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롱크호르스트'를 '브론크호르스트'로 바꾼 맹목적 규정 적용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에서 발표한 월드컵 출전 선수명 표기 가운데 준우승팀 네덜란드의 주장 이름을 보자.


Giovanni van Bronckhorst 히오바니 판브론크호르스트

원래 이탈리아어 이름 '조반니'인 Giovanni는 네덜란드어에서도 '조바니' 내지는 '지오바니'로 발음하는 듯하지만 논외로 하고 Bronckhorst의 표기를 주목하자. 이상하지 않은가? 이 선수 이름은 유로 2008 때는 '히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로 심의된 바 있고 언론에서는 표기법에는 맞지 않지만 '반 브롱크호스트'라는 표기도 흔히 쓴다. 'ㅇ' 받침으로 잘 쓰던 것을 왜 'ㄴ'  받침으로 바꾸었을까?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답변이다. "처음에 '브롱크'로 했다가, 외심위 위원의 지적과 표기법에 따라 '브론크'로 표기했습니다."

네덜란드어의 표기 규정에서 nk 앞에 오는 n은 받침 'ㅇ'으로 적게 되어 있다(예: Frank 프랑크, Hiddink 히딩크, Benk 벵크, Wolfswinkel 볼프스빙컬). 뒤따르는 /k/ 때문에 /n/이 [ŋ]으로 자음동화하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Bronckhorst에서는 nk가 아니라 nck이니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지적한 외심의 위원은 네덜란드어에서 정말 nck에서는 n이 자음동화하지 않고 [n]으로 발음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어와 독일어에서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어에서 ck는 /k/를 나타내는 다른 철자일 뿐이므로 Bronckhorst [ˈbrɔŋkhɔrst]에서도 n은 [ŋ]으로 발음된다.

더구나 네덜란드어 표기 규정이 고시되면서 발표된 용례집을 보면 네덜란드의 음악가 Jan Pieterszoon Sweelinck '얀 피터르스존 스베일링크'에서 nck의 n도 받침 'ㅇ'으로 적은 적이 있다. 이 용례집을 준비한 이들은 아마 네덜란드어의 발음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nck의 n도 받침 'ㅇ'으로 적었을 것이다.

결국 Bronckhorst를 '브론크호르스트'로 적은 것은 원래의 발음에 대한 고려는 배제한 채 표기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로 볼 수 있겠다. 외래어 표기법은 현실적으로 외국어 이름 표기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규정을 문자 그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원 언어의 발음을 고려하여 표기를 결정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비슷한 예로 나이지리아의 스웨덴인 감독 Lars Lagerbäck는 이번에 '라르스 라예르베크'로 심의되었다. 규정상 e 앞의 g는 '이'로 적고 뒤따르는 모음과 합치게 되어 있어 이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어에서 e 앞의 g가 무조건 [j]로 발음되는 것이 아니며 무강세 음절에서는 [g]로 발음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lager의 g는 [g]로 발음되니 '라게르베크'로 적는 것이 원 발음에 가깝다. 기존 용례 가운데에도 Pär Lagerkvist는 '페르 라게르크비스트', Selma Lagerlöf는 '셀마 라겔뢰프'가 있다. 아마 스웨덴어 발음을 아는 이들이 '라게르크비스트', '라겔뢰프' 등의 표기를 결정했을 것이다. 반면 '라예르베크'는 스웨덴어 발음은 모르고 스웨덴어 표기 규정만 적용한 결과일 것이다.

발음을 고려하지 않고 규정만 엄격히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프랑스 대표팀 선수 두 명을 예를 들어보자.

Yoann Gourcuff [joan ɡuʁkyf]
William Gallas [wiljam ɡalas]

이번 심의위에서는 '요안 구르퀴프', '윌리암 갈라스'라고 표기를 정했다. 나도 최상의 표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외래어 표기법의 프랑스어 표기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표기이다.

그럼 규정을 엄격히 적용한 표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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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오안 구르퀴프', '우일리암 갈라스'이다. 외래어 표기법을 문자 그대로 따르면 프랑스어에서 어두의 반모음 [j]와 [w]는 각각 '이', '우'로 뒤따르는 모음과 합치지 않고 적어야 한다.

