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와 테베, 그리스어 이름의 표기 문제 외래어 표기 실무

'아테네'와 '테베'는 그리스어 발음에 따른 표기가 아니다?

슈타인호프님의 교과서 오류 시리즈 - 이수스 전투와 알렉산더, 그리고 다리우스 3세에 대한 덧글들이 '알렉산더'의 표기 문제가 발단이 되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인명의 표기에 관한 짧은 토론으로 발전하였다. 지금은 통상적으로 쓰는 독일어식 표기인 '알렉산더'와 고대 그리스어 Ἀλέξανδρος (Alexandros)를 따른 '알렉산드로스'가 둘 다 표준 표기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스어 이름을 제3 언어의 발음에 따라 표기하는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내는 가운데 한 분이 테베 Θῆβαι (Thēbai)도 고대 그리스어 발음대로 표기하면 '테바이'라는 것을 예로 들었다. 아테네 Ἀθῆναι (Athēnai)역시 고대 그리스어 발음대로 표기하면 '아테나이'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아직 그리스어의 표기를 정식으로 정비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어의 표기 원칙이라는 짤막한 규정 가운데 "ae, oe, ou는 각각 '아이', '오이', '우'로 적는다"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ae는 αι를 라틴어로 옮긴 철자이니 이 원칙만 따지면 '아테나이', '테바이'가 맞는 표기이다. 라틴어 이름 Athenae, Thebae도 라틴어의 표기 원칙에 따라 적으면 '아테나이', '테바이'이다.

아테네와 테베를 고대 그리스어로 쓴 것

그럼 왜 '아테네', '테베'로 표기하게 되었을까? 나는 당시 덧글에서 이탈리아어에서 아테네와 테베를 각각 Atene, Tebe라고 하는 것을 들어 한국에서 쓰는 표기는 이탈리아어를 따른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였다. 그런데 더 조사해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더 깊이 파고들수록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몇 줄로는 설명하기 힘드니 아예 그리스어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아테네와 테베

아테네는 새삼스레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유럽 역사에서 철학의 중심지이자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러면서 2004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이기도 하다.
고대 아크로폴리스의 유적은 현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의 중심에 남아 있다.

테베 역시 고대에는 아테네와 자웅을 겨루던 대표적인 도시 국가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에 파괴당한 이후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해 오늘날의 위상은 아테네에 못 미친다.
고대 테베의 유적지

그런데 테베라는 지명을 가진 곳은 이집트에도 있다. 이 테베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이집트 제국의 수도인 적도 있었다. 신전 유적으로 유명한 오늘날의 룩소르가 고대 테베의 변두리에 해당한다. 고대 이집트어로는 이 도시를 niwt (도시), niwt-rst (남쪽 도시), niwt-imn (아문의 도시)이라 했는데 그리스인들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 도시 국가 테베와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스어의 역사

아테네와 테베는 그리스어 이름이니 그리스어 발음에 따라 표기해야 할텐데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어는 글자로 기록된 역사만 해도 수천 년이 되는 언어이니 같은 이름도 조금씩 바뀌고 발음은 더더욱 바뀌었기 때문에 어느 발음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표기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위에서 봐서 알겠지만 그리스어는 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그리스 문자로 적는다. 고대 미케네인들이 쓰던 그리스어 방언은 선문자 B(Linear B)라는 고대 문자로 기록되었지만 미케네 문명의 몰락 이후 약 5세기간 문자 기록이 없다가 다시 페니키아 문자에서 따온 그리스 문자를 쓰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 문자에서 그리스어에는 없는 소리를 나타내는 기호를 모음을 나타내는데 사용하면서 비로소 모음까지 나타내는 완전한 알파벳을 도입하였다. 이는 문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꼽힌다. '알파벳'의 어원은 그리스 문자의 첫 두 글자인 '알파(Α)'와 '베타(Β)'에서 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 문자(A, B, C, ...)는 그리스 문자의 서부 형태가 고대 이탈리아에 전해져 에트루리아어 등을 적는데 쓰인 것을 다시 고대 라틴어를 적기 위해 변형시킨 것이다.

그리스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후 그리스어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크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 고대 그리스어(기원전 9세기~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어는 다시 아르카이크 그리스어(기원전 9세기~기원전 6세기)와 고전 그리스어(기원전 5세기~기원전 4세기)로 나뉜다. 이 시기 그리스어는 도리아 방언, 아이올리아 방언, 이오니아 방언 등 3개의 방언군으로 나눌 수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이오니아 방언을 기초로 하고 있어 초기에는 이오니아 방언이 고대 그리스 세계의 문어 역할을 했다. 핀다로스의 작품을 비롯한 서정시는 도리아 방언으로 지어졌다.

아티카 지방의 도시 국가 아테네는 이오니아 방언의 한 갈래인 아티카 방언을 사용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비롯한 고전 시대의 문학은 대부분 아티카 방언으로 기록되었다.

2. 코이네 그리스어(기원전 4세기~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활동으로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에 그리스어는 서남아시아와 동북아프리카에서 널리 쓰이는 국제 언어가 되었다. 아티카 방언을 토대로 다른 방언의 요소가 더해져서 '코이네 그리스어'라는 공통 언어가 되었다. 코이네(Κοινὴ, Koinē)는 '공통'이란 뜻이다. 헬레니즘 시대 이후 로마 시대에도 로마 제국의 동부에서는 코이네 그리스어가 국제어로 통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히브리어 성경(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는데, 이를 '70인역'이라고 한다. 신약 성경은 로마 시대에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3. 중세 그리스어(4세기~15세기)

그리스어는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하는 동로마 제국의 공용어였다. 코이네 그리스어에서 서서히 현대 그리스어를 닮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도 글로 쓸 때에는 신약성경의 코이네 그리스어 문체를 보통 따랐고, 더 격식을 갖출 때에는 고전 아티카 방언의 문체를 따르기도 하여 평상시에 쓰는 언어와 글로 쓰는 언어가 다른 양층언어(diglossia) 현상이 일어났다.

