 [juə̯.ˈɹoʊ̯p.ə]에 따른 표기이다. 가니메데는 영어 이름인 Ganymede [ˈɡæn.ᵻ.miːd] 개니미드를 라틴어식으로 읽은 것일 테지만 우연히도 이탈리아어 이름인 Ganimede [ɡa.ni.ˈmɛː.de]를 한글로 표기한 것과 형태가 일치한다. 그래도 신화 인물을 이를 때는 고대 그리스어 및 라틴어 형태를 따른 가니메데스로 쓰기 때문에 한글 표기에서는 목성의 위성과 신화 인물의 이름이 달라지는 결과가 되었다.

로마 신화에서 이름을 딴 천체의 이름의 표기는 라틴어 이름에 따라 한글 표기를 통일했으면 좋을지 몰라도 유로파나 가니메데처럼 이 기준에 맞지 않는 표기로 굳어져 관용으로 인정되는 예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름도 유로파처럼 영어 발음에 따라 표기한다고 치면 이오는 '아이오([ˈaɪ̯.oʊ̯])', 가니메데는 '개니미드', 칼리스토는 '컬리스토/캘리스토([kə.ˈlɪst.oʊ̯, kæ-])'가 되는 등 형태가 많이 달라져 오히려 혼란이 증가한다.

신화의 틀로 보면 이런 유피테르/제우스의 연인들로 둘러싸인 목성에 그의 아내 유노/헤라의 이름을 딴 탐사선이 찾아간다는 것도 재미있다. Juno는 영어와 라틴어 이름의 형태가 같다. 원래 고전 라틴어에는 i와 j, u와 v의 구별이 없이 각각 I, V의 형태로 적었다(당시에는 대소문자의 구별도 없어서 글자의 형태는 오늘날의 대문자와 비슷했다). 그 후 중세 라틴어에서 음절초 자음으로 발음되는 경우에 j, v로 적고 나머지는 i, u로 적어 구별하기 시작했다. 원래 고전 라틴어에서 [w]로 발음되던 v는 대부분의 유럽 언어에서 [v]로 변했고 반자음 [j]로 발음되던 j는 언어에 따라 [j], [ʒ][ʤ] 등으로 다양하게 변했는데 j를 보통 [ʤ]로 발음하는 영어권에서는 이런 전통 표기 방식을 따르면 고전 라틴어 발음과 너무 달라진다며 j를 모두 i로 적는 경우도 있다. Juno, Juppiter 대신 Iuno, Iuppiter로 쓰는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쓰는 이들도 보통 u와 v의 구별은 전통대로 지킨다. 라틴어의 한글 표기에서는 j를 반모음으로 처리하여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한 음절로 적기 때문에 i, j의 구별은 전통대로 지키는 것이 편하다. Iuno로 적으면 '유노'인지 '*이우노'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Juno로 적으면 '유노'가 맞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탐사선 이름 Juno는 로마 신화의 유노에서 이름을 딴 것이지만 영어식으로 '주노'로 표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미국 항공 우주국의 탐사선이니 원어를 영어로 볼 수 있으며 '유노'라는 이름이 친숙하다면 몰라도 굳이 라틴어식으로 적을 필요가 없다.

미국 최초의 인간 우주 비행 계획 이름인 Mercury는 영어 발음인 [ˈmɜːɹk.juəɹ.i, -jəɹ.i]에 따라 '머큐리'로 적는다. Mercury는 앞서 본 것처럼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에 해당하는 로마의 신이자 수성의 라틴어 이름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의 영어 형태이다. 이 경우에는 영어와 라틴어 형태가 다르니 우주 비행 계획 이름은 라틴어가 아니라 영어 이름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1990년에서 2009년까지 임무를 수행한 태양 관측용 무인 탐사선 율리시스(Ulysse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Ὀδυσσεύς Odusseús)의 라틴어식 영어 이름을 딴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어 방언형 Οὐλίξης Oulíksēs가 에트루리아어를 거쳐 로마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라틴어로 울릭세스(Ulixes)라는 사뭇 다른 형태로 둔갑했는데 이게 후기 라틴어에서 Ὀδυσσεύς Odusseús에 해당하는 라틴어형 Odysseus의 영향을 받아 울리세스(Ulysses)라는 형태로도 흔히 쓰이게 된 것이 영어 이름의 어원이다. 영어 발음 전통적으로 둘째 음절에 강세가 오는 [ju.ˈlɪs.iːz]이지만 요즘에는 첫째 음절에 강세가 오는 [ˈjuːl.ᵻ.siːz]가 흔히 쓰이며 한글 표기는 강세와 상관없이 둘 다 '율리시스'이다. 《율리시스》는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영어: [ˈʤeɪ̯mz ˈʤɔɪ̯s], 1882년~1941년)가 1922년 발표한 영어 소설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 탐사선 이름도 영어 발음에 따라 '율리시스'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 초판 표지(출처).