순수 프랑스어에서 반모음 [j]와 [w]는 /i/와 /u/ 뒤에 다른 모음이 따른 결과이다([w]는 이중모음 oi [wa]에서도 나타난다). 이 현상은 꽤 규칙적으로 위 William [wiljam]의 두번째 i가 반모음 [j]로 발음되는 것도 뒤에 /a/가 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반모음 [j]나 [w]로 시작하는 단어도 철자상으로는 보통 /i/, /u/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글 표기로도 '이', '우'로 나누어 적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예: hier [(i)jɛr] '이에르', ouest [wɛst] '우에스트').

그런데 Yoann은 원래 브르타뉴어 이름이고 William은 원래 영어 이름 '윌리엄'이다. 이들 이름에서 나타나는 반모음 [j]와 [w]는 철자상으로도 y, w로 적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순수모음 /i/와 /u/가 변화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반모음이다.

따라서 이를 '이오안', '우일리암'으로 적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 규정에 나와있는 것에만 매달려서 표기를 정하면 이런 우스운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을 쓰는 모든 이들이 원 언어의 발음을 알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올바른 표기를 심의하는 이들은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원 발음을 충분히 확인하고 표기를 결정하기를 당부한다.

적어도 예전에 '판브롱크호르스트'로 심의되었던 멀쩡한 표기를 '판브론크호르스트'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일은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덧글

  • 迪倫 2010/07/16 11:34 # 답글

    아, 오래만에 다시 글을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리고, 역시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 더치어에서의 g를 [ㅎ]으로 표기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발음인지 알려주시면 합니다. ㅎ으로 표기하는 발음도 /h/ 외에도 /ç/나 /x/도 모두 /ㅎ/으로 표기할 수 있는데, 더치어의 [g]는 어떤 발음에 가까운지요? 위의 Giovanni = 히오바니를 보고 문득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주제에서 좀 벗어나서 죄송합니다)
  • 끝소리 2010/07/16 15:39 #

    네덜란드어의 g는 네덜란드에서는 보통 유성 연구개 마찰음 /ɣ/를, 벨기에에서는 유성 경구개 마찰음 /ʝ/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여러 지역에서 마찰음은 여러 위치에서 무성음으로 발음되므로 이 경우 실제로는 [x] 내지는 [χ]로 발음됩니다. 특히 암스테르담이나 프리슬란트를 비롯한 북부에서는 g가 언제나 [x] 내지는 [χ]로 발음됩니다.
  • 迪倫 2010/07/17 11:26 #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결국 우리말에서는 /ㅎ/이 가장 유사한 소리이군요...

    그나저나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끝소리 2010/07/19 06:52 #

    감사합니다. 사실 요즘 일이 바빠 얼마나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좋은 한 주 보내세요.
  • 나그네 2010/07/22 07:21 # 삭제

    더치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스페인어, 폴란드어 같은 언어 이름을 스패니쉬, 폴리쉬로 영어 이름 그대로 부르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아주 잘못된 습관이죠
  • 끝소리 2010/07/22 15:57 #

    옳은 지적입니다. 특히 영어에서만 쓰는 Dutch에서는 네덜란드를 연상하기가 어려워 불필요한 혼란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 나그네 2010/07/22 18:37 # 삭제 답글

