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소리' 페이스북 페이지와 영어판 누리집 kkeutsori.com을 새로 개장했습니다.

앞으로 세계의 말과 글에 대한 이야기거리를 좀 더 다양하게 나눌 수 있도록 '끝소리'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언어권 사람들도 읽을 있도록 영어판 누리집 kkeutsori.com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끝소리'에서는 블로그에 새로 글을 올리면 링크하는 것은 물론 블로그에 싣기에는 조금 짧은 글이나 링크도 가끔 남길 생각입니다. 또 소셜미디어인만큼 언어에 대한 다양한 내용으로 여러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블로그 관리는 매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외국어의 한글 표기가 궁금하시면 페이스북 페이지로 연락하시는 것이 답장이 빠를 겁니다.

영어판 누리집은 이곳에 쓴 블로그 글의 영어판도 올리고 영어로 된 다른 자료들도 올릴 생각입니다. 특히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영어로 번역해서 올려놓았습니다(Loanword Transcription Rules 참조). 아마도 외래어 표기법을 전부 번역하여 영어로 소개하는 것은 사상 최초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kkeutsori.com에는 이미 최근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 가운데 일곱 개를 영어로 번역해서 올렸습니다.
앞으로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브라이드고래/브뤼데고래', '밍크고래/밍케고래' 표기 용례

수염고래아목에 속하는 고래 가운데 비교적 몸집이 작아 길이가 보통 15미터를 넘지 않고 영어로 Bryde's whale이라고 부르는 고래가 있다. 예전에는 한 종으로 쳤으나 실제로는 시탕고래(Sittang whale, Sittang은 미얀마의 시타웅 စစ်တောင်း Sittaung 강의 옛 영어 이름) 또는 이든고래(Eden's whale, 영국령 버마 주재 고등판무관 애슐리 이든 Ashley Eden의 이름을 땀)로 알려진 Balaenoptera edeni와 상대적으로 몸집이 크고 먼 바다에서 서식하는 Balaenoptera brydei가 다른 종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Balaenoptera brydei (Wikimedia: Morningdew, CC BY-SA 3.0)

이 고래는 위도 40도까지의 열대 및 온대 해양에 분포되어 있는데 한반도 근해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보리고래(영어명: sei whale, 학명: Balaenoptera borealis) 등 생김새가 비슷한 고래와 쉽게 헷갈리므로 한국어 고유 일반 명칭이 따로 없고 그냥 Bryde's whale을 번역해서 쓴다. 이 고래의 일반명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생물학 관련 서적과 백과사전류에 실린 경우에는 모두 '브라이드고래' 또는 '부라이드고래'로 쓰고 있다(손호선·안두해·김두남 〈한반도 근해 고래류의 한국어 일반명에 대한 고찰〉). 즉 Bryde를 영어식으로 [ˈbɹaɪ̯d] '브라이드'라고 발음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기한 것이다. '부라이드'라는 표기는 국어에서 양순음 'ㅂ', 'ㅍ', 'ㅁ' 뒤의 '으'와 '우'를 잘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것인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런 경우의 삽입 모음은 '으'로 통일하니 '부-'보다는 '브-'로 써야 한다.

그런데 Bryde's whale에 관한 영어 자료를 찾으면 대부분 먼저 그 발음에 대해서 얘기한다. 실제로는 Bryde의 영어 발음이 철자에서 쉽게 연상되는 [ˈbɹaɪ̯d] '브라이드'가 아니라 [ˈbɹuːd.ə] '브루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음을 틀리지 말라고 발음을 소개하는 것인데 영어 철자로는 발음을 제대로 표현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Bryde's를 'broodas', 'brooders', 'BROO-dus', 'broo-dess'로 쓰거나 Bryde를 'BREW-də'로 쓰는 등 제각각이지만 이들 모두가 나타내고자 하는 Bryde의 영어 발음은 [ˈbɹuːd.ə] '브루더'이다.

이처럼 특이한 발음이 쓰이는 것은 노르웨이의 포경업자 요한 브뤼데(Johan Bryde, 1858년~1925년)를 딴 이름이기 때문이다. 브뤼데는 영국령 나탈 식민지(오늘날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부)에 현지 최초의 포경 기지를 세웠다. 노르웨이어 인명 Bryde는 [²bryːdə] '브뤼데'로 발음된다(발음 기호의 ²는 고저 악센트 가운데 제2성이란 것을 나타낸다). 영어에는 없는 노르웨이어 모음 /yː/ '위'는 영어에서 /iː/ '이' 또는 /uː/ '우' 가운데 하나로 흉내낼 수 있지만 Bryde에서는 후자가 쓰이게 되었다.

