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가 독립 백주년을 맞았다. 핀란드는 1917년 12월 6일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스웨덴 왕국에게 지배를 받던 핀란드는 1809년 스웨덴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기존 러시아 제국의 일부로 병합되지 않고 러시아 황제가 대공으로서 다스리는 자치 대공국이 되었다. 그래서 농노제와 전제 정치에 신음하는 기존 러시아 제국과는 차별된 영토로서 19세기 내내 러시아 본토보다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누렸다.
하지만 국민주의의 대두와 러시아 동화 정책에 대한 반발로 독립의 요구가 거세지던 참에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물러나고 임시 정부가 들어선데 이어 11월에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임시 정부까지 무너지자 핀란드는 대공이 사라진 이상 더이상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며 독립을 선언했다.
핀란드 원로원 의장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Pehr Evind Svinhufvud, 1861년~1944년)가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으며 볼셰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을 만나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찾아갔다. 당시 러시아 제국에게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이 일제히 독립을 선언한 가운데 핀란드까지 붙들어둘 여력이 없었던 레닌은 마지못해 핀란드 독립을 승인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 년 전에야 독립을 얻어낸 북유럽의 소국 핀란드는 우랄·알타이어학의 종주국으로서 한국어 계통 연구와도 깊이 관련된 역사가 있다.

독립 선언서를 시작하는 Suomen Kansalle '수오멘 칸살레'는 '핀란드 국민에게'를 뜻한다. '핀란드'는 핀란드어로 Suomi '수오미'라고 하고 kansa '칸사'는 '국민'이라는 뜻이다(Finland '핀란드'는 스웨덴어 이름이다). 속격 어미 -n '~의', 향격 어미 -lle '~위에'가 각각 붙은 것인데 Suomi의 속격형은 Suomen '수오멘'으로 어근이 약간 변한다. 핀란드어의 격어미는 한국어의 조사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근과 어미의 경계가 언제나 뚜렷하지는 않아서 라틴어처럼 격변화 형태를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핀란드어는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와 라틴어와 같은 굴절어의 중간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헝가리어는 겉으로는 핀란드어와 에스토니아어와 별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헝가리어로 1, 2, 3, 4, 5는 egy '에지', kettő/két '케퇴/케트', három '하롬', négy '네지', öt '외트'이다. 하지만 언어학자들은 헝가리어도 핀란드어와 에스토니아어와 친족 관계라는 것을 밝혀냈다. 1을 뜻하는 헝가리어 egy는 핀란드어 yksi나 에스토니아어 üks와는 어원이 다르지만 적어도 2, 3, 4, 5를 뜻하는 말은 세 언어 모두 뿌리가 같다. 어떻게 viisi/viis가 öt와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헝가리어와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만 남아있다면 이들의 친족 관계는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쓰이는 여러 소수 언어를 통해 그 연결 고리를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리어로는 5를 вич vič '비치'라고 하며 코미어로는 вит vit '비트', 한티어로는 вет wet '웨트'라고 하니 viisi/viis와 öt 사이에 보이는 간극을 메울 수 있다.
핀란드어와 헝가리어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17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했다. 그 후 학자들은 꾸준한 연구를 통해 스칸디나비아 북부에서 쓰이는 사미어를 비롯하여 당시 러시아 제국에서 쓰인 여러 소수 언어가 이들과 친족 관계라는 것을 밝혀냈다. 19세기에 산스크리트어와 페르시아어, 그리스어, 라틴어가 뿌리가 같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인도·유럽어족 연구가 각광을 받기 시작할 즈음에 우랄어족은 이미 상당한 연구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핀란드어와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핀란드어는 우랄어족에 속한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알타이어족이 단일 계통이라는 그전까지의 학설에 의문이 제기되어 오늘날 언어학계에서는 알타이어족을 더이상 확립된 어족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어파로 취급되었던 것들이 어족으로 승격되어 튀르크어족·몽골어족·퉁구스어족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알타이 가설마저 지지를 잃은 오늘날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이 친족 관계라는 우랄·알타이 가설은 언어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었다. 그러니 핀란드어와 한국어는 친족 관계가 아니다.

