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무소심의확정안의 오류 몇 개 (에시엔 보너스) 외래어 표기 실무

오류투성이인 제92차 외래어심의위 결정안 분석에 이어 최근 외래어심의위 실무소위원회에서 확정한 표기 몇 개를 살펴본다. 확정안 전문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 드마르제리, 크리스토프 Christophe de Margerie 1951~ 프랑스 기업인. 토탈(Total)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프랑스어에서 Margerie의 발음은 /maʁʒəʁi/이다. '드마르주리'로 적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다.

․ 렝데르, 디디에 Didier Reynders 1958~ 벨기에 정치가. 재무장관(1999~ ).

프랑스어권 출신 인물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보고 정한 표기이다. 하지만 Reynders라는 이름 자체는 네덜란드어 이름이다(네덜란드어로 보고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레인더르스'이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프랑스어 표기에서는 '엥'이라는 표기가 나올 수 없다. 프랑스어에서는 최근 외래어를 제외하고는 원래 /ŋ/이 없기 때문에 프랑스어의 한글 표기에서 'ㅇ' 받침으로 적는 것은 비음화된 모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프랑스어의 /ɛ̃/은 '앵'으로 적어야 한다. 실제 현대 프랑스어 발음에서는 [æ̃] 내지는 심지어 [ã]로 발음되기 때문에 한글 표기를 '앵'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니 '렝데르'는 프랑스어 이름의 한글 표기로는 잘못되었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다.
더구나 Reynders의 프랑스어 발음은 /ʁɛ̃dɛʁs/이다. '랭데르스'로 적어야 한다. 보통 프랑스어에서 어말 자음을 발음하지 않는다고 상식처럼 알고 있지만 토박이 단어에서도 예외가 무수히 많을 뿐만 아니라 외국어에서 온 이름의 어말 자음은 대개 묵음이 아니다. 특히 어말의 -rs는 lors '로르', vers '베르' 등 토박이 단어에서만 /ʁ/로 발음되고 외래어에서는 거의 확실히 /ʁs/로 발음된다. 심지어 토박이 단어인 mars '마르스', ours '우르스'에서도 /ʁs/로 발음된다.

․ 안레센, 스베인 Svein Andresen 금융안정위원회(FSB) 사무총장. 노르웨이 인.

노르웨이어에서 nd의 d는 묵음이 아닐 때도 있으며 특히 ndr의 d는 '드'로 적어야 한다. 기존 용례 가운데 Aasen, Ivar Andreas는 '오센, 이바르 안드레아스'라고 정해진 전례도 있다. 이를 분명히 국립국어원에 수차례 지적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Andresen을 '안레선'이라고 적었다. 그럼 국립국어원에게 물어보겠다. 노르웨이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에서 Trivandrum을 '트리반드룸'이라고 적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와 같이 기존 용례를 모두 따질 필요 없이 노르웨이어 표기 규정에 나오는 예만 살펴봐도 노르웨이어 표기는 기계적인 규칙 적용이 아니라 원 발음을 따져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Andresen은 '안드레센'이라고 적는 것이 맞다.


프랑스어의 /ɛ̃/의 표기에 대한 부연 설명

프랑스어에서 어말이나 자음 앞의 in, im, ain, aim, ein, eim, 일부 en은 보통 /ɛ̃/으로 발음되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앵'으로 적어야 한다. Lupin /lypɛ̃/은 '뤼팽', Saint Germain /sɛ̃ʒɛʁmɛ̃/은 '생제르맹'으로 적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 규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국어에서도 '에'와 '애'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고 /ɛ̃/ 이외에는 프랑스어에서 '애'로 적는 모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지 '엥'으로 쓰는 일이 흔하다. 벨기에 테니스 선수 Justine Henin도 '쥐스틴 에냉'으로 적는 것이 맞는데 이따금 '에넹'이라고 적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이클 에시엔 (사진 출처)


그런가하면 특히 현대 파리에서 쓰는 [æ̃] 내지는 [ã]에 가까운 발음에 이끌려 /ɛ̃/을 '앙'으로 잘못 적는 일도 많다. 가나 축구 선수인 Michael Essien은 프랑스 리그에서 처음 알려져서 그런지 '미카엘 에시앙'으로 아직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누군가가 프랑스어식 발음을 추측하여 쓴 표기일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어에서 어말의 -ien은 /jɛ̃/으로 보통 발음되며 이에 따르면 '에시앙'이 아니라 '에시앵'으로 적어야 맞다.