물론 영어에서 쓰는 Bryde의 발음은 노르웨이어를 영어식으로 불완전하게 흉내낸 것이기 때문에 한글 표기의 기준으로 삼기는 어색하다. 노르웨이어 이름으로 보고 외래어 표기법의 노르웨이어 표기 규정에 따르려면 Bryde [²bryːdə]는 '브뤼데'로 적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어 화자들은 '위'를 이중모음 /wi/ [ɥi]로 발음하지만 아직 표준 발음은 단모음 /y/를 기본 발음으로 삼고 이중모음으로 발음하는 것도 허용하는 것으로 치기 때문에 외국어의 /y/는 외래어 표기법에서 '위'로 적는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게르만어의 무강세 중설 중모음 [ə]는 영어와 네덜란드어를 제외하고는 철자 e에 해당하면 '에'로 통일해서 적는다. 그래서 영어 [ˈbɹuːd.ə]는 '브루더'이지만 노르웨이어 [²bryːdə]는 '브뤼데'이다.

다른 언어에서는 어떻게 부를까? 노르웨이어로는 Brydehval [²bryːdəvɑːl] '브뤼데발' 또는 Brydekval [²bryːdəkvɑːl] '브뤼데크발'이라고 한다. 노르웨이어 hval [ˈvɑːl, ²vɑːl] '발' 또는 kval [ˈkvɑːl, ²kvɑːl] '크발'은 '고래'를 뜻한다. 노르웨이어는 특이하게 보크몰(bokmål)과 뉘노르스크(nynorsk)라는 두 가지 표준이 있는데 보통 보크몰에서는 hval '발', 뉘노르스크에서는 kval '크발'이 선호되는 듯하지만 두 표준 모두 hval '발'과 kval '크발' 두 형태를 인정한다. 덴마크어 Brydeshval '브뤼데스발', 스웨덴어 Brydes fenval '브뤼데스 펜발' 등 같은 북게르만어군 언어에서도 물론 Bryde의 발음을 원어에 가깝게 한다.

독일어로는 Brydewal인데 독일어판 위키백과에서는 [ˈbryː.də.ˌvaːl] '브뤼데발'이라고 친절하게 발음 소개까지 한다.

로마자를 쓰는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발음에 상관없이 Bryde라는 글자를 그대로 쓰지만 개중에는 발음에 따라 고유 명사의 철자도 바꾸어 쓰는 언어가 있다.

세계 고래류 데이터베이스(World Cetacea Database)에 따르면 리투아니아어에서는 Braido nykštukinis ruožuotis라고 부르는 반면 슬로베니아어에서는 Bridov kit라고 부른다. 즉 리투아니아어에서는 Bryde의 발음을 '브라이드'로 보았지만 슬로베니아어에서는 '브뤼ㄷ-'로 시작한다고 본 것이다(-ov는 격어미이다). 표준 슬로베니아어에는 /y/ '위' 음이 없기 때문에 이를 /i/ '이'로 흉내낸다. 예를 들어 '앞치마'를 뜻하는 šircl '시르츨'은 독일어의 Schürze '쉬르체'에서 온 차용어이다.

아예 다른 문자를 쓰는 언어들을 보면 러시아어에서는 полосатик брайда polosatik brayda, 우크라이나어에서는 Смугастик Брайда Smuhastyk Braida라고 부른다. 즉 Bryde의 발음을 '브라이드'로 본 것이다. 다만 여기서 예로 든 이들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물음표 표시가 되어있다.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다국어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서 표제어로 쓰는 이름을 보면 아제르바이잔어에서는 Brayde zolaqlı balina라고 부르며 카자흐어에서는 Брайд киті Brayd kïti로 쓴다. 그런데 불가리아어로는 Ивичест кит на Брюде Ivichest kit na Bryude로 쓴다. 즉 Bryde의 노르웨이어 발음을 기준으로 '브류데'라고 흉내낸 것이다. 불가리아어에도 /y/ '위' 음이 없는데 이를 /ju/ '유'로 흉내낸다(자음 뒤에서는 /j/가 따로 서는 반모음이 아니라 앞의 자음을 연자음으로 만드는 것으로 실현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vik.tɔʁ y.ɡo])는 불가리아어로 Виктор Юго Viktor Yugo '빅토르 유고'라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한 것을 보면 슬로베니아어와 불가리아어에서는 Bryde의 발음을 제대로 알고 쓴데 비해 러시아어, 리투아니아어, 우크라이나어, 아제르바이잔어, 카자흐어 등에서는 모두 철자에서 잘못 짐작한 발음인 '브라이드'를 쓰고 있다. 재미있게도 '브라이드'로 쓰는 언어들은 모두 구소련에 속했던 나라에서 쓰이는 것으로 러시아어에서 쓴 이름을 그대로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어의 영향 때문에 러시아어 하나에서 틀리게 쓰면 다른 언어에서도 그대로 따라 써서 파급력이 큰 것이다.