카스트렌은 헬싱키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목적으로 고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배우다가 핀란드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핀란드어의 뿌리를 찾아 아직 문자가 없는 여러 종족의 언어를 기록하고 연구하기 위해 라플란드와 카렐리아, 시베리아를 돌아다녔다. 1841년에는 핀란드의 언어학자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önnrot, 1802년~1884년)와 함께 언어 연구를 위해 우랄 산맥 너머까지 답사를 떠났다. 뢴로트는 주로 카렐리아 지역에서 수집한 시를 바탕으로 핀란드의 국민 서사시라고 불리는 《칼레발라(Kalevala)》를 편찬한 장본인으로 카스트렌은 뢴로트와 같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칼레발라》를 핀란드어에서 스웨덴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카스트렌은 단순한 유형 비교를 떠나 어휘와 어형 비교를 통해 핀·우그리아 제어와 사모예드 제어, 튀르크 제어, 몽골 제어, 퉁구스 제어(만주·퉁구스어)를 묶어 알타이어족이라고 불렀다. 20세기 초에 핀·우그리아 제어와 사모예드 제어를 묶어 우랄어족으로 부르게 되면서 카스트렌이 말한 알타이어족은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람스테트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거나 적어도 친족 관계라는 것을 밝히려 노력했다. 다른 학자들은 일본어도 알타이어족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람스테트는 일본어가 그다지 알타이어족과 가까운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한국어 어원 연구》에서는 한국어와 몽골어, 만주어, 튀르크어 어휘를 비교하며 알타이어 비교 언어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유럽 학자로는 최초로 한국어의 계통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람스테트의 연구는 국어학자 이숭녕(李崇寧, 1908년~1994년)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어 국내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정설로 굳게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동안 교과서에도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알려졌던 것은 북유럽의 소국 핀란드가 배출한 두 거인 카스트렌과 람스테트의 연구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 유사성만으로는 친족 관계를 밝힐 수 없다.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유형적인 유사성이나 외견상 비슷한 낱말을 제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규칙적인 음운 대응을 찾아내어 두 언어의 공통 조어를 재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비교언어학의 기초가 되는 비교방법(comparative method)이다.
카스트렌과 람스테트는 이처럼 비교방법을 사용하여 우랄·알타이 가설과 알타이어·한국어 동계설을 증명하려고 했다. 뒤를 이은 언어학자들도 이들처럼 알타이 제어를 비교하며 공통 조어를 재구하려 노력했고 뿌리가 같은 낱말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른바 알타이 제어 사이에는 기초 어휘마저 심하게 차이가 나서 좀처럼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국어학자들도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지만 람스테트가 연구한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1960년대부터 언어학자들은 기존의 연구 결과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알타이 가설과 알타이어·한국어 동계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알타이 제어에서 동근어로 제시되었던 것은 차용어 또는 우연히 표면적으로 비슷한 낱말이며 같은 계통이라는 주장은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람스테트의 《한국어 어원 연구》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한자어를 고유어로 잘못 안 것과 같은 기초적인 오류가 발견되었다. 스웨덴의 한국어학자 스타판 로센(Staffan Rosén, 1944년생)은 1979년 람스테트와 그의 제자인 러시아의 알타이어학자 니콜라이(혹은 니콜라스) 포페(Николай/Николас Поппе Nicholas Poppe, 1897년~1991년)가 제시한 한국어 어원 82개 가운데 21개만이 한국어 정보가 오류가 없었고 40여 개는 어형이나 뜻풀이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계속된 논란 끝에 주요 언어학자들이 알타이 가설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언어학계에서 알타이어족은 입증되지 않은 가설로 취급된다. 핀란드 알타이어학자 유하 얀후넨(Juha Janhunen, 1952년생)은 대표적인 알타이 가설 비판론자이다. 그는 알타이 제어의 유형적 유사성은 유라시아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설명한다. 실제 지리적으로 인접한 계통이 다른 언어 사이에 공통된 특징이 나타나는 현상은 폭넓게 관찰된다. 알타이어족을 부정하는 알타이어학자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같은 계통이 아니더라도 수 천 년 동안 서로 이웃하면서 많은 특징을 공유하게 된 여러 언어를 같이 연구한다는 것이다. 얀후넨은 튀르크어와 몽골어,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의 조상이 모두 오래 전 만주 남부와 한반도 북부 어딘가에서 쓰였던 서로 이웃하는 언어였고 후에 각기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직도 알타이 가설이 사실인지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알타이어족이 다른 어족에 비해 동근 어휘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차용어가 아닌 실제 동근어 목록을 작성하려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랄어족까지 끌어들여 우랄·알타이어족이 성립한다는 주장은 주류 언어학계에서 아예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핀란드에서 알타이 제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하 얀후넨(Juha Janhunen)을 빼고 여기서 언급한 핀란드인, 즉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Pehr Evind Svinhufvud), 마티아스 카스트렌(Matthias Castrén),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önnrot), 구스타프 욘 람스테트(Gustaf John Ramstedt)는 모두 이름이 핀란드어식이 아닌 스웨덴어식이다. 오늘날에도 핀란드 인구 5% 정도가 스웨덴어를 모어로 쓰며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둘 다 공용어로 쓰인다.