하지만 가나는 프랑스어권이 아니며 Essien도 프랑스어 이름이 아니니 '에시앙'이나 '에시앵'으로 적을 이유가 전혀 없다. 심지어 프랑스 해설가들도 이 이름을 '마이클 에시엔' /majkəl ɛsjɛn/으로 발음한다. 표준 한글 표기도 '마이클 에시엔'이다. 원어를 잘못 알고 발음을 잘못 추측해서 썼던 표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덧글

  • 익명희망 2010/10/25 11:59 # 삭제 답글

    프랑스어권 이름에 대한 이야기라니까 생각났는데, 얼마 전에 사망한 수학자 Benoit Mandelbrot의 이름은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 집안은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고,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생애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보냈고, 위키백과에서도 각 언어마다 어떻게 이름을 읽는지에 대한 견해가 통일되어있지 않더군요. 일단 한국어판에서는 만델브로라고 쓰는 모양입니다만, 이것도 외래어로 보아 어말의 자음을 발음해주어야(만델브로트) 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 끝소리 2010/10/26 03:26 #

    본인이 쓴 프랑스어 발음은 [mɑ̃dɛlbʁot]라는군요. 이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망델브로트'입니다.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 모르겠네요. 독일어 표기 규정에 따라 적으면 '만델브로트'이며 영어로는 발음이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 다스커피하우스 2010/10/26 09:59 # 답글

    프랑스어에서는 s가 보통 묵음이지만, 예외도 있는 건 잘 알겠습니다.(프랑스 각지 방언, 벨기에 등지 등)
    시에예스(Sieyès, 프랑스의 정치가)도 있죠.

    b가 묵음인 경우도 있는데,
    어려운 부분은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homb, 벨기에 작가-원래 발음은 '노통'이겠지만)가 있죠.
  • 끝소리 2010/10/26 15:58 #

    벨기에에서 흔한 이름인 Nothomb의 경우는 b가 묵음이기도 하고 묵음이 아니기도 한 것 같습니다.
    http://fr.wikipedia.org/wiki/Nothomb_(Belgique) 에는 발음이 /nɔ.tɔ̃(b)/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 한심한외래어 2010/10/26 23:07 # 삭제 답글

    오늘날 한국의 외래어표기 원칙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봅니다. 무슨 규칙 거창하게 만들어놓으면 뭐합니까. 위에서부터 별 관심이 없어서 전혀 지키려고 하지를 않는데요. 또 그걸 안다는 사람들은 서로 자기 잘났다고 안지키려고 하고.... 한국사람들이 로마자이름 자기 원하는대로 적듯이 외국의 인명들도 그때그때 편한대로 적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덜 혼동을 주지 않을지요.....
  • 끝소리 2010/10/27 02:45 #

    원칙을 없애고 그때그때 편한대로 적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 각 언어의 발음에 대한 정보 축적과 한글로 표기 변환하는 과정의 자동화를 통해 외래어 표기 규정에 맞는 표기를 쉽게 알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입니다.
  • 한심한외래어 2010/11/14 15:30 # 삭제

    세계 각 언어의 발음에 대한 정보 축적과 한글로 표기 변환하는 과정의 자동화를 통해 외래어 표기 규정에 맞는 표기를 쉽게 알아낼 수 있게 해도 지금과 뭐가 달라질까요.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외래어 표기 규정에 의한 표기는 얼마든지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일반인들부터 전문가까지 대부분 무시하죠. 모두가 만족할만한 규정된 표기법을 만들어 낼 수가 있을지부터가 의문입니다.
  • 끝소리 2010/11/16 06:12 #

    현재 일반인이 외래어 표기 규정에 의한 표기를 알아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해결되면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규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규정을 보완해나가려는 노력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2010/11/28 11:5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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