4. 현대 그리스어(15세기~현재)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것을 기준으로 중세 그리스어에서 현대 그리스어로 넘어간다.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간 후에도 그리스어의 양층언어 현상은 계속되었다. 일반 그리스인들이 평상시에 쓰던 구어체는 '민중어'라는 뜻으로 '디모티키(δημοτική, dimotikí)'라고 불렀다. 후에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많은 지식인들은 디모티키가 다른 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고전 그리스어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고 여겨 옛스런 문어체를 고집했다.

아다만디오스 코라이스

그리스 독립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고전학자 아다만디오스 코라이스(Αδαμάντιος Κοραής, Adamántios Koraís)도 디모티키가 다른 언어, 특히 튀르크어(터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는 사실을 언짢아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는 그리스의 부흥을 위해서는 민중의 교육이 필수적이고, 구어체와 매우 다른 고전 그리스어를 문어로 쓰는 것은 더이상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전 그리스어의 문법을 디모티키처럼 단순화하되 튀르크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등 다른 언어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한 그리스어를 창시하였고 이를 '순수한 언어'라는 뜻으로 '카사레부사(Καθαρεύουσα, Katharévousa)'라고 불렀다.

카사레부사가 고전 그리스어보다는 현실 언어에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민중의 언어와는 거리가 있어 교육 받지 못한 이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1830년 그리스 독립 이후 다듬어지지 않은, 튀르크어에 오염된 언어인 디모티키보다는 순수한 그리스어인 카사레부사가 일국의 언어로 적합하다고 하여 공용어로 채택되었다. 오히려 고전 그리스어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언문의 불일치로 인한 갈등은 계속되었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디모티키를 교육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마침내 1976년 콘스탄디노스 카라만리스 정부는 디모티키를 공용어로 지정, 1세기 넘게 계속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헬레니즘 시대 이후 그리스어를 쓸 때는 기식음의 유무, 고저 악센트 등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발음 구별 부호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발음이 변화하면서 그리스어에서 기식음과 고저 악센트가 사라졌다. 하지만 옛 발음 구별 부호를 포함한 철자는 계속 썼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인들은 이를 배우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1982년에는 옛 발음 구별 부호를 단순화하여 강세를 나타내는 부호와 모음을 따로 발음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호 둘만 남기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전통 발음 구별 부호를 모두 사용하는 것을 폴리토니코스(πολυτονικός, polytonikós) 철자법이라고 하고 부호 둘만 사용하는 것으을 모노토니코스(μονοτονικός, monotonikós) 철자법이라 한다.

그리스어 주기도문. 왼쪽은 폴리토니코스 철자법, 오른쪽은 모노토니코스 철자법을 썼다.

'아시나'와 '시바'

오늘날 쓰이는 그리스어는 쉽게 말하면 모노토니코스 철자법을 사용하여 적는 디모티키이다. 물론 오늘날의 디모티키는 오랜 갈등 관계였던 카사레부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고, 모노토니코스 철자법을 개악이라 주장하며 폴리토니코스 철자법을 고집하는 사람도 꽤 많다. 예를 들어 '에스티아(Ἑστία, Estía)'라는 보수 일간지는 그리스 신문으로는 유일하게 약간 간소화된 폴리토니코스 철자법과 카사레부사를 고수하고 있다.

어쨌든 아테네와 테베를 현대 그리스어로 어떻게 부르는지 알아보자. 디모티키를 모노토니코스 철자법을 사용하여 적으면 아테네와 테베의 표기는 다음과 같다.
아테네와 테베를 현대 그리스어로 쓴 것

Αθήνα (Athína)는 [aˈθina]로 발음된다.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를 따르면 '아시나'로 적을 수 있다. Θήβα (Thíva)는 [ˈθiva]로 발음되고 마찬가지로 '시바'로 적을 수 있다. 여기서 'ㅅ'으로 적는 음은 영어 단어 think의 th와 같은 음인데 한국어에 비슷한 음이 없으니 표기가 어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 카사레부사 이름은 어떨까? 카사레부사로 아테네와 테베는 고대 그리스어 표기와 똑같이 Ἀθῆναι, Θῆβαι로 적는다. 이는그리스 독립 이후 1976년 디모티키가 공식 언어로 지정될 때까지 아테네와 테베의 공식 표기였다. 하지만 발음은 고대 그리스어와 많이 달라졌다.

아테네와 테베 발음의 변화

고대 그리스어에서 지금까지의 발음 변화를 살펴보자.
이게 현대 그리스어에 와서는 카사레부사로는 [aˈθine], [ˈθive], 디모티키로는 [aˈθina], [ˈθiva]가 된다. 학자에 따라 발음 변화가 일어난 시기에 대한 견해 차이는 있지만 여기서는 영어판 위키피디어에 나오는 시기 구분을 따른다. 다만 위의 구분은 편의상의 구분이고 실제 코이네 그리스어 시기에 중세 그리스어 발음으로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어의 θ(세타)는 한국어의 'ㅌ'와 같은 [tʰ] 음이었다. 그러나 후에 영어 think의 th와 같은 [θ] 음이 되었다. 또 β(베타)는 영어의 b와 같은 [b] 음이었으나 약해져 [β]를 거쳐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v]가 되었다. 