19세기에 핀란드 지식인들은 낭만주의와 국민주의 사조의 영향으로 그때까지 하찮은 농민 언어로 여겨지던 핀란드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스웨덴어를 모어로 쓰는 지배 계층에서 나왔지만 핀란드어를 배우고 핀란드어를 집 안팎에서 사용하려 노력했다. 많은 이들은 이름을 핀란드어식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핀란드어는 스웨덴어와 동등한 공용어 지위를 얻었다.
핀란드어를 배운 이들에게는 핀란드어가 인도·유럽어족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스웨덴어와 전혀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그래서 핀란드어의 뿌리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이웃하는 러시아 제국 곳곳에서 핀란드어와 비슷한 언어가 쓰인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들을 연구하기 위해 카스트렌 같은 이들이 나선 것이다. 핀란드어가 단지 핀란드 대공국에서 쓰이는 초라한 언어가 아니라 유라시아에 널리 퍼진 어족에 속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발견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어와 핀란드어가 같은 계통이라는 가설은 우랄·알타이 가설과 함께 폐기되었지만 이런 유산으로 인해 핀란드는 우랄어학과 알타이어학의 종주국으로 남아있다. 람스테트는 헬싱키 대학에서 1917년 최초로 '알타이어학' 수석교수가 되었고 1933년에는 최초로 한국어 과목을 개설하였다. 중앙아시아 한인을 연구한 고 고송무(1947년~1993년) 교수는 헬싱키 대학에서 우랄어를 전공한 후 한국학부를 맡기도 했다. 핀란드어와 한국어는 친족 관계가 아니라도 이처럼 깊은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것이다.
스웨덴 왕국에게 지배를 받던 핀란드는 1809년 스웨덴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기존 러시아 제국의 일부로 병합되지 않고 러시아 황제가 대공으로서 다스리는 자치 대공국이 되었다. 그래서 농노제와 전제 정치에 신음하는 기존 러시아 제국과는 차별된 영토로서 19세기 내내 러시아 본토보다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누렸다.
하지만 국민주의의 대두와 러시아 동화 정책에 대한 반발로 독립의 요구가 거세지던 참에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물러나고 임시 정부가 들어선데 이어 11월에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임시 정부까지 무너지자 핀란드는 대공이 사라진 이상 더이상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며 독립을 선언했다.
핀란드 원로원 의장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Pehr Evind Svinhufvud, 1861년~1944년)가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으며 볼셰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을 만나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찾아갔다. 당시 러시아 제국에게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이 일제히 독립을 선언한 가운데 핀란드까지 붙들어둘 여력이 없었던 레닌은 마지못해 핀란드 독립을 승인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 년 전에야 독립을 얻어낸 북유럽의 소국 핀란드는 우랄·알타이어학의 종주국으로서 한국어 계통 연구와도 깊이 관련된 역사가 있다.

핀란드어로 쓰인 핀란드의 독립 선언서. 스웨덴어로도 작성되었다.
