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이바 부인과 고디바 초콜릿 표기 용례

존 콜리어(John Collier)의 《고다이바 부인》. 1897년경. 허버트 미술관 소장.

'고디바'라는 벨기에 고급 초콜릿 브랜드가 있다. 그 상징인 말을 탄 나체 여인 그림은 전설의 고다이바 부인(영어: Lady Godiva)을 나타낸다. 192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조제프 드랍스(프랑스어: Joseph Draps [ʒozɛf dʁaps])가 설립한 드랍스 초콜릿 회사가 1956년 브뤼셀에 첫 매장을 열면서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에서 이름을 따서 상호를 '고디바'로 바꿨다. 프랑스어로는 Godiva를 [ɡɔdiva] '고디바'라고 발음한다.

고디바 초콜릿 로고.

전설에 따르면 고다이바 부인은 오늘날 영국의 일부인 잉글랜드 코번트리에 살았다. 그는 영주인 남편이 책정한 터무니 없이 높은 세금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남편에게 여러 차례 애원했다. 결국 남편은 고다이바 부인이 나체로 말을 타고 길거리에 나가면 이를 들어주겠다고 답했다. 물론 설마 부인이 이를 따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성의 주민들에게 실내에 머물고 창을 가리라고 명한 뒤 정말로 나체로 말을 타고 코번트리의 길거리를 지나가 백성들을 향한 애정을 증명했다고 한다.

고다이바 부인이든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이든 Godiva의 프랑스어 발음은 [ɡɔdiva] '고디바'이지만 영어로는 /ɡə.ˈdaɪ̯v.ə/ '거다이바'로 발음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고다이바'가 전설의 귀족 부인을 뜻하는 표제어로 나온다. [ə]로 발음되는 o를 철자에 이끌려 '오'로 적는 관습을 인정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에서 [ə]로 발음되는 어말의 a는 '아'로 적도록 하고 있지만 다른 위치에서는 철자에 상관 없이 '어'로 적는 것이 원칙이니 엄밀히 말하면 '거다이바'로 적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ə]로 발음되는 o를 '오'로 적는 경우가 매우 많다. chocolate도 영어 발음 /ˈʧɒk.lᵻt, ˈʧɒk.(ə)l.ᵻt/을 따르면 '초컬릿'으로 써야 하지만 '초콜릿'이 표준 표기로 인정되었다. '초코렛', '초콜렛' 등 '에'로 발음하는 관습이 있는 마지막 모음은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여 '이'로 적으면서도 가운데 음절의 모음만은 '오'로 적는 관습적인 표기를 인정한 것이다.

나체로 말을 타고 코번트리의 길거리에 나섰다는 것은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11세기 잉글랜드 머시아 백작 레프릭(Leofric)의 아내였던 실존 인물이다. 머시아(영어: Mercia /ˈmɜːɹs.i‿ə, ˈmɜːɹʃ-, ˈmɜːɹʃ.ə/)는 10세기 초 잉글랜드의 통일 이전에 존재했던 앵글로색슨 소왕국 가운데 하나였으며 고다이바 부인이 활약했던 11세기에는 잉글랜드 왕국의 주였다. 백작 Leofric은 영어로 /ˈlɛf.ɹɪk/ '레프릭' 외에도 /ˈleɪ̯.əf.ɹɪk/ '레이어프릭', /ˈliː‿əf.ɹɪk/ '리어프릭', /li.ˈɒf.ɹɪk/ '리오프릭' 등으로 다양하게 발음된다.

머시아를 포함한 앵글로색슨 소왕국들을 나타낸 지도.

이처럼 영어 발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Leofric이 고대 영어 이름으로 현대 영어에서는 잘 쓰지 않는 이름이며 현대 영어 화자 입장에서 봤을 때 고대 영어는 완전히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그 발음만 해도 f가 유성음 사이에서 [v]로 실현되고 c, g가 경우에 따라 오늘날의 ch, y처럼 [ʧ], [j]로 실현되는 등 현대 영어 화자에게는 낯선 부분이 많다.

원래의 고대 영어 발음은 [ˈleːovriːʧ] '레오브리치' 정도로 재구성할 수 있다. 오늘날 고대 영어 교재 등에서는 원래의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부호를 추가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Leofric은 Lēofrīċ으로 쓴다. 여기서 e와 i가 장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줄을 그었고 c가 현대 영어에서 ch로 적는 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점을 찍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어 화자들은 고대 영어의 발음을 잘 모르니 Leonard /ˈlɛn.əɹd/ '레너드', leopard /ˈlɛp.əɹd/ '레퍼드' 등에서 유추하여 /ˈlɛf.ɹɪk/ '레프릭'으로 발음하거나 앞서 열거한 다양한 발음을 쓰는 것이다. Lēofrīċ는 '사랑스러운'을 뜻하는 lēof '레오프'와 '권력', '왕국' 등을 뜻하는 rīċe '리체'가 합친 이름인데 Leonard의 leon-과 leopard의 leo-는 각각 고대 고지 독일어와 라틴어·고대 그리스어에서 '사자'를 뜻하니 어원상으로는 Leofric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상단에서 머시아 백작 레프릭과 참회왕 에드워드가 성찬식 빵에 예수의 얼굴이 나타나는 기적을 목격하고 있다. 잉글랜드 토지 대장인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의 13세기 요약본.

Godiva는 원래 고대 영어 이름인 Godgifu를 라틴어식으로 적은 것이다. 둘째 g가 오늘날의 y처럼 발음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에 점을 찍어 Godġifu와 같이 쓸 수 있으며 그 발음은 [ˈɡodjivu] '고드이부' 정도로 재구성할 수 있다. '신'을 뜻하는 god '고드'와 '선물'을 뜻하는 ġifu '이부'가 합친 이름이다. 중세 라틴어식으로 ġi [ji]는 그냥 i로 흉내내고 f [v]는 v로 적어 Godiv-가 된 것이며 라틴어에서 여성 이름이 흔히 -a로 끝나므로 이를 따라 Godiva가 된 것이다. 11세기 당시 고대 영어 발음에서는 어차피 Godġifu의 마지막 모음이 분명하게 발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금 드문 노르웨이어 여자 이름 가운데 Synnøve [²synːøvə] '쉰뇌베'가 있는데 10세기에 아일랜드에서 노르웨이로 건너갔다는 성인 Sunniva '순니바'에서 나온 현대 노르웨이어 이름이다. 이 이름은 '태양'을 뜻하는 sunne '순네'와 ġifu '이부'가 합친 고대 영어 이름 Sunnġifu '순이부'가 고대 노르드어 Sunnifa '순니바'를 거쳐 중세 라틴어 Sunniva '순니바'가 된 것이다(고대 노르드어에서도 유성음 사이의 f가 [v]로 발음된다). 여기서도 고대 영어 이름의 -ġifu가 라틴어 -iva에 해당한다.

노르웨이의 한 교회 제단 장식으로 조각된 성 순니바 상. 1520년대. 베르겐 박물관 소장. 출처 Wikimedia: Nina Aldin Thune, CC-BY SA 3.0.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은 13세기 중세 잉글랜드의 연대기 《플로레스 히스토리아룸(Flores Historiarum)》에 처음 등장했다. '역사의 꽃들'을 뜻하는 라틴어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라틴어로 쓰인 연대기이다.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는 고대 영어로 쓰인 문서가 꽤 많았지만 1066년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노르만 왕조가 들어선 후 영어는 한동안 문자 언어로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노르만어/프랑스어나 라틴어가 주로 쓰였다(이 시점을 기준으로 고대 영어와 중세 영어를 나눈다).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라틴어식 이름인 Godiva가 오늘날 영어에서 쓰는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신 Lēofrīċ의 라틴어식 형태인 Leuricus '레우리쿠스' 또는 Leofricus '레오프리쿠스'는 잊혀지고 고대 영어 형태인 Leofric을 쓰는 것이다. Godġifu는 중세 잉글랜드에서 꽤 흔한 여자 이름이었지만 후대에는 쓰이지 않게 되었고 대신 여기서 나온 Goodeve /ˈɡʊd.iːv/ '구디브'가 성으로 드물게 쓰인다.