모음 η(에타)는 원래 한국어의 장음 '애'와 비슷한 [ɛː]로 발음되었다. Ἀθῆναι, Θῆβαι에서처럼 물결 모양(반달 모양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부호를 붙인 ῆ는 상승했다 하강하는 성조를 나타낸다. η의 발음은 [eː]를 거쳐 [i]로 바뀌었다.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η(에타), ι(이오타), υ(입실론)이 모두 [i] 발음을 나타낸다. 원래 다른 모음이었지만 한국어에서 '애'와 '에'의 발음이 합쳐지고 있듯 발음이 합쳐진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의 모음 조합 αι는 글자 i의 영어 이름 '아이'와 비슷한 이중모음 [aɪ]로 발음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어의 이중모음은 거의 단순모음화되어 αι의 경우 [ɛ]를 거쳐 [e]가 되었다. 한국어의 '애'도 원래 '아이' 비슷한 이중모음이었으나 오늘날 단순모음으로 발음되고, [ɛ]를 거쳐 [e] 즉 '에'와 합쳐지고 있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때로 고대 그리스어의 αι에서 앞의 α가 길게 발음되면 뒤의 ι는 생략되고 [a]가 되기도 했다. 이럴 때는 α 밑에 작게 ι를 써서 표시했다. 그런데 Ἀθῆναι, Θῆβαι가 현대 디모티키에서 Αθήνα, Θήβα가 된 것은 이 현상하고는 관계가 없다. 이들 이름에서 -αι로 끝나는 형태는 복수형, -α로 끝나는 형태는 단수형인데 디모티키에서는 단수형을 선호한 것 뿐이다.

아, 또 한가지. 현대 디모티키에서 그리스의 테베는 Θήβα라고 하지만 이집트의 테베는 Θήβες (Thíves)라고 한다. Θήβες는 고대의 Θῆβαι에 해당하는 복수형이다. 현대 디모티키에서 -α로 끝나는 형태의 복수형은 -ες로 바뀌었다. 그리스의 테베는 단수형, 이집트의 테베는 복수형으로 써서 구별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이집트의 테베가 고대 그리스어의 단수형 Θήβη (Thēbē)로도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그리스의 테베는 テーバイ (Tēbai), 이집트의 테베는 テーベ (Tēbe)로 다르게 표기한다.
* 내용추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운율을 맞추기 위해 테베는 물론 아테네도 이름의 형태를 필요에 따라 바꿨기 때문에 단수형, 복수형이 모두 나타난다. 9625님의 제보에 감사드린다.

'아이'와 '에'

자. 이쯤에서 코이네 그리스어식 발음 [atʰˈeːnɛ]와 [tʰˈeːbɛ]를 옮기면 '아테네', '테베'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테네', '테베' 같은 표기는 그리스어 발음이 아닌 제3 언어의 발음을 따른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아테네', '테베' 같은 표기가 이탈리아어 발음을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것보다 코이네 그리스어 발음을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통상적으로 쓰는 표기에서 그리스어의 αι를 '아이'가 아닌 '에'로 적은 것은 '아테네', '테베' 외에도 '미케네', '테르모필레', '니케아' 등이 있다. '그리스어의 표기 원칙'에서 고대 그리스어의 발음을 들어 αι를 '아이'로 적는 것으로 정하기 전에 이미 이 형태로 굳어진 이름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중모음 '아이'가 단순모음이 되는 현상은 매우 흔해서 라틴어에서도 있었다. 라틴어의 ae도 원래는 이중모음 [ai]였지만 후에 단순모음 [ɛː]가 되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라틴어의 ae도 '에'로 적는 일이 흔했다. 그러니 '아테네', '테베' 등도 라틴어의 Athenae, Thebae를 예전 방식으로 적은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라틴어화된 그리스어 이름을 가지고도 그냥 그리스어 이름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으니 이런 경우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다.

상황이 이러니 '아테네', '테베' 등의 표기를 쓰게 된 것은 코이네 그리스어 발음을 따른 것일 수도 있고 후기 라틴어 발음을 따른 것일 수도 있으며 어느 쪽이 맞는지 알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용추가: 알고보니 아테네는 일본어로도 アテネ(Atene)라고 쓴다. 그러니 '아테네'는 일본어 표기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일본어에서는 어느 발음을 따른 것이냐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스어의 한글 표기 규정 마련하기

위에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아직 그리스어의 한글 표기 규정을 정식으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스어의 표기 원칙'은 국립국어원에서 외래어 표기 용례를 발간하면서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 않는 언어에 적용한 몇가지 원칙을 정리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꽤 오래 전부터 국립국어원에서는 그리스어, 터키어, 아랍어의 표기법 시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스어 표기 시안이 체택된다면 '그리스어의 표기 원칙'을 대체하게 된다. '개정판 바른 말글 사전(한겨레출판, 2007년)'에는 이 세 언어의 표기 시안이 아직 정식으로 고시된 것이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실려있다. 이 시안 내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위키백과 사용자 페이지).