물론 아무나 편집할 수 있는 위키백과의 성격상 각 언어의 표준 용법을 제대로 나타낸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Bryde의 영어 발음을 '브라이드'로 잘못 짐작하는 것은 한국어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한국어에서 '브라이드고래'로 쓰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이다.

원칙적으로는 '브뤼데고래'로 쓰는 것이 맞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다들 '브라이드고래'로 쓰고 있다면 굳이 고칠 필요가 있을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 가운데 '브라이드고래'에 대해서 들어본 이가 몇이나 될까?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브라이드고래'가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널리 쓰이는 이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위에서 인용한 〈한반도 근해 고래류의 한국어 일반명에 대한 고찰〉을 보면 가장 큰 고래 종인 Balaenoptera musculus (영어명: blue whale)를 '대왕고래', '왕고래', '흰긴수염고래', '흰수염고래' 등으로 부르는 것에서 보듯이 잘 알려진 대형 고래의 한국어 일반명도 상당한 이견이 많은 상황이니 '브라이드고래'로 쓰던 것을 '브뤼데고래'로 바꾼다고 해서 생기는 혼란은 상대적으로 미미할 것이다.

현재 '브라이드고래'로 쓰는 것은 '브라이드'가 Bryde의 올바른 표기인줄로 알고 쓰는 것이지 Bryde의 원 발음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쓰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Bryde는 원래의 노르웨이어 발음에 따라 적으면 '브뤼데'이며 영어에서도 '브라이드'가 아니라 '브루더' 비슷하게 발음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사람들이 '브라이드고래'를 고집할지는 미지수이다. '브뤼데고래'는 일반인이 Bryde라는 철자에서 쉽게 연상시킬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 대신 '브라이드고래'보다는 한 글자가 더 적다는 장점이 있다. 고래의 일반명으로서 예전처럼 '브라이드고래'를 계속 쓸지, '브뤼데고래'로 고쳐 쓸지는 결국 전문가들 및 일반 언중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일단 문제 제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여기서는 앞으로 '브뤼데고래'로 부르자고 과감히 주장해본다.

물론 더 널리 알려진 고래 이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 동해안을 포함한 전세계 해양에 분포한 밍크고래가 대표적인 예이다. 밍크고래는 길이가 보통 10미터를 넘지 않아 브뤼데고래보다도 작다. 영어에서 minke whale이라고 부르는 고래는 Balaenoptera acutorostrata와 Balaenoptera bonaerensis 두 종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가운데 동해안에서도 서식하는 북방 종인 Balaenoptera acutorostrata를 '쇠정어리고래'라고 부르며 '밍크고래'를 '쇠정어리고래'의 다른 이름으로 취급한다. '쇠정어리고래'는 일본어에서 쓰는 이름 가운데 하나인 小鰮鯨 (コイワシクジラ) koiwashi kujira를 번역한 것인데 최근에는 아무래도 영어 이름의 영향인지 대부분 '밍크고래'로 쓰는 추세이다. 일본어에서도 요즘에는 영어 이름을 따라 ミンククジラ minku kujira로 쓴다.

Balaenoptera acutorostrata (Wikimedia: NOAA United States, Public Domain)


그런데 영어에서 minke는 [ˈmɪŋk.i, -ə] '밍키/밍커'로, 즉 두 음절로 발음된다. 영어의 게르만어계 차용어에서 원어 발음이 [kə]인 -ke는 영어에서 [ki]가 되기도 하고 [kə]가 되기도 하는데 전자가 더 영어식이다(예: Bernanke [bəɹ.ˈnæŋk.i] '버냉키'). 그래서 minke도 영어에서 '밍커'보다는 '밍키'로 더 많이 발음되며 사전에 따라 '밍키'라는 발음 하나만 제시하기도 한다.