독립 선언서를 시작하는 Suomen Kansalle '수오멘 칸살레'는 '핀란드 국민에게'를 뜻한다. '핀란드'는 핀란드어로 Suomi '수오미'라고 하고 kansa '칸사'는 '국민'이라는 뜻이다(Finland '핀란드'는 스웨덴어 이름이다). 속격 어미 -n '~의', 향격 어미 -lle '~위에'가 각각 붙은 것인데 Suomi의 속격형은 Suomen '수오멘'으로 어근이 약간 변한다. 핀란드어의 격어미는 한국어의 조사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근과 어미의 경계가 언제나 뚜렷하지는 않아서 라틴어처럼 격변화 형태를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핀란드어는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와 라틴어와 같은 굴절어의 중간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랄 어족
오늘날 유럽에서 쓰이는 언어는 대부분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터키어, 타타르어를 비롯한 튀르크 제어와 바스크 지방에서 쓰이는 바스크어, 캅카스 산맥 근처에서 쓰이는 여러 소수 언어를 제외하면 유럽의 나머지 비인도·유럽어는 우랄어족에 속한다. 오늘날 국가공용어로 쓰이는 핀란드어와 에스토니아어, 헝가리어가 우랄어족에 포함된다. 핀란드만을 사이에 둔 이웃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는 언어도 비슷해서 친근 관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어로 1, 2, 3, 4, 5는 yksi '윅시', kaksi '칵시', kolme '콜메', neljä '넬리애', viisi '비시'인데 에스토니아어로는 üks '윅스', kaks '칵스', kolm '콜름', neli '넬리', viis '비스'이다. 서로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비슷한 것은 아니지만 독일어와 네덜란드어의 차이처럼 조금만 훈련하면 쉽게 배울 수 있는 정도이며 냉전 시대에는 에스토니아에서 핀란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핀란드어를 배워서 에스토니아어 화자 가운데는 핀란드어를 알아듣는 이가 많다.그런데 헝가리어는 겉으로는 핀란드어와 에스토니아어와 별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헝가리어로 1, 2, 3, 4, 5는 egy '에지', kettő/két '케퇴/케트', három '하롬', négy '네지', öt '외트'이다. 하지만 언어학자들은 헝가리어도 핀란드어와 에스토니아어와 친족 관계라는 것을 밝혀냈다. 1을 뜻하는 헝가리어 egy는 핀란드어 yksi나 에스토니아어 üks와는 어원이 다르지만 적어도 2, 3, 4, 5를 뜻하는 말은 세 언어 모두 뿌리가 같다. 어떻게 viisi/viis가 öt와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헝가리어와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만 남아있다면 이들의 친족 관계는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쓰이는 여러 소수 언어를 통해 그 연결 고리를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리어로는 5를 вич vič '비치'라고 하며 코미어로는 вит vit '비트', 한티어로는 вет wet '웨트'라고 하니 viisi/viis와 öt 사이에 보이는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우랄 제어 수사 비교
2 | 3 | 4 | 5 | |
---|---|---|---|---|
핀란드어 | kaksi '칵시' | kolme '콜메' | neljä '넬리애' | viisi '비시' |
에스토니아어 | kaks '칵스' | kolm '콜름' | neli '넬리' | viis '비스' |
마리어 | кок kok '코크' | кум kum '쿰' | ныл nəl '널' | вич vič '비치' |
코미어 | кык kyk '키크' | куим kuim '쿠임' | нёль njol’ '뇰' | вит vit '비트' |
한티어 | кӑт kăt '카트' | хәԓум xəḷum '헐룸' | нил nil '닐' | вет wet '웨트' |
헝가리어 | kettő/két '케퇴/케트' | három '하롬' | négy '네지' | öt '외트' |

우랄어족 분포도(Wikimedia: Nug/Chumwa, CC BY-SA 3.0)
핀란드어와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핀란드어는 우랄어족에 속한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알타이어족이 단일 계통이라는 그전까지의 학설에 의문이 제기되어 오늘날 언어학계에서는 알타이어족을 더이상 확립된 어족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어파로 취급되었던 것들이 어족으로 승격되어 튀르크어족·몽골어족·퉁구스어족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알타이 가설마저 지지를 잃은 오늘날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이 친족 관계라는 우랄·알타이 가설은 언어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었다. 그러니 핀란드어와 한국어는 친족 관계가 아니다.
마티아스 카스트렌
알타이어족이라는 용어와 우랄·알타이 가설은 핀란드의 언어학자 마티아스 카스트렌(Matthias Castrén, 1813년~1852년)이 도입했다. 카스트렌은 알타이어족에 튀르크 제어와 몽골 제어, 퉁구스 제어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기준으로는 우랄어족에 포함되는 핀·우그리아 제어와 사모예드 제어도 포함시켰다.