중세 잉글랜드에서 쓰인 Godiva의 라틴어 발음은 [ɡoˈdiːva] '고디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세 영어 후기에 해당되는 15세기에 시작되어 근대 영어 시기까지 계속된 대모음 추이(Great Vowel Shift)로 영어 장모음의 음가가 심한 변화를 겪었다. 중세 영어에서는 단모음 i /i/와 가까운 음가였던 장모음 i /iː/는 대모음 추이를 통해 현대 영어의 /aɪ̯/ '아이'로 변했다. 거기에 영어 발음의 특징인 모음 약화 때문에 원래의 /o/와 /a/가 불분명한 무강세 모음 [ə]로 변해 오늘날 Godiva의 영어 발음은 /ɡə.ˈdaɪ̯v.ə/ '거다이바'가 된 것이다. '침'을 뜻하는 라틴어 saliva '살리바'가 영어에서 /sə.ˈlaɪ̯v.ə/ '설라이바'가 된 것도 같은 이치이다.

영어의 대모음 추이를 나타낸 표. 출처 Wikimedia: Olaf Simons, CC-BY 3.0.

'거다이바'는 너무 어색하다고 느낀 것인지 아니면 중간의 /aɪ̯/ '아이' 발음은 들었지만 나머지 모음은 [ə]로 약화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정한 표기인지는 몰라도 '고다이바'가 전설의 부인 이름의 표준 표기로 정해졌다. 하지만 초콜릿 브랜드 Godiva는 프랑스어권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왔으므로 프랑스어 발음을 따라 '고디바'로 적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 쓰는 상호도 '고디바'이다. 프랑스어로는 고다이바 부인도 Dame Godiva '담 고디바'라고 하고 영어로는 고디바 초콜릿도 Godiva chocolate '고다이바 초콜릿'이라고 하는데 한국어에서는 '고다이바 부인', '고디바 초콜릿'으로 표기를 구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세 잉글랜드의 라틴어식 인명이고 당시에는 '고디바'로 발음했을 테니 '고디바 부인'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중세 잉글랜드 인물 가운데 라틴어식 이름으로 알려진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7~8세기에 활약한 성직자이자 라틴어로 《잉글랜드인들의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를 쓴 역사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비드'로 실려있다. 그가 쓴 라틴어 이름 Beda '베다' 대신 영어 이름 Bede /ˈbiːd/를 따라 '비드'로 쓴 것이다. 아무래도 중세 잉글랜드 인물 가운데 그나마 알려진 인물들은 많이 쓰는 영어식 이름이 따로 있어 굳이 라틴어 이름을 쓸 이유가 없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은 학계에서 라틴어보다는 고대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뉘른베르크판 《리베르 크로니카룸(Liber Chronicarum '연대기')》의 비드 삽화. 1493년.

이미 언급한 앵글로색슨 소왕국 머시아의 이름은 머시아 사람을 일컫는 고대 영어 Mierċe '미에르체' 또는 Myrċe '뮈르체'(본뜻은 '변경 사람')를 라틴어식으로 어미 -ia를 추가한 Mercia로 적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고전 라틴어 방식으로 읽으면 '메르키아'이다. 하지만 고대 영어의 표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라틴어에서 전설 모음 앞의 c는 잉글랜드에서 파찰음을 거쳐 결국 [s]로 변했기 때문에 '메르치아'가 당시 발음에 더 가까울 것이고 이게 현대 영어에서 '머시아'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앵글로색슨 소왕국으로 Northumbria도 있는데 고대 영어 Norþhymbra '노르스휨브라'에서 온 라틴어명이다. 고대 영어 철자의 þ는 현대 영어의 th 음에 해당하며 위치에 따라 무성 치 마찰음 [θ] 또는 유성 치 마찰음 [ð]로 발음되었다. 그러니 이를 고전 라틴어 방식으로 읽어 '노르툼브리아'로 표기하기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보통 현대 영어 발음 /nɔːɹ.ˈθʌm.bɹi‿ə/에 따라 '노섬브리아'라고 적는다.

이처럼 중세 잉글랜드식 라틴어 발음에 어울리게 표기하려면 손봐야 할 부분이 몇몇 있기 때문에 라틴어 발음을 따르려 하기보다는 라틴어 이름이라도 아예 현대 영어식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그러니 Godiva 하나만 따지면 '고디바'로 적는 것이 무난하더라도 중세 잉글랜드의 라틴어식 고유 명사를 표기하는 방식을 하나로 통일하라면 현대 영어 발음을 따르는 것이 제일 쉬워보인다.

대문자 에스체트(ẞ), 독일어 맞춤법에 공식적으로 포함되다 어문 규정

독일어 맞춤법 위원회(Rat für deutsche Rechtschreibung)는 6월 29일 대문자 에스체트(ẞ)를 허용하는 것을 포함한 독일어 맞춤법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독일 만하임에 소재한 독일어 맞춤법 위원회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남티롤 자치현), 벨기에(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참관국) 등 독일어권 각국의 대표가 참여하여 독일어의 맞춤법 정책을 관리하는 국제 기관이다.

글꼴: Brill

그동안 소문자 ß로 쓰는 것만 허용되던 에스체트(Eszett [ɛsˈʦɛt])는 독일어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글자이다. 한국에서는 워낙 낯선 글자인 나머지 생김새가 비슷한 그리스 문자의 베타(β)로 잘못 조판되는 수난을 흔히 겪는다. 한글 폰트에서는 아예 ß의 자리에 베타에 더 어울리는 자형을 넣는 일이 많고 심지어 기울임체 β를 쓰는 잘못을 저지른 것도 있다.

한 약도에서 Straße ([ˈʃtʁaːsə] '슈트라세', '길')의 ß가 그리스 문자 베타(β)로 잘못 조판되어서 Straβe가 되었다. 이 밖에 Hackerbruke는 Hackerbrücke '하커브뤼케'의 잘못이다.

이 글자는 장모음이나 이중모음 뒤의 음절말 음소 /s/를 나타내는 철자이다. '큰'을 뜻하는 groß [ɡʁoːs] '그로스', '흰'을 뜻하는 weiß [vaɪ̯s] '바이스'에서는 각각 장모음 [oː]와 이중모음 [aɪ̯] 뒤의 /s/를 ß로 적는다. 반면 단모음 뒤의 /s/는 ss로 적는다. 그래서 '(죄에 대한) 벌'을 뜻하는 Buße [ˈbuːsə] '부세'와 '버스'를 뜻하는 Bus [bʊs] '부스'의 복수형인 Busse [ˈbʊsə] '부세'의 철자가 구별된다. 전자는 장모음 [uː]가 쓰이고 후자는 단모음 [ʊ]가 쓰이므로 뒤따르는 /s/를 각각 ß, ss로 적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표준 독일어 발음에서 음절말 자음은 무성음이 되므로 음절말 음소 /z/도 [s]로 발음되는데 /z/는 s로 적고 /s/일 때만 ß, ss로 적는다는 것이다. 영어의 as, has, his, is, was 등에서 s가 /z/를 나타내는 것처럼 독일어 어말의 s도 /z/를 나타내지만 음절말 자음이 무성음이 된다는 규칙 때문에 [s]로 발음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단독으로 쓰일 때는 어말의 /s/와 /z/ 둘 다 [s]로 발음되므로 구별할 수 없으니 굴절형이나 활용형 등에서 모음이 따를 때 [s]로 발음되는지 [z]로 발음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풀'을 뜻하는 Gras [ɡʁaːs] '그라스'는 복수형이 Gräser [ˈɡʁɛːzɐ] '그레저'이기 때문에 마지막의 [s] 음이 사실은 /z/가 무성음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ß 대신 s로 적는다. 반면 groß의 비교형은 größer [ˈɡʁøːsɐ] '그뢰서'로 모음 앞에서도 [s] 발음이 나니 원 음소를 /s/로 보고 ß로 적는 것이다.