이 시안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은 모르고 있을 때 나도 현대 그리스어 표기 규정을 나름대로 작성한 적이 있다. '아테네'와 '테베'의 예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고대 그리스어의 발음과 현대 그리스어의 발음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표기 규정도 따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우선 현대 그리스어 발음에 따른 한글 표기부터 연구했다. 국립국어원에서 마련한 시안에서도 현대 그리스어와 '고전 그리스어'를 나누어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마련한 시안의 현대 그리스어 부분과 내가 작성한 현대 그리스어 표기 시안을 비교해보면 미세한 부분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나는 θ(세타)를 발음에 따라 'ㅅ'으로 적도록 했고 국립국어원 시안에서는 발음과는 달라지더라도 고대 그리스어 표기와 통일되도록 'ㅌ'으로 적도록 했다. 예를 들어 아테네, 테베의 현대 그리스어 이름을 나는 '아시나', '시바'로 적지만 국립국어원 시안에서는 '아티나', '티바'로 적는다. 사실 [θ] 음도 '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고려하면 차라리 국립국어원 시안의 방법도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국립국어원의 시안에는 '지명은 원칙적으로 현대 그리스어 표기법을 적용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런데 그리스 지명 가운데는 역사와 신화를 통해 고대 그리스어식 표기가 익숙한 것이 많아 이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고대 그리스어식으로 '델포이'라고 할 것인가, 현대 그리스어식으로 '델피'라고 할 것인가? 어쩌면 오늘날의 도시를 이를 때는 '델피'라고 하고 고대 그리스 역사나 신화를 다룰 때는 '델포이'라고 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앞으로 이 시안이 확정된다 해도 '아테네', '테베' 같이 익숙한 이름은 관용 표기로 그대로 쓸 것이 거의 확실하다.

글을 쓰면서 그리스어와 중국어가 오랜 역사를 통해 생긴 언문의 불일치, 발음의 변화 등 여러 면에서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외래어 표기법은 처음 고시되었을 때부터 중국어의 표기를 다루었으니 그리스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안을 연구할 때 그동안 중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문제를 다룬 경험이 참고가 많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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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슈타인호프 2009/01/19 10:39 # 답글

    깊게 다뤄주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다른 나라 말을 옮긴다는 것이 역시 쉬운 게 아니군요-_-;;

    덧 : 저번에 아이반호도 그렇지만, 집에 있는 60년대 이전 번역본을 보면 도리어 "아테나이" "테바이"로 표기한 책이 여럿 있었습니다.
  • 끝소리 2009/01/19 10:54 #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샛길로 빠지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란 것은 사실이죠.

    흥미로운 제보 감사합니다. 언젠가 저도 오래된 책들 좀 모아서 예전에는 외국어 이름을 어떻게 표기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슈타인호프 2009/01/19 11:03 #

    그러고 보니 생각난 건데, 예전에 집에 있던 이솝 우화집(역시 60년대 이전 판본입니다. 지금도 집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에서는 그리스를 "그리샤"라고 표기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샤는 어디에서 온 표기인지가 좀 궁금합니다.
  • 끝소리 2009/01/19 11:30 #

    '그리샤(Grisha)'는 우크라이나 출신 친구 이름인데요...

    주요 언어 중에는 스페인어에서 그리스를 '그레시아(Grecia)'라고 하는 것이 가장 비슷하겠지만 거기서 '그리샤'가 나오는 것은 조금 그렇고... 이건 아무래도 라틴어 Graecia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 같습니다. 발음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http://www.merriam-webster.com/cgi-bin/audio.pl?ggmagn01.wav=Magna%20Graecia
  • rumic71 2009/01/19 11:52 #

    일본에서는 '기리샤' 라고 하지요.
  • 끝소리 2009/01/19 12:00 #

    오, 이것도 일본어식 표기인가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수상한 표기를 보면 일본어 이름부터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 간달프 2009/01/19 18:48 #

    로마제국 쇠망사 서문(구 대광서림판본)에 보면 그라시아 제국 운운하던게 있던데 그게 그리스 였군요 쿨럭
  • 끝소리 2009/01/19 19:37 #

    그라시아 제국... (한숨)
  • joyce 2009/01/19 11:2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코이네와 후기 라틴어설 중에서는 후자가 좀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작 코이네를 가르치던 신학교에서조차 발음을 코이네식으로 교수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중국식 해결 방식을 사용하고 분기점을 1829년으로 잡는다면 그 중간의 기간은... 복잡하네요.
  • 끝소리 2009/01/19 11:41 #

    여기서 말하는 코이네식 발음은 언어학자들이 재구성한 것으로 실제 가르치는 발음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각국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칠 때 쓰는 발음 문제도 꽤 복잡한데 원래 발음대로 가르치려는 경우는 고전 그리스어 발음을 흉내내지, 코이네 그리스어 발음을 흉내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말씀하신대로 후기 라틴어 발음을 따른 것일 가능성이 좀더 높아 보이네요.

    국립국어원 시안에서는 고전 그리스어식 표기와 현대 그리스어식 표기의 분기점을 기원후 600년으로 하고 있습니다...
  • JOSH 2009/01/19 11:31 # 답글

    > 그리스어식으로 '델포이'라고 할 것인가, 현대 그리스어식으로 '델피'라고 할 것인가? 어쩌면 오늘날의 도시를 이를 때는 '델피'라고 하고 고대 그리스 역사나 신화를 다룰 때는 '델포이'라고 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개발자는 영어식으로 델파이라고 읽어버리는... =,.=
  • 끝소리 2009/01/19 11:44 #

    이때 Delphi는 영어 단어라 치면 되겠죠 뭘.
  • 파리13구 2009/01/19 13:13 # 답글

    안녕하세요. 끝소리님..

    저, 파리13구라 하는데요...

    질문드릴 것이 하나 있는데, 글을 올릴 곳이 이곳밖에 없어서

    여기 질문드립니다. 양해 바랍니다!


    프랑스 배우 Gérard Depardieu를 검색하다가 보면요,

    드파르디유 라고 한 글이 있고, 드빠르디유라고 한 글이 있는데,

    어떤 표기가 맞는지 궁금합니다.

    불어의 P와 F를 다르게 표시해야만 할까요?


    그런데 보통, Paris 하면 파리라 하지 않나요?

    빠리라 표기해야 정확한 표기인지요?