영어명 minke whale의 어원은 노르웨이어 minkehval '밍케발'을 번역한 것이라는 것 외에는 확실하지 않다. minkehval [²miŋkəvɑːl] '밍케발'과 minkekval [²miŋkəkvɑːl] '밍케크발'이 노르웨이어 단어가 맞기는 하지만(출처) 잘 쓰이지 않고 정작 노르웨이어에서 많이 쓰는 이름은 vågehval [²vɔːɡəvɑːl] '보게발' 또는 vågekval [²vɔːɡəkvɑːl] '보게크발'이다. 작은 만(灣)을 뜻하는 단어 våg [ˈvɔːɡ] '보그'에서 왔다.

영국의 작가 프랜시스 다운스 오머니(F. D. Ommanney [ˈɒm.ən.i])가 쓴 포경에 대한 고전 《잃어버린 리바이어던(Lost Leviathan, 1971년)》에는 Meincke라는 노르웨이 포경업자가 이 고래를 대왕고래로 잘못 알고 쐈기 때문에 노르웨이어에서 그의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즉 Minke는 Meincke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어쨌든 영어에서는 늦어도 1931년에 Minke Whale이란 이름이 문헌에 등장한다.

Meincke는 Meine라는 이름에 지소형 접사 -ke가 붙은 저지 독일어식 이름이다. 저지 독일어는 독일 북부에서 쓰이며 역사적으로 한자 동맹 시대에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런 역사도 있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우니 노르웨이 사람이 저지 독일어식 성을 쓴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한편 같은 이름이 프리지아어식으로는 Minke가 된다. 프리지아어는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 주와 독일·덴마크 일부에서 쓰는 세 개의 언어(또는 방언)를 통틀어 이른다. 네덜란드에서는 Minke [ˈmɪŋkə] '밍커'라는 이름을 특히 여자 이름으로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진위를 알 수 없는 Meincke라는 노르웨이 포경업자 이야기 외에는 인명 Meincke/Minke와 고래 이름을 연관지을만한 고리를 찾기 힘들다. Meincke는 저지 독일어 이름으로 보면 '마인케'로 적는 것이 낫고 노르웨이어 이름으로 보면 '메인케'로 적는 것이 낫다.

또 노르웨이어 minkehval에서 온 것은 맞는데 minke는 사람 이름에서 온 것이 아니라 '더 작은(lesser)'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콜린스 영어 사전(Collins English Dictionary)》에 "probably from Norwegian minkehval, from minke lesser + hval whale (아마도 minke '더 작은' + hval '고래'에서 온 노르웨이어 minkehval에서)"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노르웨이어로 minke [²miŋkə] '밍케'는 '작아지다'라는 뜻의 동사 기본형(현재형 minker, 과거형·과거분사 minket, 현재분사 minkende, 명령형 mink)이고 형용사 '더 작은'은 mindre [ˈmindrə] '민드레'이다. 이를테면 고양이아과를 '더 작은 고양이류'를 뜻하는 mindre kattedyr '민드레 카테뒤르'로 부르고 표범아과를 '큰 고양이류'를 뜻하는 store kattedyr '스토레 카테뒤르'라고 부른다. '작아지다'라는 동사 기본형인 minke가 고래 이름으로 쓰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지만 의미상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 밍크고래를 영어로 '더 작은 수염고래'라는 뜻으로 lesser rorqual [ˈlɛs.əɹ ˈɹɔːɹk.wəl] '레서 로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쨌든 minke는 노르웨이어 발음에 따라 적으면 '밍케', 영어 발음에 따라 적으면 '밍키/밍커'이다. 노르웨이어가 원어이니 '밍케고래'로 적는 것이 나았을 것인데 Bryde를 '브라이드'로 옮긴 경우처럼 minke의 영어 발음을 철자만 보고 족제비와 비슷한 동물인 밍크(mink)와 동일한 한 음절 [ˈmɪŋk] '밍크'라고 잘못 알아서 이런 표기로 굳어진 것 같다. 〈한반도 근해 고래류의 한국어 일반명에 대한 고찰〉에 인용된 1962년 자료에는 '밍꾸'라는 표기로 나오는데 아마 일본어 ミンク minku를 일본어 발음에 따라 받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한다. 참고로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민쿠'이다. 그러니 애초에는 영어 발음이 [ˈmɪŋk] '밍크'라고 생각해서 일본어에서 ミンク minku라고 부른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일 수 있겠다.