1996년 맞춤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단모음 뒤라도 어말이나 자음 앞의 /s/는 ss 대신 ß로 적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러시아'를 독일어로 Rußland '루슬란트'로 적었는데 단모음 [ʊ]를 써서 [ˈʁʊslant]로 발음하기 때문에 1996년 이후 Russland로 철자가 바뀌었다. 이때 새 규칙 때문에 독일어에서 쓰던 ß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성씨 같은 개별 고유명사는 애초에 맞춤법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원래 쓰던 표기를 그대로 쓴다. 성씨를 Geßner [ˈɡɛsnɐ] '게스너'로 적는 이는 맞춤법 규정에 상관 없이 Geßner로 계속 적는다. 사람에 따라 같은 발음을 Gesner 또는 Gessner로 적기도 하니 제각각이며 공식적으로는 셋 다 다른 성씨이다.

독일어권에서 아예 ß를 쓰지 않는 곳도 있다. 바로 스위스와 이웃 소국 리히텐슈타인이다. 이들이 쓰는 스위스 표준 독일어에서는 다른 독일어권 나라에서 ß로 적는 것을 모든 경우에 ss로 대체한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독일어권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ß를 쓴다.

ß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원래 오늘날의 표준 독일어의 전신인 중세 고지 독일어에서 쓰이던 철자인 sz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에스체트'라는 이름도 독일어로 s를 이르는 '에스'와 z를 이르는 '체트'가 합쳐진 것이다. 당시에는 원시 게르만어의 *t에서 나온 [s] 비슷한 음을 z로 흔히 썼는데 파찰음 [ʦ] 비슷한 발음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s] 비슷한 음은 sz, [ʦ] 비슷한 음은 tz로 구별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원시 게르만어의 *s에서 나온 [s] 비슷한 음은 ss로 썼다. 중세에는 *t에서 나온 음과 *s에서 나온 음의 발음이 구별되었는데 전자는 /s/로, 후자는 /⁠ɕ/로 설명하기도 하고 전자는 치음 /s̪/로, 후자는 설첨음 /s̺/로 설명하기도 한다. 어쨌든 당시에는 sz와 ss가 비슷하지만 구별되는 음을 나타냈다.

독일어의 groß, weiß는 각각 원시 게르만어의 *grautaz, *hwītaz에서 나왔으며 영어의 great [ɡɹeɪ̯t] '그레이트', white [(h)waɪ̯t] '화이트', 네덜란드어의 groot [ɣroːt] '흐로트', wit [ʋɪt] '빗'에 각각 대응된다. 저지 독일어에서도 각각 groot [ɣroːt], witt [vɪt]로 쓰니 원시 게르만어의 *t가 /s/로 변한 것은 고지 독일어만의 특징이다. 여기서 ß가 다른 게르만어의 t에 대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훗날 ß가 원시 게르만어의 *t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쓰이게 되었기 때문에 ß로 쓰인다고 꼭 원시 게르만어의 *t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1996년 맞춤법 개정으로 원시 게르만어의 *t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의 ß의 쓰임이 대폭 줄어들었다. 대신 영어의 hate, 네덜란드어의 haat에 해당하며 원시 게르만어의 *hataz에서 온 Hass [has](옛 철자는 Haß)에서처럼 원시 게르만어의 *t에서 온 경우에도 ß를 쓰지 않게 된 경우도 많다.

중세 글씨체에서 어중의 s는 '긴 s'라고 불리는 ſ 형태로 썼고 z는 꼬리가 달린 ʒ의 형태였기 때문에 sz는 ſʒ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 조합을 합자로 쓴 것이 ß의 시초이다. 그래서 독일어권에서 주로 쓰던 활자체인 흑자체(독일문자체)에서는 ß를 ſʒ 비슷한 형태로 썼다.

흑자체(글꼴: Walbaum Fraktur)로 쓴 weisz와 weiß. 여기서 s는 긴 s (ſ)로 썼다. ß는 긴 s (ſ)와 z의 합자 형태이다.

오늘날 독일 베를린의 도로명 표지판은 다른 글자는 익숙한 산세리프체 자형을 쓰지만 ß는 흑자체에서처럼 ſʒ가 합친 독특한 형태를 쓴다. 이 형태는 Verlag와 같은 일부 복고풍 글꼴에서 쓰이지만 오늘날 주류 형태는 아니다.
베를린의 도로명 표지판(Wikimedia: Chitetskoy, CC BY-SA-3.0)

한편 이탈리아, 프랑스 등 독일어권 바깥에서는 유럽에 인쇄술이 소개된 15세기에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체 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도 19세기 이전부터 로마체 활자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나폴레옹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프랑스에 대한 반감과 중세 독일에 대한 향수가 겹쳐 20세기 초까지 흑자체의 사용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로마체의 사용이라는 조류를 끝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흑자체 활자에는 ſʒ 합자 형태의 ß가 따로 있었지만 로마체 활자에는 이에 대응되는 글자가 없었다. 그래서 ſs로 쓰거나 sz, ss로 쓰는 등의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18세기에 이르러는 ss와 sz의 발음 구별이 사라졌기 때문에 둘이 혼용되었다. 하지만 결국 로마체 활자에서도 ß를 한 글자로 쓰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는 어떤 형태를 쓰느냐였다.

17세기 인쇄업자 아브라함 리히텐탈러(Abraham Lichtenthaler [ˈaːbʁaham ˈlɪçtn̩taːlɐ], 1621년~1704년)는 1667년에 이미 로마 말기의 철학자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독일어판을 펴내면서 긴 s (ſ)에 3자 모양의 우변을 합친 듯한 독특한 형태의 ß를 사용했다. 리히텐탈러는 바이에른 주의 줄츠바흐(Sulzbach [ˈzʊlʦbax])라는 소도시 출신이었기 때문에 여기에는 줄츠바허(Sulzbacher [ˈzʊlʦbaxɐ]) 형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03년 라이프치히에서 움라우트(ä, ö, ü)와 ß의 자형을 의논하러 모인 인쇄업자들은 앞으로 로마체 활자에서 ß를 줄츠바허 형태로 통일하기로 결의했다.

ß의 줄츠바허 형태를 쓴 글꼴(Walbaum 2010 Pro)로 쓴 weiß.

하지만 모든 이들이 줄츠바허 ß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자형이 못생겼다거나 B나 베타(β)와 너무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20세기 중반부터는 긴 s (ſ)와 s의 합자 비슷한 형태도 유행하게 되었다. ſs 합자는 다른 언어에서는 예전부터 쓰였지만 독일어의 ß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것은 더 최근의 일이다.