    파리13구 올림
  • 큐팁 2009/01/19 14:48 #

    아마 P와 F는 외래어 표기시 음가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ㅍ'으로 표기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겹자음 사용은 안하구요. 그래서 '빠히'와 '패리스'의 중간 형태인 '파리'가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완전 허접 답변..쥔장님이 매우 쳐 주세요..
  • 끝소리 2009/01/19 18:52 #

    반갑습니다. 프랑스 소식 잘 읽고 있습니다.

    사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맞는 표기입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일부 언어를 제외하고는 무성음 k, t, p를 된소리 대신 거센소리로 적는 것으로 통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Paris도 '파리'가 표준 표기입니다. 프랑스어의 경우 k, t, p가 보통 한국어의 된소리 가깝게 들리니 원 발음과는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발음되는 음소와 한글 자모의 일대일 대응을 쉽게 하기 위해 이렇게 통일한 것입니다. Paris를 '파리'로 적는 것은 영어 발음과는 상관 없습니다. k, t, p 소리가 있는 언어마다 발음이 거센소리에 가까운지 된소리에 가까운지 따지는 것이 까다로운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통일한 것입니다.

    또 dieu [djø]는 '듀' 비슷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eu는 jeune 같은 단어에서는 '외' 가깝게 들리는 열린 모음인 [œ]로 발음되니 둘을 구별할 필요가 없이 [ø]와 [œ] 모두 '외'로 적는 것으로 통일했습니다. 또 한국어의 '외'도 단순모음으로 발음하는 경우는 [ø]로 발음된다고 합니다. 물론 요즘에는 대부분 '웨'로 발음하지만...

    앞으로도 혹시 궁금한 것 있으면 제 블로그 메인 페이지에 있는 방명록에 글 남겨주세요.
  • 파리13구 2009/01/19 21:10 #

    감사합니다! ^ ^
  • 큐팁 2009/01/19 13:46 # 답글

    사실 고대 그리스 전쟁에 관한 책을 번역 중입니다. 특히 지명과 인명에서 그리스어 표기는 참 쉽지 않은 문제더군요. 펠로폰네소스 전쟁 말기 시칠리아 전역의 경우도 '시케리아'를 쓰는게 맞는지..아니면 익히 알려진 '시칠리아'를 쓰는게 옳은 것인지..저 역시 위키의 컨텐츠와 다른 외국어표기법을 준용하긴 했는데..여전히 맘은 홀가분하지 않네요..^^
  • 끝소리 2009/01/19 19:04 #

    그런 번역을 한다면 그리스어 표기가 꽤 골치아픈 문제가 될 것 같네요.

    저라면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서 나오는 이름이라면 거기에 실린 표기대로 쓰겠습니다. 거기에 실릴 정도이면 이미 잘 알려진 이름이고, '아테네', '스파르타'처럼 표기 원칙에는 맞지 않더라도 이미 굳어진 것으로 봐야 하거든요.

    나머지 이름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원의 고전 그리스어 표기 시안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켈리아(Σικελία)'와 같이 그리스어 이름이 잘 알려진 이름(이탈리아어 이름 '시칠리아')과 다른 경우는 그리스어 이름으로 통일할지, 잘 알려진 이름으로 통일하지 결정하고 주석을 통해 이를 설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어쨌든 일관된 기준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페르시아 이름은 라틴어식 표기로 통일한다든지...
  • Emsorl 2009/01/19 17:15 # 삭제 답글

    실은 조선일보에서 이 '그리스'라는 나라 이름을 두고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기사 주소를 제 이름에 올립니다), 저는 그 뒤로 '그리스'보다는 '헬라'라고 쓰곤 합니다. 이것도 알고 싶어요.
  • 끝소리 2009/01/19 19:33 #

    '그리스'가 라틴어로 '노예'라는 뜻이었다는 말은 저도 들은 적이 있는데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라틴어 '그라이쿠스(Graecus)'는 그리스어 '그라이코스(Γραικός)'에서 왔습니다. 로마인들이 처음 접한 그리스인들이 그라이코스에서 이름을 딴 '그라이코이'인이었기 때문에 라틴어로 '그라이키(Graeci)'라고 불렀다는 것이죠.

    하지만 후에 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하면서 '그라이키'가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그리스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다만디오스 코라이스 같은 경우는 고대 그리스인들도 '그라이코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며 이를 옹호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에서는 고대 그리스어의 '헬라스(그리스)', '헬레네스(그리스인)'에 해당하는 '엘라스' 또는 '엘라다', '엘리네스'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 가운데는 영어로도 Greek 대신 Hellene이라고 쓰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헬레네스'에는 또 역사적으로 '이교도'라는 뉘앙스가 있어서 그리스 정교를 믿는 그리스인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영어식 이름인 '그리스', 중국어식 음차 표기인 '희랍'보다는 '헬라'가 더 좋은 이름 같은데 기독교 신학 밖에서는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를 이를 때 '헬라스'라고 하는 언어는 매우 드문데, 특이하게 노르웨이어에서 그리스를 '헬라스(Hellas)'라고 합니다.
  • Emsorl 2009/01/19 21:11 # 삭제

    그러고 보니 '노르웨이'도 - 거기 출신 탐험가(아문센이었나 아문젠이었나?) 전기를 읽었을 때 '노르웨이'라는 뜻이라면서 '노르게'라는 배 이름이 나오던데…….

    앞으로 어떤 나라 말을 이야기하실 때, (주제와 너무 동떨어진 게 아니라면)그 나라 이름을 그 나라 말로는 어떻게 읽는지 이런 것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저는 격투기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 팬들이 영어권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 아닌 선수들 이름을 (미국식)영어식이나 일본말식으로 적거나 읽곤 해서 표기법을 지키는 사람(제 이름에 올린 블로그 주소 참조)을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경우가 꽤 자주 있어요.
  • 끝소리 2009/01/19 22:07 #

    노르웨이는 특이하게 표준어가 두 개 있어서 어느 것을 따르냐에 따라 '노르게(Norge)'라고도 하고 '노레그(Noreg)'라고도 합니다. '아문센'이 맞습니다.