이렇듯 우주 탐사에 쓰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온 라틴어 어원의 영어 이름은 영어 발음에 따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미국 우주 항공국의 2인승 유인 우주 계획이었던 Gemini 계획, 달을 탐사한 Apollo 계획은 영어 발음이 각각 [ˈʤɛm.ᵻ.naɪ̯][ə.ˈpɒl.oʊ̯]로 이에 따라 적으면 '제미나이', '어폴로'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표준 표기는 '제미니', '아폴로'이다.

게미니(Gemini)는 쌍둥이자리를 뜻하는 라틴어 이름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스토르(Κάστωρ ‎Kástōr)와 폴리데우케스(Πολυδεύκης ‎Poludeúkēs, 라틴어식으로는 Polydeuces)를 이른다. 이들의 라틴어 이름은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이며 gemini는 라틴어로 단순히 '쌍둥이'를 뜻하는 geminus 게미누스의 남성 복수형이다.

제미니 계획 표식(출처).

Gemini를 고전 라틴어 발음을 따르면 '게미니'이지만 후기 통속 라틴어가 로망 어군에 속하는 여러 언어로 바뀌면서 i, e 등 전설 모음 앞의 g는 음가가 원래의 [ɡ]에서 [ʤ][ʒ][x] 등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들 언어의 발음을 따르면 한글 표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 Gemini는 [ˈʤɛː.mi.ni]로 발음되며 이에 따른 한글 표기는 '제미니'이다. 영어는 거기에 대모음 추이로 인한 모음 발음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Gemini의 전통 발음은 [ˈʤɛm.ᵻ.naɪ̯] 제미나이가 된 것이다. 대모음 추이는 bite 같은 단어에서 중세 영어의 [iː]가 오늘날의 [aɪ̯]로 변하고 mate 같은 단어에서 [aː]가 [eɪ̯]로 변하는 등 영어의 모음 체계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를 말한다.

그런데 실제 영어에서 쓰이는 라틴어 어휘의 발음은 꽤 혼란스럽다. 20세기 중반, 대모음 추이를 겪은 전통 발음이 원래의 라틴어 발음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는 것을 인식한 영어권의 라틴어 교육자들은 전통 발음 대신 유럽 대륙에서 흔히 쓰는 이탈리아식 교회 라틴어나 복원된 고전 라틴어 발음을 흉내낸 발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라틴어 낱말도 전통 발음, 교회 라틴어식 발음, 고전 라틴어식 발음 등 여러 발음으로 쓰이는 예가 나타났다.

단적으로 원래 라틴어에서 '젖먹이', '유아'를 뜻하였고 영어에서 '졸업생', '동문'을 뜻하게 된 alumnus (라틴어로는 '알룸누스', 영어 발음은 [ə.ˈlʌm.nəs] 얼럼너스)의 남성 복수형인 alumni (라틴어로는 '알룸니')는 전통 발음으로 [ə.ˈlʌm.naɪ̯] 얼럼나이, 여성 복수형인 alumnae (라틴어로는 '알룸나이')는 전통 발음으로 [ə.ˈlʌm.ni] 얼럼니이지만 고전 라틴어 발음을 흉내낸 발음에서는 정반대로 alumni가 [ə.ˈlʌm.ni] 얼럼니, alumnae가 [ə.ˈlʌm.naɪ̯] 얼럼나이이다. 어느 발음 방식을 따르느냐에 따라 남성형과 여성형이 뒤바뀌는 것이다. 여기에 교회 라틴어를 흉내낸 발음에서는 alumni가 [ə.ˈlʌm.ni] 얼럼니, alumnae가 [ə.ˈlʌm.neɪ̯] 얼럼네이로 발음된다. 그러니 alumnae는 영어 발음이 세 가지나 된다. 오늘날에는 라틴어를 배우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어차피 남성형, 여성형을 제대로 구별하는 영어 화자는 찾기 힘들고 쉽게 alum [ə.ˈlʌm] 얼럼으로 줄여 쓰거나 심지어 남성 복수형인 alumni를 성과 수에 상관없이 불변형인 것처럼 쓰는 것이 보통이다.