ß는 sz의 합자로 출발했지만 중세 고지 독일어에서 쓰인 sz와 ss의 구별이 사라진 이후 sz보다는 ss에 해당하는 글자라는 인식이 퍼졌다. 스위스 표준 독일어에서 ss로 대체하였고 대문자로 쓸 때에도 보통 SS로 쓰도록 한 것만 봐도 그렇다. z는 독일어에서 파찰음 /ʦ/를 나타내기 때문에 /s/를 나타내는 조합으로는 sz보다 ss가 어울려 보였을 것이다. 한동안 ß의 기원에 대해 ss 합자설과 sz 합자설이 대립했으며 특히 20세기 타이포그래피에 큰 영향을 끼친 디자이너 얀 치홀트(Jan Tschichold [jan ˈʧɪçɔlt], 1902년~1974년)는 ss 합자설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20세기 중반 이후 ſs 합자 형태의 ß가 많이 등장했다. ß의 실제 기원과는 상관 없이 오늘날 대다수 독일어 화자는 이를 ss에 해당하는 글자로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ß의 ſs 합자 형태를 쓴 글꼴(Calluna)로 쓴 weiſs와 weiß.

그래서 오늘날 로마체 글꼴에서 ß는 줄츠바허 형태와 ſs 합자 형태가 둘 다 많이 쓰인다. 보통 손글씨를 흉내내는 풍의 글꼴에서는 ſs 합자 형태를 선호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강조하는 글꼴에서는 줄츠바허 형태를 선호하지만 똑 부러지게 갈리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소문자 ß의 자형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으니 이에 해당하는 대문자의 자형에 대해 의견이 모아질 리 없었다. 결국 1900년을 전후하여 ß의 대문자형을 정립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몇몇 인쇄소에서는 대문자 ẞ를 포함한 활자를 내기도 했지만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그 후 대문자 ẞ는 사실상 잊혀져 타자기나 컴퓨터 자판, 인코딩 등에서 제외되었다.

흑자체에서는 대문자 ẞ가 필요없었다. ß는 음절말에 오는 소리를 적는 글자이므로 말의 첫머리에 오는 적이 없다. 그러니 흑자체에서는 언제나 소문자로만 적게 된다. 하지만 흑자체와 달리 로마체에서는 단어를 대문자로만 적는 일도 가능하다. 이런 경우 ß를 대문자로 어떻게 적느냐의 문제가 발생했다.

ß를 대문자로 쓸 수 있는 글자가 없으니 이를 SS나 SZ로 파자하는 방법이 쓰이게 되었다. 즉 groß를 대문자로만 쓸 때에는 GROSS 또는 GROSZ로 적는 식이다. 원래는 ß의 대문자형이 정해질 때까지 임시로 그렇게 쓴다는 것이 결국 독일어 맞춤법의 일부가 되었다. 1996년 이전에는 주로 SS로 적고 ss의 대문자와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만 SZ로 적도록 했는데 1996년 맞춤법 개정 때 예외 없이 SS로 통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ß를 대문자로 쓸 때 SS나 SZ로 대체하는 방식은 불편했기에 대문자 ß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동독에서 출판된 표준 독일어 사전인 《두덴 대사전(Der Große Duden)》은 표지에 대문자 ẞ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흐지부지되었고 20세기가 다 가도록 대문자 ẞ의 본격적인 도입은 요원해 보였다.

1965년판 동독 《두덴 대사전》(Flickr: Ralf Hermann, CC BY-NC 2.0)

하지만 2000년을 전후로 대문자 ẞ의 도입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다시 거세어졌다. 이들은 대문자 ẞ 없이는 대문자로만 썼을 때 성씨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독일어로 Weiß와 Weiss는 둘 다 [vaɪ̯s]로 발음되지만 엄연히 다른 성인데 신분증에서 대문자로만 적게 하면 둘 다 WEISS가 되어서 원래 Weiß인지 Weiss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대문자로만 쓸 때도 소문자 ß를 집어넣어 WEIß와 같이 쓰는 일도 잦았지만 맞춤법 규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독일의 서체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 전문지 《지그나(Signa)》의 편집자인 안드레아스 슈퇴츠너(Andreas Stötzner)는 대문자 ẞ를 도입하자는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는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유니코드 협회에 대문자 ẞ를 포함시켜달라는 제안서를 제출하여 2008년 유니코드 5.1.0 버전에 마침내 U+1E9E ẞ LATIN CAPITAL LETTER SHARP S로 등록되었다. sharp s는 독일어로 ẞ의 또다른 이름인 scharfes S를 영어로 옮긴 것인데 독일어로 scharf는 영어의 sharp처럼 '날카롭다'는 뜻도 있지만 무성음을 이를 때도 쓰인다. 즉 scharfes S는 '무성음 s'라는 뜻이다.

대문자 ẞ의 도입을 주장한 타이포그래피 전문지 《지그나》 9호 표지(2006년).

마침내 대문자 ẞ가 유니코드에 등록되었지만 곧바로 독일어 맞춤법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이를 지원하는 글꼴이 추가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도 대문자 ẞ를 지원하지 않는 글꼴이 많다. 하지만 지난 9년 사이 대문자 ẞ 지원을 추가한 기존 글꼴이나 대문자 ẞ를 처음부터 포함한 신규 글꼴이 꽤 보급되었다. 20세기 초까지는 대문자로 SZ 또는 SS 합자를 비슷한 글자를 쓴 시도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소문자 ß의 자형에서 출발하여 대문자에 어울리도록 크기와 모양을 바꾼 글자가 쓰인다.

이번에 발표된 독일어 맞춤법 개정안은 대문자 ẞ를 쓰는 것을 인정하되 예전 방식을 쓰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전처럼 SS로 대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고수하되 대문자 ẞ로 쓰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대문자 ẞ를 지원하는 글꼴이 꽤 보급되었지만 아직까지 지원하지 않는 글꼴도 많다는 현실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대문자 ẞ가 유니코드에 등록된 이후 이를 지원하는 글꼴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글꼴: PT Sans, Brill, Carlito, Nocturne Serif, Source Sans Pro, Iowan Old Style BT, Daytona Pro).

대문자 ẞ의 도입에 일반 언중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이다. 아직까지 독일어 키보드로 쉽게 입력하기 어렵다는 중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또 모두 대문자로만 쓸 때나 필요한 글자이기 때문에 쓸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유니코드에 등록된 이후에도 독일어 맞춤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문자 ẞ를 망설여왔던 이들은 이제 거리낌 없이 대문자 ẞ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앙코르 '왓'? 어말 [k, p, t]를 받침으로 적는 문제 표기 용례

세계 최대 규모의 사원이라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는 중세 크메르 제국 시대에 당시 수도인 앙코르에 세워졌다. 크메르어(캄보디아어)로 '앙코르' អង្គរ Ângkôr [ʔɑŋˈkɔː]는 '수도'라는 뜻이고 '와트' វត្ត Voat [ˈʋoat]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어 발음을 직접 옮긴 것이 아니라 영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에서 쓰이는 로마자 철자인 Angkor Wat에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을 적용한 표기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앙코르^와트'로 실려 있으니 '앙코르와트'와 같이 붙여 써도 되고 '앙코르 와트'와 같이 띄어 써도 되지만 여기서는 원어의 단어 구분을 살려 띄어 쓰는 것으로 통일한다.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은 1986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처음 공포된 뒤 발간된 《외래어 표기 용례집(지명·인명)》에서 한글 표기 기준이 세부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언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적용한 원칙을 일러두기의 형태로 제시한 것으다. 오늘날에도 외래어 표기법에서 아직 다루지 않는 언어의 한글 표기를 심의할 때 대체로 이 원칙을 적용한다.

