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화자의 [f] 발음 사용에 대한 설문조사 소개

까롤로님이 무성 순치 마찰음 [f]를 한국어에서도 발음하는 현상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준비한 설문조사가 있어 이를 소개한다.

이 소재는 예전에 한국어 발음에 [f]를 혼용하는 현상에서 다룬 적이 있고 앞으로도 쓸 수 있는 내용이 남아있다. 이 현상에 대한 실태 조사를 본 적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 설문조사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이 현상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외래어를 발음할 때만 쓰는 음이 있어 고유 음운 체계에 새로운 음소로 편입될 때 이를 영어로 xenophone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래음소' 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어의 경우

프랑스어에서도 영어에서 차용해서 쓰는 말이 많다. 그런 단어는 '프랑스어식'으로 발음한다. 즉 프랑스어에서 쓰는 음소로 영어 발음을 흉내내는 것이다. '주말'을 뜻하는 영어의 weekend [ˈwiːkɛnd]는 프랑스어에서 그대로 weekend로 차용해서 [wikɛnd]로 발음한다. 프랑스어에는 [i]의 장음 구별이 없으니 원 발음의 장음은 무시한 것인데 이쯤이면 무난하다. 나머지는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쓰는 음이 매우 가까워 발음 기호도 아예 동일하다. 하지만 영어에서 쓰는 발음 가운데 프랑스어에 없는 것이 많아 우리가 듣기에 발음이 상당히 달라지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클럽'의 원 단어인 영어의 club [klʌb]는 프랑스어에서 '클뢰브' [klœb]로 발음한다. 영어의 [ʌ]에 해당하는 음이 없어 [œ]로 대체한 것이다.

또 영어의 parking [ˈpɑː(ɹ)kɪŋ]은 프랑스어에서 '파르킹' [paʁkiŋ]으로 발음한다. 실제 발음을 들어보면 꽤 차이가 난다. 유기음인 영어의 [p]는 무기음인 프랑스어의 [p]와 다르고 [ɑː]와 [a], [ɹ]와 [ʁ]가 다르며 여기서 프랑스어의 [k]는 사실 경구개에서 조음되는 변이음 [c]이라 영어의 [k]와 차이가 있고 [ɪ]와 [i]도 상당히 다른 모음이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같은 음을 쓰는 것은 [ŋ] 정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어 고유 단어에서는 한국어의 'ㅇ' 받침에 해당하는 이 연구개 비음 [ŋ]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parking, camping 등 외래어에서만 쓰는 음이다. 그래서 프랑스어의 발음을 설명할 때 [ŋ]은 아예 언급하지도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어에서 프랑스어를 표기할 때 쓰는 'ㅇ' 받침은 [ŋ]이 아니라 비강 모음을 흉내낸 것이다(예: France [fʁɑ̃s] 프랑스).

원래 프랑스어에서 썼던 음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나이 든 프랑스어 화자들 가운데는 이 발음이 익숙하지 않아 [ŋɡ]와 같이 끝에 [ɡ]를 덧붙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영어 발음을 접하는 이들이 많은 요즘 외래어의 발음에서 [ŋ]을 쓰는 것은 일상적이며 프랑스어 사전의 발음 기호에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프랑스어에서 [ŋ]은 비교적 안정적인 외래음소로 볼 수 있다.

한국어에서 앞으로 [f]를 외래음소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변화할지, 아니면 [f] 발음 사용이 외국어 발음을 접하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생긴 일시적 과시 현상 뿐인지 궁금하다. 설문조사의 결과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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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까롤로 2010/08/27 07:45 # 답글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많이 느꼈던 현상중에 하나입니다.
    단례로 club 같은 단어를 /끌뤼브/라고 해야 할지 영어처럼 그대로 /클럽/으로 해야 할지 처럼 말예요.
  • 끝소리 2010/08/27 08:03 #

    많이 쓰이는 단어는 사전에 나와있으니 발음 기호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club의 프랑스어 발음 [klœb]는 나름 영어 발음을 흉내낸 것이긴 하지만 [œ] 음이 대부분의 한국어 화자들에게는 어려운 발음입니다. 사실 한국어의 '어'도 영어 표준 발음의 [ʌ]와는 차이가 있지만요.

    또 퀘벡에서는 [klyb]라는 발음을 쓴다고 하네요. 퀘벡은 영어에서 온 차용어 발음 양상이 유럽 프랑스어와 꽤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다음 링크에서 프랑스식 발음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fr.wiktionary.org/wiki/club
  • 김괜저 2010/08/27 08:33 # 답글

    잘 읽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ŋ]에 [g]를 붙이는 현상은 연령대별 차이도 있지만 단어 각각과 그 조합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컨데 적어도 파리 사람들은 [ŋɡ]와 [ŋ]을 구별해 발음할 줄 아는 화자일지라도 둘을 딱히 다른 음이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어 대화에 [f]가 들어오면 본 발음과의 차이가 상당한 것 같은데 프랑스어와 같은 방향으로 변할 지 궁금해집니다.
  • 끝소리 2010/08/27 16:05 #

    예, 적어도 프랑스어에느 [ŋɡ]와 [ŋ]의 구별로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마르세유 등 프랑스 남부에서는 표준 발음의 비음화된 모음 대신 [ŋ]을 쓴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프랑스어에서 [ŋ]의 지위에 대한 프랑스어 링크를 찾아서 소개합니다. http://www.persee.fr/web/revues/home/prescript/article/lfr_0023-8368_1983_num_60_1_5172
  • 짙푸른 2010/08/28 00:38 # 답글

    /tʃ/도 있겠지요. 퀘벡에서는 checker(체크하다)라는 말도 구어로서 사용됩니다.
  • 끝소리 2010/08/28 01:57 #

    예, 프랑스에서도 checker는 쓰지 않지만 match 같이 영어에서 온 단어에서 [tʃ]를 씁니다. Jogging에서 쓰는 [dʒ]도 있고요.
  • 캘빈의집 2010/08/28 22:19 # 답글

    끝소리님, 어떤 언어에 음운이 변하는 게 아니라, 딴판인 새 음운이 들어와서 그 언어에 들어오게 되는 (나아가 존재하던 음운과 대립까지 하는) 경우가 있나요?
  • 끝소리 2010/08/29 23:32 #

    얼마든지 그런 경우가 있을 것 같은데 구체적인 예를 들기는 쉽지 않네요. 제가 알기로 라틴어에서는 원래 /z/ 음소가 없었지만 그리스어에서 많은 어휘를 받아들이면서 /s/ 등 기존 음소와 대립하는 음소가 되었습니다.
  • 짙푸른 2010/08/29 23:29 # 답글

    또 음성적인 것만 아니라, 불어에 외래적인 자음인 w, k 등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남부 프랑스에서 만난 어떤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의 아이가 있는데, 글을 쓸 때 보니까 아직 철자 맞추는 것이 미숙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아이가 caca(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니까 kaka라고 쓰더군요. 그만큼 k나 w가 지금의 세대에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끝소리 2010/08/29 23:36 #

    인터넷에서는 표준 철자법을 무시하고 k를 쓰는 글투를 꽤 볼 수 있습니다. qu보다는 k가 경제적이라는 이유도 있겠죠.
  • 2010/10/31 19: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끝소리 2010/11/16 06:15 #

    수고하셨습니다. 결과를 발표하실 생각인가요? 기대가 됩니다.
  • 2014/06/24 17: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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