    나라 이름의 경우 표기법이 확립되기 훨씬 전부터 쓰이던 표기가 굳어진 것이 많아그 나라 발음대로 적는 것이 오히려 드물 정도입니다. 그리스,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은 영어식 이름을 쓰는 경우이죠. 그것도 영어 발음과는 조금 차이가나게 표기하고.

    예전에 '효도르'가 맞다고 근거 없이 억지부리던 글을 본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스포츠 기자들은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듯... 지금보다 교열 수준이 높았던 예전에도 스포츠나 문화 분야 이름은 거의 외래어 표기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링크해주신 블로그 쓰시는 분은 거의 고군분투하시는 것 같습니다.
  • 일곱 혼돈 2009/01/20 13:58 #

    공감타고 들어왔습니다. 네이버의 (지금은 없어진) 한국 정교회 카페에서 역시 '헬라'라는 말을 쓰던 개신교인들에게 정교회 교인들이 '헬라'보다는 '그리스'가 더 맞는 표기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엘라스'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쓰지 않고......

    한국 정교회 자체가 그리스 문화권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휘하에 있고 대주교도 그리스인이니 대충 그것이 그리스 원어민들의 입장이라고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 별빛수정 2009/01/20 13:03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외래어 표기법이란 오묘하네요@_@ (그리스어는 아니지만)Volkswagen 표기 같은 것도 헷갈리던데...(발음은 폴스바겐에 가깝다고 들었지만) 그리고 특히 러시아어 표기는 역자마다 조금씩 다르고 해서 어렵더라고요;;;
    p.s 링크 신고드립니다^^
  • 끝소리 2009/01/20 17:07 #

    독일어 Volkswagen [ˈfɔlksˌvaːgən]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폴크스바겐'입니다. 그런데 기업명은 이와 조금 다르게 '폭스바겐(코리아)'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독일어의 [lks] 발음은 한국어의 발음에서 그대로 흉내낼 수 없는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으'를 삽입해서라도 각 음을 모두 적고 있고 등록명에서는 어감을 고려해 [l] 음을 생략해서 '으' 삽입을 줄이려 한 것 같습니다.

    러시아어의 경우 오랫동안 지금의 그리스어처럼 간략한 '러시아어의 표기 원칙'만 있다가 2006년에야 완전한 표기법이 고시되면서 일부 표기가 바뀌었는데 아직 홍보가 잘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6년 이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예전 표기가 더 익숙할 것입니다. 또 열린책들 같은 일부 출판사에서는 된소리를 사용하는 독자적인 표기 방식을 예전부터 사용하고 있어 러시아어 표기법이 고시된 이후에도 이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예전 표기 방식대로는 '도스토예프스키', '푸슈킨', 2006년 이후 새 표기 방식대로는 '도스토옙스키', '푸시킨'으로 쓰고 열린책들에서는 '도스또예프스끼', '뿌쉬낀'으로 씁니다. 상황이 이러니 일반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 hislove 2009/01/20 17:23 #

    잡담이지만, 열린책들이 독자적인 표기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열린책들의 대표이사가 노어노문학과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열린책들에서 유난히 러시아 문학 번역서를 많이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들었습니다.
  • 끝소리 2009/01/20 17:48 #

    그렇군요. 어쩐지 러시아 문학 번역서를 많이 낸다 했습니다.
  • 일곱 혼돈 2009/01/20 14:09 # 답글

    그리고 한국 정교회에서는 대체로 현대 그리스어식으로 표기하지만, 인명이나 지명 중에 개신교나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표기가 더 익숙한 경우에는 그것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ex : 요한, 마르코, 바울로...).

    한국 정교회 홈페이지를 한번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http://www.orthodox.or.kr/
  • 끝소리 2009/01/20 17:16 #

    한국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그리스어 표기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인 입장에서는 '헬라'도 올바른 이름은 아니겠군요. 정교회 홈페이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테파노스, 안토니오스 같은 카사레부사식 이름들이 많이 나오네요. 홈페이지에 나오는 세례명 가운데 '데스피나(Δέσποινα)'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리스 밖에서는 잘 안 알려진 이름인 것 같은데... 확실히 한국 정교회는 그리스 이름을 많이 쓰는군요. 기도문이나 예배서는 독자적인 번역을 따르겠지만 성경 본문은 어떤 한국어 번역을 사용하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제보 감사합니다.
  • 일곱 혼돈 2009/01/20 18:40 #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성서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공동으로 번역한 것이라 부담이 덜하겠지요.
  • 끝소리 2009/01/20 20:55 #

    그렇군요. 공동번역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겠죠.
  • dd 2009/01/20 17:01 # 삭제 답글

    왜 신학생들이 그리스어 나오면 ㅅㅂ ㅅㅂ 거리는지 이해가 가네요

  • 끝소리 2009/01/20 17:18 #

    그리스어는 약과죠. 히브리어 배우기 시작하면...
  • Hyunster 2009/01/20 17:36 # 답글

    이집트의 테베도 상테베와 하 테베가 있죠... 최근 선형 B문자 공부하면서
    이 '테베'에 관해 언급되는게 한두개가 아니라서 고민중입니다 ㅠ
  • 끝소리 2009/01/20 17:57 #

    저는 몰랐는데 이집트에는 테베에서 이름을 딴 '테바이스(Θηβαΐς)' 주가 있었군요. 후에 상 테바이스와 하 테바이스로 나누어졌답니다. 테바이스 주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부터 있지 않았나요? 그럼 선문자 B에 나오는 테베라면 그냥 이집트 테베 시를 말하는 것이겠죠. 물론 100% 추측입니다.