앙코르 와트(Commons: sam garza, CC BY-2.0)

로마자 표기를 거치지 않고 오늘날 캄보디아의 공용어이기도 한 크메르어 이름 អង្គរវត្ត Ângkôr Voat의 현대 크메르어 발음 [ʔɑŋˌkɔː ˈʋoat]를 직접 한글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이 발음 기호에서 로마자 표기의 r가 발음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 쓰이는 중부 방언을 포함한 현대 크메르어 대부분의 방언에서 음절말 /r/는 묵음이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앞으로 크메르어 표기법을 마련할 때 정해야 하겠지만 예전에는 발음되었던 음이고 크메르어 철자와 로마자 표기에서도 나타나며 태국 동북부에서 쓰이는 북크메르어 방언에서는 아직도 음절말의 /r/가 발음되니 한글 표기에서도 '르'로 적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크메르어에도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한국어와 비슷한 폐쇄음의 3계열 대립이 있으며 크메르어 철자에도 이게 나타난다. អង្គរ Ângkôr [ʔɑŋˈkɔː]의 k [k]는 한국어의 'ㄲ'처럼 무성 무기음으로 'ㅋ'와 비슷한 , kh [kʰ]와 대비된다. 한국어의 'ㄱ'에 대응되는 음은 없지만 'ㅂ, ㅍ, ㅃ', 'ㄷ, ㅌ, ㄸ'에 각각 대응되는 음이 있는 것이 타이어와도 비슷하다. 크메르어는 아직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 않지만 타이어는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함께 2004년 12월 20일 외래어 표기법에 그 표기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는데 폐쇄음의 3계열 대립을 반영하여 타이어와 베트남어의 한글 표기에는 이례적으로 된소리 표기를 허용하였다. 그러니 크메르어 표기법을 마련한다면 타이어 표기법에서처럼 된소리 표기를 활용하여 អង្គរ Ângkôr는 '앙꼬(르)'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다.

វត្ត Voat [ˈʋoat]의 표기는 더 까다로운 문제이다. 학자에 따라 [w], [β̞] 등으로 적기도 하는 첫 자음 v [ʋ]는 로마자 표기에서 v로 흔히 적지만 [w]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 좋겠다. 타이어 표기법에서도 로마자로 v로 흔히 적는 음을 [w]로 취급한다. 그런데 뒤따르는 이중모음 [oa]와 합칠 때는 '워아' 또는 '오아'로 적을지, 예외적으로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와 가깝게 '와'로 적을지 고민된다. 이중모음 [oa]는 학자에 따라 [oə]로 적기도 한다.

일단 익숙한 '와'로 적기로 한다고 해도 저절로 វត្ត Voat가 '와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크메르어에서 어말의 [t]는 불파음(不破音), 즉 터뜨리지 않는 소리인 [t̚]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hype [ˈhaɪ̯p], height [ˈhaɪ̯t], hike [ˈhaɪ̯k] 등의 단어를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할 때에는 어말의 [p], [t], [k] 등을 터뜨리기 때문에 '하이프', '하이트', '하이크'처럼 들리는데(물론 '으' 모음이 실제 있는 것은 아니고 [p], [t], [k]가 각각 초성 'ㅍ', 'ㅌ', 'ㅋ'인 것처럼 발음된다는 것을 흉내낸 것이다) 빠르게 발음할 때에는 파열 도중에 기류를 막아 '하입', '하잇', '하익' 비슷한 불파음이 될 수가 있다. 즉 영어에서는 어말 폐쇄음을 불파음으로 발음해도 되고 그러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선택 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어의 '밥', '밭', '밖'을 천천히 발음할 때의 영어처럼 '바브/바프', '바트', '바끄/바크'처럼 [p], [t], [k]를 터뜨려서 발음했다가는 딱 외국인 억양이 된다. 한국어에서는 어말 폐쇄음이 영어처럼 선택적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불파음이기 때문이다. 보통 발음 기호에서는 불파음 여부를 따로 나타내지 않지만 굳이 불파음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면 폐쇄음 기호의 오른쪽 위에 모서리 모양 부호를 더해서 [p̚], [t̚], [k̚] 등으로 적는다.

크메르어에서도 어말 폐쇄음은 필수적으로 불파음이므로 크메르어 발음을 살리려면 '와트'보다는 '왓'(또는 '워앗', '오앗')이 더 어울리는 표기이다. 하지만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서는 어말의 무성 폐쇄음 [p], [t], [k]는 모두 '으'를 붙여 적도록 했기 때문에 '와트'로 쓰는 것이다. 세계의 여러 언어 가운데 어말 무성 폐쇄음이 불파음인 것은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그렇게 원칙을 정한 것이다.

크메르어에서 '사원'을 뜻하는 វត្ត Voat는 '울타리 친 장소'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वाट vāṭa에서 나왔다. 크메르 제국에서 쓴 말은 고대 크메르어이지만 문자 언어로는 고대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주로 썼으며 대부분의 기록을 산스크리트어로 남겼다. 산스크리트어는 크메르 제국 뿐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문자 언어로 쓰여 옛 한국과 일본에서 문자 언어로 쓰인 한문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또 산스크리트어와 가까운 인도의 언어인 팔리어도 불경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널리 전해졌기 때문에 오늘날 크메르어 어휘의 상당수는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에서 왔다. '앙코르' អង្គរ Ângkôr도 어원을 따지면 결국에는 '도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낱말인 नगर nágara '나가라'에서 왔다. 이런 인도계 차용어는 크메르어 철자에 따른 일반적인 발음 규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크메르어를 배울 때 헷갈리기 쉽다. វត្ត Voat도 크메르어 철자만 보면 모음이 ô [ɔ]이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oa [oa]인 것은 인도계 차용어이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타이어도 마찬가지이다. 타이어의 วัด wat [wát] '왓'도 크메르어의 វត្ត Vôtt와 뜻과 어원이 같다. '새벽 사원'을 뜻하는 방콕의 왓 아룬(วัด อรุณ Wat Arun [wát ʔarun])을 예로 들 수 있다.

왓 아룬(Commons: Rolf Heinrich, Köln, CC BY-3.0)

'왓 아룬'은 2004년 12월 20일에 추가된 타이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이다. 타이어 표기법에서 음절말 폐쇄음은 받침으로 적는다. 이전에는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 따라 '와트 아룬'으로 적어야 했지만 타이어 표기법의 제정으로 음절말 폐쇄음이 언제나 불파음으로 발음되는 실제 발음과 가깝게 '왓 아룬'으로 표기가 바뀐 것이다.

라오스의 공용어인 라오어에서 사원을 뜻하는 단어는 ວັດ wat [wat]이다. 라오 문자는 타이 문자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지만 라오어는 타이어와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타이어와 라오어가 동일 방언 연속체에 속한다고 보기도 한다. 발음도 상당 부분 비슷하며 음절말 폐쇄음이 불파음인 것도 당연히 같다. 그러니 라오어 ວັດ wat는 타이어 วัด wat처럼 '왓'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라오어의 한글 표기를 심의할 때 타이어 표기법을 적용한 적이 없다. 그러니 현행 방식으로는 라오어 ວັດ wat는 '와트'로 적어야 한다.

예를 들어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있는 '황금 도시 사원'을 뜻하는 Wat Xieng Thong (라오어: ວັດຊຽງທອງ Wat Xiang Thong [wat síəŋ tʰɔ̌ːŋ])은 통용 로마자 표기에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을 적용하면 '와트 시엥 통'이다. 하지만 '왓 시엥 통'으로 적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사실 '도시'를 뜻하는 ຊຽງ xiang [síəŋ]의 이중모음을 어떻게 표기하느냐에 따라 '왓 시엉 통' 또는 '왓 시앙 통'이 더 나을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참고로 이에 대응되는 타이어 이름은 วัดเชียงทอง Wat Chiang Thong [wát ʨʰia̯ŋ tʰɔːŋ]이며 여기에 타이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왓 치앙 통'이다.