이처럼 '밍크고래'는 minke의 노르웨이어 발음이나 영어 발음에 따른 표기와 다르지만 Bryde라는 인명에서 나온 Bryde's whale에 비해 어원이 불확실하며 동해안에서 혼획 내지 불법 포획되기도 하는 등 인지도가 높고 이미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으니 관용으로 굳어진 이름으로 취급하는 것이 좋겠다. 족제비와 비슷한 동물인 밍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동물인데 혼란을 줄 수 있다거나 한글 표기 때문에 영어 발음을 잘못 알 수 있다고 '밍크고래'라고 계속 쓰는데 반대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게 이름을 바꿀 충분한 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서 어디까지 원칙을 따르고 어디까지 관용을 존중할지는 명확한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브라이드고래'는 '브뤼데고래'로 고쳐 부르되 '밍크고래'는 '밍케고래'로 고칠 필요가 없다는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는 이도 많을 것이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

고대 영어로 읽는 〈루돌프 사슴 코〉?!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하겠지"

빨갛게 빛나는 코 때문에 다른 사슴(정확히는 순록)들에게 놀림을 받다가 산타클로스의 부탁으로 성탄절 이브에 썰매를 이끌게 된 후 사랑을 받게 된다는 루돌프의 이야기는 1939년 미국의 로버트 메이(Robert L. May)가 쓴 책자에 처음 등장한다.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라는 시카고의 한 유통 업체에서 성탄절마다 판촉을 위해 책자를 무료로 배포하고는 했는데 돈을 절약하려고 외부 책자를 사들이는 대신 메이에게 써달라고 해서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 (《빨간 코 순록 루돌프》)가 탄생한 것이다.

1949년에는 메이의 매부이자 작곡가로 이미 활동을 하고 있던 조니 마크스(Johnny Marks)가 루돌프 이야기를 소재를 노래를 지었고 이를 가수 진 오트리(Gene Autry)가 불러 첫 성탄절 시즌에만 175만 장 정도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루돌프 사슴 코〉는 이를 번안한 곡으로 원래의 영어 제목은 책자 제목과 같이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 (〈빨간 코 순록 루돌프〉)이다.

1890년~1900년경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에서 순록이 이끄는 썰매를 타는 모습을 포토크롬(Photochrom) 인쇄술로 표현한 채색 사진(Wikimedia, Public Domain)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하늘을 나는 순록이 이끈다는 설정은 1821년에 나온 동시에 처음 등장했고 1823년에는 "A Visit from St. Nicholas" (〈성 니콜라우스의 방문〉)이라는 시에 순록 여덟 마리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은 대셔(Dasher), 댄서(Dancer), 프랜서(Prancer), 빅슨(Vixen), 코밋(Comet), 큐피드(Cupid), 던더(Dunder), 블릭섬(Blixem)이다. 네덜란드어로 '천둥'을 뜻하는 말에서 온 Dunder는 현대 네덜란드어 형태인 Donder나 독일어 형태인 Donner로 쓰기도 하고 네덜란드어로 '번개'를 뜻하는 말(현대 네덜란드어 철자는 Bliksem)에서 온 Blixem은 Blixen으로 쓰기도 하고 독일어 형태인 Blitzen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니 루돌프는 다른 순록들이 처음 나타난지 백 년도 더 지나고서 뒤늦게 산타클로스와 순록 전설에 합류한 것이다. 그러고도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순록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루돌프 이야기가 앵글로색슨어, 즉 고대 영어(대략 5세기~11세기)로 쓰여진 시에 나온다면? 일단 시를 고대 영어로 감상하자. Incipit로 시작하는 첫 줄은 라틴어로 되어 있다. 고대 영어에는 Ð/ð (eth)와 Þ/þ (thorn)라는 글자가 현대 영어에서 th로 나타내는 유성 치 마찰음 [ð]와 무성 치 마찰음 [θ]를 나타냈는데 어느 글자를 유성음에 쓰고 어느 글자를 무성음에 쓰는지는 별다른 규칙이 없었다.

Incipit gestis Rudolphi rangifer tarandus

Hwæt, Hrodulf readnosa hrandeor—
Næfde þæt nieten unsciende næsðyrlas!
Glitenode and gladode godlice nosgrisele.
Ða hofberendas mid huscwordum hine gehefigodon;
Nolden þa geneatas Hrodulf næftig
To gomene hraniscum geador ætsomne.
Þa in Cristesmæsseæfne stormigum clommum,
Halga Claus þæt gemunde to him maðelode:
"Neahfreond nihteage nosubeorhtende!
Min hroden hrædwæn gelæd ðu, Hrodulf!"
Ða gelufodon hira laddeor þa lyftflogan—
Wæs glædnes and gliwdream; hornede sum gegieddode
"Hwæt, Hrodulf readnosa hrandeor,
Brad springð þin blæd: breme eart þu!"