    아주 적확한 지적입니다.
    전에도 네덜란드 사람 Bruijn(브라윈, 이 표기가 맘에 드느냐는 둘째치고)을 브뤼에인이라고 어처구니없이 표기한 경우가 있었고 (uij는 그냥 ui에 해당) 성씨가 독일계인 체코 축구 감독 Karel Brückner를 브뤼크너(혹은 브뤼크네르)가 아니라 브루츠크네르라고 되도 않는 표기로 정해 놔서 참 어이가 없었죠.
    해당 언어를 제대로 모르고 기계적으로만 법칙을 적용한 사례입니다.
    다만 특히 미주 대륙 국가들을 보면 이민자의 성이 많아서 뭔가 아리송한 경우도 상당히 많이 생기긴 합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Ruggeri 같은 사람은 한국에서 루게리, 루헤리, 루제리 등 중구난방으로 적히지만 아르헨티나에서도 이태리어 발음대로 루제리로 불리죠. 하지만 일단 표준 스페인어에는 없는 발음의 표기이다 보니 고민도 되고 또 이탈리아계 성씨라고 늘 이탈리아 식으로만 부르는 게 아니라 개인마다 달라진다는 점이 혼란을 더하는 요소가 됩니다.
    예컨대 Mascherano는 마스케라노 대신 마스체라노로 불러달라고 한다니 일일이 찾아봐야 갈피가 잡히게 됩니다.
    즉 이태리어의 c, ch, g, gl, ll, z 따위의 철자가 스페인어(아르헨티나 등) 또는 포르투갈어(브라질)에서 어떻게 불릴지 일정한 규칙이 없다는 것이죠. 아직 딱히 명쾌한 답은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매우 간만에 보는 글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 끝소리 2010/07/23 03:52 #

    저도 '브뤼에인', '브루츠크네르'를 보고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이런 표기를 결정한 분들이 Van Nistelrooy로 널리 알려진 선수 이름의 원 네덜란드어 철자가 Van Nistelrooij라는 것을 봤다면 '판니스텔로이' 대신 '판니스텔로에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주 대륙, 특히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등의 이민자 후손 이름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일정한 규칙이 없고 일일이 발음을 확인해야 하니... 지금까지도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Caniggia 본인은 이탈리아어에서 온 성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폴란드어 성을 가진 아르헨티나의 테니스 선수 Brzezicki 본인은 '브레시키'라고 발음한다네요.

    또 브라질인으로 독일어 성을 가진 모델 Gisele Bündchen은 엉뚱하게도 '지젤 번천'으로 표기가 결정된 경우가 있습니다.
  • 나그네 2010/07/23 12:09 # 삭제

    Caniggia는 이태리어 발음대로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도 '카니자'라고 합니다.
    다만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표준(유럽) 스페인어와 달리 y, ll에 해당하는 발음 [ʝ]이 [ʒ]로 발음되는 것이라 좀 문제가 됩니다.
    어쨌든 [ʒ]는 한글 표기의 ㅈ에 해당된다고 치면 이번에는 이걸 이태리어 기준으로 [ʤa]로 보아 '자'로 적을지 아니면 아르헨티나 스페인어 기준으로는 철자 i가 있으니 [ʒia](물론 정확히 이렇게 음사된다고 확신하긴 어렵지만)로 보아 '지아'로 적을지 또 문제는 되는데 사실 그냥 이탈리아 사람이라도 아직 표기법에 따른 조반니와 더불어 지오반니도 혼용되는 마당이라 뭐 좀 거시기한데 일단은 원어에 따른 발음을 한다면 일률적인 표기가 낫다고 보아 '카니자'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번천은 엄청 마음에 안 드는 표기인데 일부 미국인들이 그런 발음을 한다고 그게 한국 표기의 기준이 된 게 좀 어처구니가 없죠. 독어 식의 뷘트헨은 좀 이상하겠고 굳이 브라질 기준으로 하면 분셴 정도가 알맞습니다.
  • 끝소리 2010/07/24 02:30 #

    저도 '바람의 아들 카니자'가 익숙했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스페인어 방송에서 '카니히아'로 발음하는 것을 듣고 궁금해졌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개개인마다 이탈리아어계 성을 이탈리아어식으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고 스페인어 찰자식으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Bündchen의 경우 실제 본인이 쓰는 포르투갈어 발음을 확인할 수 있으면 최상이겠지만 차선책으로 그냥 독일어식 표기를 따르는 것도 고려할만합니다. 브라질의 테니스 선수 Kuerten도 비슷한 경우인데 포르투갈어 표기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 '쿠에르텡'이나 포르투갈어 발음에 더 가까운 '키르텡'보다는 독일어식 '쿠에르텐'이란 표기가 가장 많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Gisele는 '지젤리'라고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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