Gemini의 경우 전통 발음인 [ˈʤɛm.ᵻ.naɪ̯] 제미나이 외에도 -i를 고전 라틴어나 교회 라틴어식으로 발음한 [ˈʤɛm.ᵻ.niː] 제미니, 심지어 고전 라틴어를 흉내내어 어두 자음도 [ɡ]로 발음하는 ɡɛm.ᵻ.niː] 게미니도 같이 쓰인다. 그러니 '제미니'는 전통 발음은 아니지만 영어에서도 가능한 발음을 따른 표기이다.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음악과 시, 예언을 주관하는 태양의 신 아폴론(Ἀπόλλων Apóllōn)의 라틴어 이름이다. 어미만 라틴어식으로 바꾸었지 그리스어 형태와 거의 같다. 하지만 '아폴로'는 라틴어 이름이라고 인식하고 표기한 것이라기보다는 영어 이름을 따른 관습 표기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영어의 관습적인 표기에서 무강세 음절의 [ə]로 발음되는 a는 '아'로 흔히 적는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의 [ə]는 '어'로 적으며 어말의 [ə]로 발음되는 -a만 '아'로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은 1969년이니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고시되기 이전부터 '아폴로'로 표기가 굳어졌다. America [ə.ˈmɛɹ.ᵻk.ə] 어메리카를 '아메리카'로 적는 것도 마찬가지로 관습적인 표기를 인정한 예이다. 물론 America를 라틴어나 이탈리아어 이름으로 보면 '아메리카'로 적는 것이 맞지만 영어에서만 쓰이는 형용사형 American [ə.ˈmɛɹ.ᵻk.ən] 어메리컨도 '아메리칸'으로 적는 것을 보면 '아메리카'와 '아메리칸'은 영어 단어를 적은 관습적인 표기가 맞다.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버즈 올드린(Buzz Aldrin)을 달 표면에서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찍은 사진(출처).

영어는 광범위한 모음 약화와 대모음 추이로 인해 라틴어에서 온 어휘의 발음이 다른 유럽 언어에서 쓰는 발음과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여러가지 다른 발음 방식이 쓰이고 있으니 한글 표기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Juno는 영어 발음에 따라 '주노'로 적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지만 우주 탐사에 쓰이는 라틴어에서 온 영어 이름의 표기는 간단한 규칙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다.

지난 글에서 다룬 유럽우주국(ESA)의 탐사 로봇 필레(Philae)의 표기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Philae는 이집트의 고대 그리스어식 지명의 라틴어 형태인데 유럽우주국은 공용어가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이며 본부가 프랑스에 있고 관제 센터가 독일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한글 표기를 프랑스어 발음 [fi.le]와 독일어 발음 [ˈfiː.lɛ]를 따른 '필레'로 정했다. Philae의 전통 영어 발음은 [ˈfaɪ̯l.iː] 파일리, 교회 라틴어식 발음은 [ˈfiːl.eɪ̯] 필레이인데 유럽우주국 직원들은 영어로 말할 때 후자를 주로 쓰는 것 같다. Philae가 친숙한 이름이 아니라서 전통 영어 발음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어와 독일어 발음과 비슷한 교회 라틴어식 발음을 쓰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신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짝퉁 정도로 여겨져 원래의 라틴어 발음을 따른 표기로는 우리에게 별로 친숙하지 않지만 우주 탐사라는 뜻밖의 분야를 통해서 '주노', '머큐리' 등 영어식으로 발음한 로마 신들의 이름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

덧글

  • UnPerfect 2016/08/02 02:41 # 답글

    예전에 Magnifi Gramarye라는 가상의 비디오 게임 캐릭터 이름을 한글로 적으려는데, 영어 화자들의 발음으로는 분명 '매그니파이'로 발음되는데 이게 영 어색해서 결국 '매그니피 그래머리'로 적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이 글을 보니 어말 i의 발음 자체가 일정치 않은 탓이었군요. 영어가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면서도 철자법이 일정치 않은 것이 한글 표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 끝소리 2016/08/02 03:23 #

    가상의 캐릭터이니 별 상관은 없겠지만 Magnifi라는 낯선 이름을 접하는 영어 화자들도 발음을 잘 몰라 혹은 '매그니피'로, 혹은 '매그니파이'로 발음할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어말 i는 Andi, Toni 등 전통적으로 y를 쓰던 이름을 여성형 느낌을 주려고 쓸 때도 있는데 이 때는 보통 '이'이지만 라틴어에서 온 alibi 같은 말 외에도 WiFi, Jedi 등에서 심심찮게 '아이'로 발음되니 복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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