같이 소개되는 현대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Here begins the deeds of Rudolph, Tundra-Wanderer

Lo, Hrodulf the red-nosed reindeer—
That beast didn’t have unshiny nostrils!
The goodly nose-cartilage glittered and glowed.
The hoof-bearers taunted him with proud words;
The comrades wouldn’t allow wretched Hrodulf
To join the reindeer games.
Then, on Christmas Eve bound in storms
Santa Claus remembered that, spoke formally to him:
"Dear night-sighted friend, nose-bright one!
You, Hrodulf, shall lead my adorned rapid-wagon!"
Then the sky-flyers praised their lead-deer—
There was gladness and music; one of the horned ones sang
"Lo, Hrodulf the red-nosed reindeer,
Your fame spreads broadly, you are renowned!"


이를 비슷한 풍으로 한국어로 옮겨보았다.

툰드라의 방랑자 루돌푸스의 업적 이야기를 시작하노라

들으라,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
그 짐승은 콧구멍이 흐리지 않더라!
좋은 코 연골이 반짝이고 빛을 냈더라.
굽을 가진 자들이 그를 오만한 말로 조롱하며
그 동료들은 비참한 흐로둘프가
순록의 놀이에 같이하게 허락하지 않았더라.
후에 폭풍에 묶인 성탄절 전야에
성 클라우스가 이를 기억하고 그에게 가로되:
"밤눈이 밝은 친구여, 밝은 코를 가진 이여!
너 흐로둘프가 나의 날랜 수레를 이끄리라!"
그 후에 하늘을 나는 이들이 그들의 우두머리 사슴을 칭송하니
기쁨과 음악이 있더라; 뿔이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노래하더라
"들으라,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
네 명성은 널리 퍼지며 너는 유명한지라!"

물론 루돌프 이야기에 진짜 고대 영어 원전이 있는 것은 아니고 1996년에 미국의 필립 채프먼벨(Philip Chapman-Bell)이 루돌프 노래를 고대 영어로 쓴 패러디(Hrodulf Harndeor: An Old English Poem by Philip Chapman-Bell)이다. 여기에 보존된 그의 옛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로 치면 루돌프 노래를 《용비어천가》 풍의 중세 국어로 쓴 셈이겠다.

고대 영어 문학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영어권에서는 대표작인 영웅 서사시 《베오울프(Beowulf)》를 학교에서 배우는 일이 흔하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영어는 오늘날의 영어 화자들이 따로 공부하지 않고는 거의 해독이 불가능할만큼 현대 영어와 다르다. 4백 년 전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영어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천 년 전의 고대 영어는 아예 외국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066년 노르망디 공이었던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프랑스어로는 Guillaume le Conquérant '정복왕 기욤')이 이끄는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잉글랜드가 노르만어(프랑스어와 가까운 노르만족의 언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이들에게 지배를 받는 단절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15세기에야 다시 영어가 프랑스어 대신 공문서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영어권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한 《베오울프》의 첫 문장은 아마도 고대 영어로 된 문장 가운데 가장 유명할 것이다.
Hwæt. We Gar-Dena in gear-dagum, þeod-cyninga, þrym gefrunon, hu ða æþelingas ellen fremedon.
Lo! We have heard of the glory of the kings of the people of the Spear-Danes in days of yore—how those princes did valorous deeds! (존 R. 클라크 홀(John R. Clark Hall) 번역)
들으라! 우리는 지난날에 창의 덴마크인들과 그들의 왕들의 큰 영예, 그 왕자(또는 귀족)들이 이룬 용맹스러운 업적에 대해 들어왔다.

대영 도서관 소장 《베오울프》 필사본 코튼 MS 비텔리우스 A XV (Cotton MS Vitellius A XV)의 첫 장. w 대신에 옛 글자인 Ƿ/ƿ (wynn)을 썼다(Wikimedia, Public Domain).

고대 영어의 hwæt는 현대 영어 what의 어원이며 원 뜻도 what처럼 '무엇'인데 전통적으로 《베오울프》의 첫 문장에서는 보통 듣는 이(원래 구전되는 시였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감탄사로 간주되어 현대 영어로 "Lo!" 외에도 "Hear me!", "Listen!" 등으로 번역되었다. 2000년 아일랜드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의 번역에서는 "So!"로 옮긴다. 이 hwæt가 어찌나 유명한 단어인지 위 패러디에서도 두 번이나 등장한다.