와트 시엥 통(Commons: Philip Maiwald, CC BY-3.0)

이처럼 '사원'을 뜻하는 크메르어의 វត្ត voat, 타이어의 วัด wat, 라오어의 ວັດ wat는 세 언어 모두 음절말 [t]가 불파음 [t̚]를 나타낸다. 하지만 현재 운이 좋게 표기법이 따로 있는 타이어 단어만 '왓'으로 적고 나머지 둘은 '와트'로 적는 것이 현행 방식이다. 앞으로 크메르어와 라오어 표기법이 마련된다면 타이어 표기법에서처럼 음절말 [t]를 받침 'ㅅ'으로 적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Pol Pot, ប៉ុល ពត Pŏl Pôt [pɔl pɔːt])도 '뽈 뽓'으로 표기가 바뀌고 흔히 '시엠립'이라고 부르고 표준 표기는 '시엠레아프'인 앙코르 와트의 관문인 Siem Reap(សៀមរាប Siĕm Réap [siəm riəp])도 '시엄리업'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는 언어 가운데 어말의 무성 폐쇄음 [p], [t], [k]를 예외 없이 받침으로 적게 하는 언어는 타이어와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등 2004년 12월 20일에 표기 규정이 추가된 동남아시아 3개 언어 뿐이다. 베트남어의 승려 Thích Nhất Hạnh [tʰǐk ɲɜ̌t hɐ̂ʔɲ]은 국내에 '틱낫한'으로 알려져 있는데 베트남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틱녓하인'이다. 통용되는 표기와 규정에 따른 표기 모두 'ㄱ', 'ㅅ' 받침을 썼다. 베트남어의 어말 폐쇄음도 불파음인 까닭이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표기법에서는 한술 더 떠서 유성 폐쇄음 /b/, /d/, /ɡ/도 어말에서 받침으로 적게 했고 심지어 마찰음 /f/, /x/도 받침으로 적게 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통화 단위인 ringgit [riŋɡit]을 '링깃'으로 적을 뿐만이 아니라 이름인 Ahmad [a(h)mat]은 '아맛'으로 적고 Yusuf [jusuf]은 '유숩'으로 적는 것이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에서 음절말의 /b/, /d/, /ɡ/는 보통 불파음인 [p], [t], [k]로 발음되기 때문에 이렇게 정한 것이다. /f/, /x/도 외래 음소이니 각각 /p/, /k/와 합쳐질 수 있다고 보고 그렇게 정한 것 같은데 실제 발음을 관찰하면 적어도 /f/는 음절말에서도 마찰음으로 제대로 발음하니 이를 살려 Yusuf는 '유수프'와 같이 적는 것이 더 나았을 듯하다. 마찰음인 /s/는 어말에서 '스'로 적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기존 연구만 보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어말 폐쇄음이 필수적으로 불파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kobalt [kobalt] '코발트' 같은 최근의 차용어에서는 폐쇄음이 어말 자음군의 마지막 자음이라서 한글로 옮길 때 받침으로 적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예외가 있더라도 어말 폐쇄음을 불파음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아가서 말레이인도네시아어 고유 어휘에서 철자상의 어말 -k는 성문 폐쇄음 [ʔ]로 발음되는데 이는 그 전에 불파음 [k̚]의 단계를 거쳤다는 것을 입증한다.

지금까지 살핀 언어와 같이 음절말, 특히 어말 무성 폐쇄음이 필수적으로 불파음인 언어는 주로 아시아에서 발견된다. 한국어를 비롯해 크메르어, 타이어, 라오어,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모두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쓰이는 언어이다.

동남아시아 3개 언어 표기 규정이 추가되기 이전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는 아시아 언어는 중국어와 일본어 뿐이었다. 그런데 표준 중국어와 일본어에는 어말 폐쇄음이 없다. 즉 'ㅂ', 'ㅅ', 'ㄱ' 등의 받침으로 적을만한 음이 어말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한자음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의 중국어는 어말 폐쇄음이 있었으며 지금도 표준 중국어가 속한 북방어를 제외한 광둥어, 민난어 등 다른 중국어계 언어에는 보통 어말 폐쇄음이 남아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불파음으로 발음된다. 기존 표기 용례 가운데 표준 중국어 이외의 다른 중국어계 언어 발음을 따른 것들이 종종 있는데 여기서 어말 폐쇄음은 받침으로 적는다. 홍콩의 첵랍콕(Chek Lap Kok, 광둥어: 赤鱲角 Cek3laap6gok3 [ʦʰɛ̄ːk.làːp.kɔ̄ːk]) 공항, 싱가포르의 고촉통(Goh Chok Tong, 민난어: 吴作栋 Gô Chok-tòng [ɡɔ̌ ʦɔk tɔ̭ŋ]) 전 총리를 예로 들 수 있다. 영어에서 쓰는 로마자 표기를 거친 간접적인 한글 표기이긴 하지만 앞으로 광둥어와 민난어 표기법을 따로 마련한다고 해도 받침으로 적을 것이다.

홍콩 쳅락콕 국제공항(Commons: Wylkie Chan, CC BY-3.0)

중국어와 같이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티베트어와 버마어도 어말 폐쇄음이 불파음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티베트어 이름인 དགེ་ལེགས་ dge legs Gelek [kèlèʔ, -lèk]은 '겔레그'나 '겔레크' 대신 '겔렉'으로 적는 것이 자연스럽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비슷하게 티베트어에서도 어말 -k는 보통 성문 폐쇄음 [ʔ]으로 발음되고 격식을 갖출 때나 [k]로 발음한다.

그런데 버마어에서는 비슷한 현상이 다른 자음에도 적용되어 음절말의 -k, -t, -p, -s 등이 수세기 전에 이미 모두 성문 폐쇄음 [ʔ]로 합쳐졌다. 하지만 통용되는 로마자 표기에서는 이들이 아직도 발음되는 것처럼 적을 때가 많다. Chauk라고 보통 쓰이는 미얀마 지명 ချောက် Hkyauk이 한 예이다. 이 지명은 기존 용례에 '차우크'로 나와있지만 '차우'로 적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깝다. 실제로 더 최근에 심의된 Kyaukpyu로 보통 쓰이는 미얀마 지명 ကျောက်ဖြူ Kyaukhpru는 철자상의 음절말 -k를 무시한 '차우퓨'로 표기가 정해졌다. 하지만 앞으로 버마어 표기법을 정할 때 만약 성문 폐쇄음이 없는 경우와의 구별을 위해 이를 일부러 나타낸다면 '차욱'이든 '차웃'이든 받침을 써서 나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쓰는 타갈로그어도 어말 무성 폐쇄음이 불파음이다(대신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달리 유성 폐쇄음은 음절말에서도 무성음화하지 않고 분명하게 발음된다). 필리핀 지명 가운데 Tarlac는 기존 표기 용례에서 '타를라크'로 쓰는데 '타를락'으로 적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필리핀에는 표준 필리핀어의 바탕이 되는 타갈로그어 외에도 지역마다 쓰이는 언어가 백여 개가 되지만 거의 모두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말레이·폴리네시아 어파에 속하여 계통이 같으니 필리핀의 고유 언어를 표기할 때는 어말 무성 폐쇄음을 불파음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가 공용어로 쓰이지만 자바어, 순다어, 이반어 등 계통이 같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지역별 고유 언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다고 아시아의 언어가 다 어말 무성 폐쇄음을 불파음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몽골어를 비롯하여 위구르어, 우즈베크어, 페르시아어 등 중앙아시아의 여러 언어와 벵골어, 힌디어, 타밀어를 비롯한 남아시아의 여러 언어는 어말 무성 폐쇄음을 받침으로 처리하기 곤란하다. 그러고 보면 어말 무성 폐쇄음이 필수적으로 불파음인 것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버마어, 티베트어, 중국어 등이 쓰이는 지역을 경계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지역적인 현상이다. 오스트로아시아 어족에 속하는 크메르어와 베트남어, 크라·다이 어족(타이·카다이 어족)에 속하는 타이어와 라오어,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에 속하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와 타갈로그어, 다른 언어와의 친연 관계가 밝혀진 것이 없는 한국어 등 계통이 다른 여러 언어들에서 나타나므로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한 상호 영향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하겠다.