    그런데 선문자 B를 공부하신다니 대단하십니다.
  • 9625 2009/01/21 01:57 # 답글

    1. 희랍어 표기는 이 땅에서 고전학하는 분들의 표기를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고전 시대 표준어였던 아티카 희랍어를 기본으로 쓰자는 뜻이지요.

    2. "'아테네', '스파르타'처럼 표기 원칙에는 맞지 않더라도 이미 굳어진 것으로 봐야 하거든요."라고 하셨지만 '스파르타'는 도리아식 방언으로 '스파르타'가 맞습니다. 아티카 방언으로 '스파르테'였지요. 스파르타 인들이 도리아인들이니까 '스파르타'는 오히려 맞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3. '헬라'의 경우에는 출처를 잘 모르겠지만 '희랍'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중립적이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있고 저도 그 의견을 많이 따르는 편입니다. 그리스를 표시하는 Graeci가 노예랑은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servus, ancilla, verna, famulus...같은 단어들과 Graeci의 단어는 그닥 관련이 없어보이죠. 저야 라틴어는 제대로 못합니다만-_-) 아무튼 영어고, 현대 희랍어는 엘라다라고 한다고 그러고, 헬라스라고 쓰자니 현대 희랍을 무시하는 것 같고. 고로 좀 거리가 있는 단어인 희랍.

    4. '아테네'의 경우에는 아테네 여신의 이름에서 온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어로 쓴 아테나이만 번역하던 중역자들이 영어 세대로 바뀌면서 Athens을 어떻게 번역할까 고심하다가 실수한게 아닌지...
    참고로 후기 (?) 아티카 방언으로는 '아테나'라고도 쓰고, 호메로스 시절에는 아테나이에라고도 썼습니다.

    5. 테베...는 아마 영어 Thebes에서 왔을 것인데, '도시이름은 여성 복수로 쓴다'가 보통 적용되서 테바이라고 쓰지 테베라고 쓰진 않았다고 봐야하거든요. 물론 호메로스는 단수를 썼습니다만, 운율 맞추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운율때문에 단복수 바꾸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6. 코이네 희랍어의 발음을 따르는 사람들은 전멸 수준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을리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다만 교회 라틴어의 경우는 영향이 있을 지도...

    "통상적으로 쓰는 표기에서 그리스어의 αι를 '아이'가 아닌 '에'로 적은 것은 '아테네', '테베' 외에도 '미케네', '테르모필레', '니케아' 등이 있다. '그리스어의 표기 원칙'에서 고대 그리스어의 발음을 들어 αι를 '아이'로 적는 것으로 정하기 전에 이미 이 형태로 굳어진 이름들일 것이다."

    상관없을지 모르겠지만, 테베, 뮈케네, 이런식으로 쓰면 여성 단수입니다.
    테바이, 뮈케나이라고 쓰면 여성 복수...델피라고 쓰는 것도 아마 영어의 영향...

    7. 여담인데, 아는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일본어 중역본이 생각보다 매우 훌륭하다, 영어 중역본은 쓰레기다"

    뭐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고 이러한 요지로...말씀하셨는데
    인명과 도시를 살리는 것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시의 경우에는 영어를 번역한 경우, 쓰레기 중의 쓰레기 번역이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참고 http://ninesix.egloos.com/4789055 )


    8. 희랍어는 단어가 격과 수에 따라 막 변화하기 때문에 한두가지
    예만가지고는 말하기가 좀 그런게, 운율 맞추기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일리아스 22권 479행을 보면

    αὐτὰρ ἐγὼ Θήβῃσιν ὑπὸ Πλάκῳ ὑληέσσῃ

    해석하자면

    '그렇지만 이 나는 나무가 찬 플라코스 밑 아래 테바이의'

    가 되는데,

    근데 또 보면 The:be:sin은 여성 복수 dat. 형태에요. 그니까
    '테베'라고 쓴것은 단순히 운율때문에 맞추려고 단수로 쓴 느낌이랄까요.

    일리아스 23권 679행 ὅς ποτε Θήβασδ' ἦλθε δεδουπότος Οἰδιπόδαο

    오뒷세이아 15권에서도 ἀλλ' ὄλετ' ἐν Θήβῃσι γυναίων εἵνεκα δώρων. (223행?)

    일리아스 5권 ἄγγελος ἐς Θήβας πολέας μετὰ Καδμείωνας: (795행?)

    이런식으로 복수 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 끝소리 2009/01/21 05:04 #

    자세한 덧글 감사드립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1. 현재 외래어 표기법이 기본적으로 고전 아티카 그리스어 발음을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완벽히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υ를 '위' 대신 '이'로 적는 것이지요. 중세 그리스어에서 υ가 [i]로 발음되기 시작했지, 고전 발음에서는 [u]에서 [ʉ] 또는 [y]로 바뀌었으니 많은 고전학자들이 적는대로 '위'로 쓰는 것이 고전 발음에 더 가깝겠죠. 외래어 표기법에서 '이'로 적는 것은 라틴어에서 y가 i와 발음이 합쳐진 것 때문일 것입니다. 또 고전 발음에서 ου를 보통 [ou]로 보는데 이게 [u]로 바뀐 것은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고전 아티카 그리스어가 고전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니 당시 발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좋겠죠. 하지만 고전학자들이 당시 발음을 복원하여 가르치는데 쓰는 표기를 일반인들이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노어노문학 전공자들이 쓰는 러시아어 표기 대신 일반인들이 쓰기가 더 쉬운 러시아어 표기 방식을 체택한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입니다. 전공하시는 분들은 원 발음에서 멀어진다는 것이 불만이시겠지만 해당 언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널리 쓸 수 있도록 정하는 외래어 표기법은 조금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오뒷세이아' 대신 '오디세이아'라고 한다고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세요. ^^

    2. 말씀하신대로 '스파르타'는 도리아 방언 이름입니다. 그러니 저도 이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표기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비전공자들에게 그리스어는 현대 발음과 고전 발음으로 나누고, 또 고전 발음을 각 방언에 따라 나눠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고전 발음은 아티카 그리스어 표기를 따르되 '스파르타' 같은 일부 이름은 예외로 한다고 하는 설명이 더 쉬울 것입니다.