그런데 최근 케임브리지 대학의 조지 워크던(George Walkden) 교수는 고대 영어 문헌에 쓰이는 hwæt를 조사한 끝에 단독으로는 쓰이는 감탄사가 아니라 감탄문의 첫 단어로 쓰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The status of hwæt in Old English", 2011). 이 결론이 맞다면 지금까지 《베오울프》의 첫 문장은 오역되었던 것이다. "Lo! We have heard"가 아니라 "How we have heard"인 것이다. 감탄문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면 "아, 우리는 지난날에 창의 덴마크인들과 그들의 왕들의 큰 영예, 그 왕족들이 이룬 용맹스러운 업적에 대해 들어왔다!" 정도로 옮기면 된다. 어순을 무시하면 감탄사 "아" 대신 "~얼마나 들어왔는가!" 정도로 옮기면 좋을 것이다. 또 위 패러디에서도 해석은 "들으라,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보다 "아,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가 나을 것이다. 어순에 구애받지 않고 매끄럽게 옮기려면 "빨간 코 순록 흐로둘프 / 그 짐승은 콧구멍이 어찌나 흐리지 않던가" 정도일 텐데 Næfde '가지지 않았다'와 unsciende '반짝이지 않는'의 이중 부정 형태라서 이런 형태의 감탄문으로 바꾸기는 약간 무리이다.

고대 영어 시는 두운 반복과 묘사적 완곡어법을 즐겨 쓴다. 《베오울프》의 첫 문장에서 Gar-Dena와 gear-dagum, þeod-cyninga와 þrym에서 두운 반복을 볼 수 있다. 고대 영어 시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낱말을 연상시키는 낱말 두 개를 조합하여 돌려 표현하는 시적 완곡어법을 많이 썼는데 같은 게르만어 계통인 고대 노르드어(고대 아이슬란드어) 시에서 폭넓게 쓰이므로 이를 아이슬란드어 이름에 따라 '켄닝그(kenning)' 또는 영어식 발음에 따라 '케닝'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몸을 banhus (ban '뼈' + hus '집')라고 부른다던지 바다를 hronrad (hron '고래' + rad '길')라고 부르는 식이다. 덴마크인들을 '창의 덴마크인'이라는 뜻인 Gar-Dene (gar '창' + Dene '덴마크인', 속격은 Gar-Dena)로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묘사적 어법이다.

루돌프(흐로둘프)에 관한 위의 시에서도 Hrodulf와 hrandeor, Næfde와 nieten, næsðyrlas 등에서 두운 반복을 볼 수 있다. 또 '순록'을 hofberend (굽을 가진 자), '썰매'를 hrædwæn (날랜 수레)으로 표현하는 등의 완곡어법을 통해 고대 영어 시를 능숙하게 패러디했다.

Rudolph는 게르만어계 이름으로 게르만 조어로는 *Hrōþiwulfaz로 복원할 수 있다. '명성'을 뜻하는 *hrōþiz와 '이리'를 뜻하는 *wulfaz가 결합한 것이다. 고대 영어에서는 이게 Hrōþwulf/Hrōðwulf 또는 Hrōþulf/Hrōðulf가 되었는데 위의 시에서는 Hrodulf로 쓴 것이 살짝 아쉽다. 영어에서는 이 이름이 별로 쓰이지 않았고 후에 독일어 Rudolf '루돌프', 네덜란드어 Roedolf '루돌프' 등 및 라틴어형 Rudolphus '루돌푸스' 등의 영향으로 다시 Rudolph로 소개된 것이다. 역사 인물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Rudolf II, 1552년~1612년), 나치 독일의 정치가 루돌프 헤스(Rudolf Heß, 1894년~1987년) 등이 유명하며 뉴욕의 전 시장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의 본명도 루돌프(Rudolph)이다.