크메르어, 라오어 등 아직 외래어 표기법에서 다루지 않는 언어의 표기 세칙을 제대로 마련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아직 표기법이 마련되어있지 않더라도 이제부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언어를 표기할 때 어말 파열음을 받침으로 적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적어도 사원을 뜻하는 단어가 타이어로는 '왓'이고 크메르어와 라오어로는 '와트'가 되는 불일치는 해결할 수 있겠다.

외계 행성 일곱 개를 거느린 '트라피스트-1'과 벨기에 맥주 이야기 어원

벨기에의 천문학자 미카엘 지용(프랑스어: Michaël Gillon [mikaɛl ʒijɔ̃])이 이끄는 국제 연구진은 22일 지구에서 39광년 떨어진 왜성 주위에 지구와 크기가 비슷한 암석 행성 일곱 개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 적어도 세 개, 어쩌면 일곱 개 모두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추정되어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진이 '지구의 일곱 자매'로 별명을 지은 행성들이 주위를 돌고 있는 왜성의 이름은 TRAPPIST-1이다. 국내 언론 보도를 보니 한글 표기는 처음 보도될 때에는 '트라피스트-1'과 '트래피스트-1'이 혼용되다가 점차 '트라피스트-1'로 통일되고 있는 듯하다.

트라피스트-1의 상상도

왜성 트라피스트-1은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라시야(라틴아메리카 에스파냐어: La Silla [la siˈʝa]) 관측소의 트라피스트(TRAPPIST) 망원경에서 이름을 땄다. 영어로 '통과 행성 및 미행성 소형 망원경–남쪽'을 뜻하는 Transiting Planets and Planetesimals Small Telescope–South를 줄인데 흔히 '트라피스트회'라고 부르는 가톨릭 교회 수도회인 엄률 시토회(라틴어: Ordo Cisterciensis Strictoris Observantiae)에서 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다. '트라피스트(프랑스어: trappiste [tʁapistə])'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라 트라프(프랑스어: la Trappe [la tʁapə]) 수도원에서 출발한 수도회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TRAPPIST의 영어 발음 [ˈtɹæp.ᵻst]를 기준으로 표기하면 '트래피스트'이지만 수도회 이름은 원래의 프랑스어 발음에 따라 '트라피스트'로 쓰며 망원경과 왜성의 이름은 수도회 이름을 딴 것이니 '트라피스트'로 표기를 통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트라피스트회 수도원에서는 대부분 성 베네딕토가 6세기에 작성한 수도 규칙서(라틴어: Regula Benedicti)를 따라 노동을 중요시하여 수입을 위해 치즈, 빵, 초콜릿 등을 생산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일부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맥주가 유명하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뛰어난 맛과 품질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린다. 오늘날 맥주를 생산하는 트라피스트회 수도원은 벨기에에 여섯 곳, 네덜란드에 두 곳, 오스트리아와 미국, 이탈리아에 각각 한 곳씩 있다. 그러니 트라피스트 맥주라고 하면 보통 벨기에에서 생산된 것을 떠올린다.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하는 벨기에의 양조장은 다음 여섯 곳이다.
  • Achel 네덜란드어: [ˈɑxəl] '아헐'
  • Chimay 프랑스어: [ʃimɛ] '시메'
  • Orval 프랑스어: [ɔʁval] '오르발'
  • Rochefort 프랑스어: [ʁɔʃəfɔːʁ] '로슈포르'
  • Westmalle 네덜란드어: [ʋɛstˈmɑlə] '베스트말러'
  • Westvleteren 네덜란드어: [ʋɛstˈfleːtərən] '베스트블레테런'
이 가운데 특히 벨기에 북서부의 베스트블레테런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베스트블레테런 12'는 세계 최고의 맥주로 꼽히기도 한다. 네덜란드어 발음은 사실 '베스트플레터런' 또는 벨기에식으로 '웨스트플레터런'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베스트블레테런'이다. 벨기에 사람들은 트라피스트 맥주를 포함해서 자국에서 생산되는 맥주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 모음(Wikimedia: Philip Rowlands, CC BY-SA 4.0)

트라피스트 망원경이 사실 지용이 소속된 벨기에 리에주 대학에서 조종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칠레에 있는 망원경이 왜 하필 맥주로 유명한 트라피스트회의 이름을 땄는지의 수수께끼가 자연스럽게 풀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개최한 기자 회견을 통해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연구진은 행성 일곱 개의 이름은 지을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행성들은 현재 트라피스트-1b, 트라피스트-1c 등 b에서 h까지의 글자를 붙여 부르지만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도 지을 생각인지를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지용은 연구진끼리는 벨기에 맥주의 이름을 붙이자는 얘기를 했지만 공식 이름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정말로 이들에게 '베스트블레테런' 같은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붙이면 네덜란드어를 못하는 이들은 꽤나 고생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어학자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는 영화: 컨택트(Arrival) 영화와 언어

거대한 외계 비행물체 12개가 미국의 몬태나 주를 포함한 지구 곳곳에 출현한다. 얼마 후 미군은 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루이즈 뱅크스(에이미 애덤스 분) 박사를 찾아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해줄 것을 요청한다. 과연 뱅크스는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왜 지구에 왔는지 밝혀낼 수 있을까?

얼마 전에 한국에서 개봉한 캐나다의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2016년작 영화 《컨택트》는 이처럼 언어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나는 것은 SF(science fiction,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에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외계인과 어떻게 의사소통이 가능할지를 진지하게 탐구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언어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보기 드문 영화이니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해가면서 언어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컨택트》의 한국판 포스터

영화 《컨택트》의 영어 원제는 '도착'을 뜻하는 Arrival '어라이벌'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하필이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1997년에 영화화한 《콘택트》와 비슷하게 제목을 붙였다(원제는 Contact). 이 작품도 외계인이 보낸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을 다루는 SF 영화인데 국내 제목을 비슷하게 지어놓았으니 헷갈리기도 하고 국내에서 성공했던 1997년 영화에 기대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국내 제목을 붙인 쪽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컨택트》에 등장하는 대형 외계 비행물체가 콘택트렌즈 모양이기는 하다.

영어 contact /ˈkɒn.tækt/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콘택트'이다. 영어의 모음 음소 /ɒ/는 영국 발음에서 [ɒ]로, 미국 발음에서 [ɑː]로 발음되며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오'로 적는 것이 원칙이고 경우에 따라 미국 발음을 따라 '아'로 적기도 한다(예: column /ˈkɒl.əm/ '칼럼'). 그러니 contact /ˈkɒn.tækt/는 '콘택트'로 적는 것이 원칙이고 미국 발음을 따른다고 해도 '컨택트'가 아니라 '칸택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콘택트'가 표준어로 실려있다. 하지만 concept /ˈkɒn.sɛpt/, conference /ˈkɒn.fəɹ‿ənts/ 등을 외래어 표기 원칙에 따른 '콘셉트', '콘퍼런스' 대신 '컨셉(트)', '컨퍼런스'라고 흔히 쓰는 것처럼 표준 표기인 콘택트 대신 '컨택(트)'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 같다.