    3. '헬라'는 개역판 성경에서 쓰는 표기인데 Ἑλλάς를 적은 것입니다. 개역판 성경의 그리스어 음역에서는 어말의 [s]를 생략합니다. 예를 들어 Κόρινθος는 '고린도'라고 적지요. Ἰησοῦς가 '예수'가 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오지리', '비율빈', '토이기' 같은 이름이 잘 안 쓰이는 요즘 '희랍(希臘)'처럼 한자음을 차용한 국명을 쓰는 것은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립적일지는 몰라도...

    4. 그런데 확인해보니 일본어로도 '아테네(アテネ)'라고 하는군요. 복잡한 설명 필요없이 일본어식 표기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호메로스가 운율 맞추러 단수형 '아테네(Ἀθήνη)'를 쓴 것은 확인했는데 '아테나이에(Ἀθηναίη)'는 미처 몰랐네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5. 테베가 영어 Thebes에서 왔다고 추측하기에는 발음 차이가 좀 나는데요. 저한테는 이것도 일본어식 표기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테베'하고 '테바이' 가운데 그냥 짧은 것 고르기로...

    6. 표기해놓은 것만 보고는 αι를 '에'로 적은 것인지, 단수형을 적은 것인지 알 수 없어 난감하더군요. 그래도 '니케아'는 αι를 '에'로 적은 것이 확실합니다.

    7. 고전 그리스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놓은 것을 보면 번역자가 시적 자유를 얼마나 행사하느냐에 따라 원문과 꽤 거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문학 교수님 한 분이 제게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로버트 피츠제럴드의 지도를 받았을 때 그가 번역한 오디세이아를 참고하여 거기에 나오는 베짜기 은유에 대한 논문을 열심히 썼답니다. 그런데 피츠제럴드는 그것을 보고 사실 베짜기에 관련된 시적 언어 상당수는 자신이 번역하면서 집어넣은 것이라고 밝혔답니다.

    8. 예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본문을 더 주의깊게 확인할 걸 그랬습니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 ghistory 2009/02/10 02:32 # 답글

    터키어→이건 튀르크어가 적당합니다. 당시 튀르크어는 현대 튀르크어(터키어)하고는 좀 달라서…
  • 끝소리 2009/02/10 03:06 #

    지적 감사합니다.
  • ghistory 2009/02/10 02:34 # 답글

    콘스탄디노스 카라만리스→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 끝소리 2009/02/10 03:03 #

    Κωνσταντίνος가 현대 그리스어에서 [ko(n)sta(n)ˈdinos]로 발음된다는 것을 고려해 '콘스탄디노스'로 적었습니다.
  • ghistory 2009/02/10 03:20 #

    그렇군요.
  • ghistory 2009/02/10 02:35 # 답글

    역시 이 글에서도 많은 특수문자들을 알아볼 수 없네요.
  • 끝소리 2009/02/10 03:07 #

    흑. 죄송합니다. 일단 파이어폭스를 써보시는 것이 어떨지..
  • ghistory 2009/02/10 02:37 # 답글

    그러니 '아테네'는 일본어 표기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이라는 표기들도 한국어 통례들과 일본어 발음들이 매우 유사하더군요?
  • 끝소리 2009/02/10 05:03 #

    정말 그렇네요. 정말 앞으로 관용 표기의 유래가 궁금하면 일본어 표기를 참조해야...
  • ghistory 2009/02/10 13:45 #

    사실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다면 차라리 '놀웨이' 하고 '스위든' 에 가깝거든요.
  • 끝소리 2009/02/10 18:18 #

    현지 명칭을 따른다면 '노르게(Norge)' 또는 '노레그(Noreg)', '스베리예(Sverige)'이니 일본어에서 쓰는 표기는 영어 국명에서 온 것이 분명합니다. 요약하면 한국어에서 쓰는 국명은 현지 명칭이 아닌 영어 국명을 일본어식으로 표기한 것을 따른 것이니...
  • ghistory 2009/02/11 05:41 #

    이런 표현들을 관행이라는 이유로 놔 두어도 좋은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 끝소리 2009/02/18 21:59 #

    이런 표기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지요. 제대로 하려면 적게 잡아도 우리에게 익숙한 국명의 과반수는 바꿔야 할 텐데 언중이 이를 쉽게 수용할 것 같지 않습니다. 어쨌든 앞으로 글 쓸 거리가 하나 생겼네요.
  • ghistory 2009/02/19 08:21 #

    1990년대 초반과는 분명히 상황이 더 불리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한겨레를 선두로 신문사들이 한자 사용을 폐지하거나 줄여가던 시기라서 중국식 또는 일본어식 표기의 한국어식 발음이 몇 년 사이에 사라질 수 있었던 반면(포도아-포르투갈/백이-벨기에/애급-이집트 따위), 지금은 한글표기가 정착한 상태여서 언중의 언어생활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언론매체들의 표기법 변화를 유도할 만한 좋은 수단이 없는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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