마티아스 카스트렌
카스트렌은 헬싱키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목적으로 고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배우다가 핀란드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핀란드어의 뿌리를 찾아 아직 문자가 없는 여러 종족의 언어를 기록하고 연구하기 위해 라플란드와 카렐리아, 시베리아를 돌아다녔다. 1841년에는 핀란드의 언어학자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önnrot, 1802년~1884년)와 함께 언어 연구를 위해 우랄 산맥 너머까지 답사를 떠났다. 뢴로트는 주로 카렐리아 지역에서 수집한 시를 바탕으로 핀란드의 국민 서사시라고 불리는 《칼레발라(Kalevala)》를 편찬한 장본인으로 카스트렌은 뢴로트와 같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칼레발라》를 핀란드어에서 스웨덴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카스트렌은 단순한 유형 비교를 떠나 어휘와 어형 비교를 통해 핀·우그리아 제어와 사모예드 제어, 튀르크 제어, 몽골 제어, 퉁구스 제어(만주·퉁구스어)를 묶어 알타이어족이라고 불렀다. 20세기 초에 핀·우그리아 제어와 사모예드 제어를 묶어 우랄어족으로 부르게 되면서 카스트렌이 말한 알타이어족은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스타프 욘 람스테트
핀란드의 언어학자 구스타프 욘 람스테트(Gustaf John Ramstedt, 1873년~1950년)는 학부 시절에 알타이어족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아시아 전역을 누비며 몽골어, 칼미크어, 타타르어 등을 연구했다. 핀란드가 독립한 뒤 1919년부터 1929년까지 일본에 초대 핀란드 공사로 파견되어 일본어를 배웠으며 1924년부터는 수애 유진걸(水涯 柳震杰, 1918년~1950년 납북) 선생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이후에 그는 한국어 연구에 전념하여 1928년에는 〈한국어에 관한 관견(Remarks on the Korean Language)〉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1939년에는 《한국어 문법(A Korean Grammar)》을, 1949년에는 《한국어 어원 연구(Studies in Korean Etymology)》를 펴냈다. 당시 영어로 된 거의 유일한 한국어 문법서였던 《한국어 문법》은 6·25 전쟁 때 유엔군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활용하기도 했다.
구스타프 욘 람스테트
람스테트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거나 적어도 친족 관계라는 것을 밝히려 노력했다. 다른 학자들은 일본어도 알타이어족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람스테트는 일본어가 그다지 알타이어족과 가까운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한국어 어원 연구》에서는 한국어와 몽골어, 만주어, 튀르크어 어휘를 비교하며 알타이어 비교 언어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유럽 학자로는 최초로 한국어의 계통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람스테트의 연구는 국어학자 이숭녕(李崇寧, 1908년~1994년)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어 국내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정설로 굳게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동안 교과서에도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알려졌던 것은 북유럽의 소국 핀란드가 배출한 두 거인 카스트렌과 람스테트의 연구 때문인 것이다.
우랄·알타이 가설의 몰락
이른바 우랄·알타이 언어 사이에 유형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왔다. 대체로 접미사 위주의 굴절어이며 모음조화 현상을 보인다. 어순은 대개 주어-목적어-동사(SOV)를 따른다. 문법성(文法性)이 없으며 영어 have에 해당되는 동사가 따로 없다.하지만 표면적 유사성만으로는 친족 관계를 밝힐 수 없다.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유형적인 유사성이나 외견상 비슷한 낱말을 제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규칙적인 음운 대응을 찾아내어 두 언어의 공통 조어를 재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비교언어학의 기초가 되는 비교방법(comparative method)이다.
카스트렌과 람스테트는 이처럼 비교방법을 사용하여 우랄·알타이 가설과 알타이어·한국어 동계설을 증명하려고 했다. 뒤를 이은 언어학자들도 이들처럼 알타이 제어를 비교하며 공통 조어를 재구하려 노력했고 뿌리가 같은 낱말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른바 알타이 제어 사이에는 기초 어휘마저 심하게 차이가 나서 좀처럼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국어학자들도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지만 람스테트가 연구한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하는 여러 언어의 분포도;
튀르크어족, 몽골어족, 퉁구스어족, 일본어족, 한국어족, 아이누어족