그런데 영어 contact가 I will contact you에서처럼 동사로 쓰일 경우 명사와 마찬가지로 /ˈkɒn.tækt/로 발음하기도 하지만 둘째 음절에 강세를 주어 /kən.ˈtækt/로 발음하기도 한다. 이 경우의 발음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컨택트'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은 '접촉', '연락'을 뜻하는 명사로 봐야지 동사로 보고 읽지는 않는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은 미국의 SF 작가 테드 챙(Ted Chiang, 중국어 이름은 姜峯楠 '장펑난')의 1998년작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이다. 영화로 만들면서 원작 소설과 상당히 달라지기도 했고 원래의 제목이 로맨틱 코미디인 것처럼 들린다고 해서 제목을 Arrival로 바꿨다.

영화 초반에 뱅크스 박사를 찾아온 미군의 웨버 대령(포리스트 휘터커 분)은 뱅크스가 예전에 '파르시(Farsi)'를 해독하는데 도움을 줄 때 나온 기밀 취급 허가가 아직 남아있다고 설명을 한다. 영어의 Farsi는 이란에서 쓰는 페르시아어를 페르시아어를 페르시아어로 فارسی ‎fārsi라고 하는데서 나온 이름인데 비교적 최근인 20세기에 쓰기 시작한 이름으로 예전에는 그냥 페르시아어라는 뜻인 Persian으로 불렀으며 지금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Persian이라고 부른다.

페르시아어는 이란의 국어일 뿐만이 아니라 타지키스탄에서 쓰는 타지크어, 아프가니스탄의 다리어도 같은 페르시아어의 방언이다. 그러니 미군에서도 중요하게 취급하는 언어이다. 그러니 페르시아어 번역은 어학병이나 현지 계약자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언어학자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언어 관련 부분 자문을 맡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교의 언어학자 제시카 쿤(Jessica Coon) 교수는 뱅크스가 페르시아어 대신 파키스탄 북부의 부루쇼족이 쓰는 부루샤스키어와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 언어를 번역한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워싱턴 포스트》 기사 참조).

제시카 쿤은 뱅크스가 웨버에 의해 '번역의 달인' 정도로 소개되는 부분도 바꾸려고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언어학자는 언어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을 다루지 번역을 주로 하지는 않는다. 언어학자라고 꼭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웨버는 뱅크스에게 외계인이 내는 소리를 녹음한 것을 들려주며 해석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뱅크스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외계인과 직접 대면해서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웨버가 외계인을 접근하게 허락해줄 수는 없다며 버클리 대학교의 언어학자를 찾아가려 하자 뱅크스 박사는 그 언어학자에게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이란 낱말이 무엇이며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얼마 후 돌아온 웨버는 뱅크스에게 '전쟁'은 산스크리트어로 gavisti이며 '논쟁(an argument)'이라고 해석했다고 전한다. 뱅크스는 같은 단어를 '소를 더 원하는 것(a desire for more cows)'이라고 해석한다. 이에 웨버는 뱅크스를 다른 언어학자 대신 뱅크스를 데리고 가기로 결심한다.

산스크리트어 गविष्टि gáviṣṭi '가비슈티'는 '전쟁'보다는 '전투'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소'를 뜻하는 गो 에 '원하는 것'을 뜻하는 इष्टि ‎iṣṭi가 합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소털이가 분쟁의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어원인데 문화와 언어는 떼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든 예 같다. 하지만 보통 말하는 '전쟁'이란 뜻의 단어로는 युद्धम् yuddhám '유담'이 있으니 영화에서 쓴대로는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은 다리가 일곱 개라고 하여 고대 그리스어로 '일곱'을 뜻하는 ἑπτά heptá '헵타'에서 온 hepta-와 '다리'를 뜻하는 πούς poús '푸스'의 속격형 ποδός podós '포도스'에서 온 -pod를 합친 '헵타포드(heptapod)'라고 부른다. 뱅크스 박사의 노력으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영화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미군의 웨버 대령(포리스트 휘터커 분)은 뱅크스 박사에게 빨리 외계인들에게 온 목적을 물어볼 수 없냐고 다그친다. 그러자 뱅크스 박사는 '캥거루'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선원들이 주머니에 새끼를 넣고 뛰어다니는 동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원주민에게 물어보았더니 '캥거루'라고 대답해서 그렇게 불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캥거루'는 원주민의 언어로 '못 알아듣겠다'라는 뜻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고 나서 웨버 대령이 자리를 뜨자 이를 듣고 있던 물리학자 이언 도널리(제러미 레너 분)이 뱅크스 박사에게 훌륭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자 뱅크스 박사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지만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전달한다고 대답한다.

'캥거루'라는 이름의 유래〉라는 글에서 다룬 것처럼 '캥거루'라는 영어 이름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언어 가운데 하나인 구구이미디르어에서 실제로 캥거루를 부른 이름에서 나왔지 '못 알아듣겠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잘못된 상식을 퍼뜨리는 것으로 보여 걱정했는데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도 일부러 대령을 속인 것이었다.

외계인들의 언어는 실제 언어학자의 자문을 통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을 누설하지는 않겠다. 영화에서는 사고가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외계인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외계인과 같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은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 그들이 쓰는 언어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는 언어결정론으로 볼 수 있다. 이 강한 가설은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더구나 촘스키를 필두로 언어의 보편적인 특징을 강조하게 된 20세기 중반에는 개별 언어의 차이에 따른 영향을 다룬 사피어·워프 가설은 찬밥 신세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 여러 연구를 통해 제한적으로 상황에 따라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약한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결과도 나왔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언어학자 로만 야콥손은 '본질적으로 언어는 전달해야 하는 것에서 차이가 나지 전달할 수 있는 것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Languages differ essentially in what they must convey and not in what they may convey)'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각각의 언어는 전달해야 하는 필수 요소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높임말을 쓰기 때문에 끊임없이 말하는 상대를 비롯하여 거론되는 여러 이들의 상하 관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높임말을 쓰지 않은 영어와 같은 언어를 쓰는 이보다 여기에 신경을 쓰게 되어있다. 한국어를 쓰는 이는 영어를 쓰는 이에게는 없는 초능력이 있어서 언제 높임말을 쓸지 아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세계를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언어에서 필수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을 더 신경쓰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오감을 통해 세계를 인지하면서 시시각각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두뇌는 그 가운데에 사고를 위해 필수적인 정보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걸러낸다. 이 과정에서 언어에 따라 필수적인 정보가 무엇인지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라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이미 모든 이들이 세계를 인지하는 것 가운데 자신의 언어에서 요구하는 부분에 따라 특정 부분에 집중적으로 신경을 써서 그러는 것이지 다른 언어의 화자들이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터득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는 분명히 다른 생명체인 외계인의 언어를 배운다고 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까지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은 판타지다운 시적 허용으로 이해해야 하겠다.

뱅크스는 딸 해나(Hannah)에게 Hannah가 회문(回文), 즉 거꾸로 읽어도 제대로 읽은 것과 같은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영어로는 '팰린드롬(palindrome)'이라고 한다. 영화의 미국 개봉일은 11월 11일이었고 한국 개봉일은 2월 2일이었던 것도 비슷한 의도로 보인다.

언어와 관계된 세부적인 사항 가운데 이런저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 언어학자를 그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손에 쥔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언어와 생각의 관계와 같은 깊은 주제를 다룬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많지만 상대방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한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지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으면 좋겠다. 자동 번역기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서 가까운 미래에는 언어의 장벽이 무너질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언어에 담긴 상대방의 문화와 사고 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장벽은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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