(Wikimedia: Fobos92, CC BY-SA 3.0)1960년대부터 언어학자들은 기존의 연구 결과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알타이 가설과 알타이어·한국어 동계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알타이 제어에서 동근어로 제시되었던 것은 차용어 또는 우연히 표면적으로 비슷한 낱말이며 같은 계통이라는 주장은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람스테트의 《한국어 어원 연구》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한자어를 고유어로 잘못 안 것과 같은 기초적인 오류가 발견되었다. 스웨덴의 한국어학자 스타판 로센(Staffan Rosén, 1944년생)은 1979년 람스테트와 그의 제자인 러시아의 알타이어학자 니콜라이(혹은 니콜라스) 포페(Николай/Николас Поппе Nicholas Poppe, 1897년~1991년)가 제시한 한국어 어원 82개 가운데 21개만이 한국어 정보가 오류가 없었고 40여 개는 어형이나 뜻풀이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계속된 논란 끝에 주요 언어학자들이 알타이 가설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언어학계에서 알타이어족은 입증되지 않은 가설로 취급된다. 핀란드 알타이어학자 유하 얀후넨(Juha Janhunen, 1952년생)은 대표적인 알타이 가설 비판론자이다. 그는 알타이 제어의 유형적 유사성은 유라시아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설명한다. 실제 지리적으로 인접한 계통이 다른 언어 사이에 공통된 특징이 나타나는 현상은 폭넓게 관찰된다. 알타이어족을 부정하는 알타이어학자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같은 계통이 아니더라도 수 천 년 동안 서로 이웃하면서 많은 특징을 공유하게 된 여러 언어를 같이 연구한다는 것이다. 얀후넨은 튀르크어와 몽골어,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의 조상이 모두 오래 전 만주 남부와 한반도 북부 어딘가에서 쓰였던 서로 이웃하는 언어였고 후에 각기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직도 알타이 가설이 사실인지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알타이어족이 다른 어족에 비해 동근 어휘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차용어가 아닌 실제 동근어 목록을 작성하려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랄어족까지 끌어들여 우랄·알타이어족이 성립한다는 주장은 주류 언어학계에서 아예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핀란드에서 알타이 제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랄·알타이어학의 종주국
근대 국민 국가로서의 핀란드 정체성이 형성된 데는 다른 유럽 언어와는 전혀 다른 핀란드어가 큰 기여를 했다. 핀란드는 오랫동안 유럽의 변방이었다. 그러다가 13세기 이후 스웨덴의 지배를 통해 비로소 기독교와 문자를 전해받았다. 오랫동안 스웨덴어가 지배층이 쓰는 고급 언어였으며 문자 언어로서는 스웨덴어와 함게 라틴어가 쓰였다. 19세기에 활약한 카스트렌도 우랄어에 대한 연구를 라틴어로 저술할 정도였다. 요즘도 핀란드에서는 라틴어로 뉴스를 정기적으로 들려주는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유하 얀후넨(Juha Janhunen)을 빼고 여기서 언급한 핀란드인, 즉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Pehr Evind Svinhufvud), 마티아스 카스트렌(Matthias Castrén),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önnrot), 구스타프 욘 람스테트(Gustaf John Ramstedt)는 모두 이름이 핀란드어식이 아닌 스웨덴어식이다. 오늘날에도 핀란드 인구 5% 정도가 스웨덴어를 모어로 쓰며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둘 다 공용어로 쓰인다.
19세기에 핀란드 지식인들은 낭만주의와 국민주의 사조의 영향으로 그때까지 하찮은 농민 언어로 여겨지던 핀란드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스웨덴어를 모어로 쓰는 지배 계층에서 나왔지만 핀란드어를 배우고 핀란드어를 집 안팎에서 사용하려 노력했다. 많은 이들은 이름을 핀란드어식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핀란드어는 스웨덴어와 동등한 공용어 지위를 얻었다.
핀란드어를 배운 이들에게는 핀란드어가 인도·유럽어족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스웨덴어와 전혀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그래서 핀란드어의 뿌리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이웃하는 러시아 제국 곳곳에서 핀란드어와 비슷한 언어가 쓰인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들을 연구하기 위해 카스트렌 같은 이들이 나선 것이다. 핀란드어가 단지 핀란드 대공국에서 쓰이는 초라한 언어가 아니라 유라시아에 널리 퍼진 어족에 속한다는 것은 매혹적인 발견이었을 것이다.

헬싱키 대학 주 건물
오늘날 한국어와 핀란드어가 같은 계통이라는 가설은 우랄·알타이 가설과 함께 폐기되었지만 이런 유산으로 인해 핀란드는 우랄어학과 알타이어학의 종주국으로 남아있다. 람스테트는 헬싱키 대학에서 1917년 최초로 '알타이어학' 수석교수가 되었고 1933년에는 최초로 한국어 과목을 개설하였다. 중앙아시아 한인을 연구한 고 고송무(1947년~1993년) 교수는 헬싱키 대학에서 우랄어를 전공한 후 한국학부를 맡기도 했다. 핀란드어와 한국어는 친족 관계가 아니라도 이처럼 깊은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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