게르만어계 이름에는 '이리'를 뜻하는 *wulfaz에 해당하는 요소가 흔히 등장하는데 《베오울프》의 주인공 이름인 Beowulf에서도 볼 수 있다. 정확한 어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첫 요소가 '벌'을 뜻하는 고대 영어의 beo라면 Beowulf는 '벌이리'를 뜻하는 것이 된다. 꿀을 좋아하는 곰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라틴어로 된 첫 문장에 나오는 Rangifer tarandus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가 정한 순록의 학명이기도 한데 원문에서 Tundra-Wanderer '툰드라의 방랑자'로 번역했지만 근거는 없어 보인다. 스위스의 박물학자 콘라트 게스너(Conrad Gesner, 1516년~1565년)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 라틴어에서 순록을 rangifer 또는 raingus라고 불렀는데 라프족, 즉 스칸디나비아 북부의 원주민 사미족은 reen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사미어에서 순록을 이르는 단어는 방언에 따라 puäʒʒ, boazu, boatsoj, båtsoj, bovtse 등이니(출처) 오히려 순록을 이르는 고대 노르드어 hreinn에서 유래한 중세 스칸디나비아어 형태를 사미어로 잘못 안 것일 수 있다. 고대 노르드어에서 갈라져 나온 스웨덴어에서는 순록을 ren이라고 한다. 고대 노르드어 hreinn은 아마도 '뿔', '머리'를 뜻하는 인도유럽조어 어근 *ḱer-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편 tarandus는 테오프라스토스(Θεόφραστος Theóphrastos), 아리스토텔레스(Ἀριστοτέλης Aristotélēs) 등 고전 그리스 학자들이 언급한 고대 그리스어로 τάρανδος tárandos라고 부르는 동물에서 따왔다. 소만한 크기의 사슴으로 색을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만약 순록을 이르는 것이 맞다면 철에 따라 털갈이를 하는 것이 와전된 것일 수 있다.

대영 도서관 소장 필사본 할리 MS 3244 (Harley MS 3244) ff 36r-71v의 동물우화집(bestiarum)에 나오는 parandrus는 tarandus와 같은 동물로 보인다(Wikimedia, Public Domain).

영어에서 순록을 reindeer '레인디어'라고 하는데 '고삐'를 뜻하는 영어 단어 rein '레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앞서 언급한 고대 노르드어 hreinn은 '짐승'을 뜻하는 dýr와 합쳐서 hreindýri로 쓰이기도 했다. 고대 노르드어에서 나온 또 다른 언어인 현대 아이슬란드어의 hreindýr '흐레인디르'는 여기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쓰지 않지만 예전에는 스웨덴어에서도 같은 원리로 rendjur '렌유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어의 reindeer는 중세 영어에서 이와 비슷한 중세 스칸디나비아어 형태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대 영어에서부터 이미 위의 시에서 쓴 hrandeor를 쓴 것 같지는 않다.

원래 고대 영어의 deor는 그에 대응되는 고대 노르드어의 dýr처럼 사슴에 한정되지 않은 '짐승'을 뜻했다(그러니 위의 시에서 laddeor는 '우두머리 사슴'보다는 '우두머리 짐승'으로 쓰는 것이 사실 정확하다). 그러다가 중세를 거치면서 영어의 deer는 '사슴'으로 의미가 축소되었으니 영어에서 사슴과에 속하는 순록의 이름인 reindeer에 사슴을 뜻하는 deer가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이다. 순록을 이르는 독일어의 Rentier, 네덜란드어의 rendier도 영어처럼 중세 스칸디나비아어에서 따온 말인데 독일어의 Tier, 네덜란드어의 dier는 그냥 '짐승'을 뜻한다.

보너스로 〈루돌프 사슴 코〉 시조 버전:

루돌프 사슴 코는 빨갛게 빛이 나서
나머지 사슴들의 놀림거리 되었으나
산타의 썰매 이끈 후 명성 널리 떨치네

'캥거루'라는 이름의 유래 어원

'캥거루'라는 이름은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영국인들이 원주민에게 동물 이름을 물었을 때 '못 알아듣겠다'라고 대답한 것을 동물 이름으로 잘못 이해해서 붙었다는 속설이 있다. 흔히 인용되는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사실과 다르다.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이끄는 인데버호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에 정박했다. 쿡의 이름을 딴 현재의 쿡타운 근처이다. 쿡의 항해 일지에는 해안에서 만난 원주민들이 쓴 수십 개 단어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구구이미디르어라는 언어를 썼는데 오늘날 780명 정도만이 모어로 쓴다. 이 언어 이름은 현대 철자법으로 Guugu Yimidhirr라고 적지만 예전에는 Koko Yimidir, Koko Yimidjir 등으로 표기했다.

쿡의 단어 목록에 캥거루는 kanguroo로 기록되어 있다. kanguru, kangooroo라는 철자로도 쓰였는데 오늘날 영어에서는 kangaroo로 정착했다. 언어학자 존 해빌런드(John B. Haviland)의 1974년 연구("A Last Look at Cook's Guugu Yimidhirr Word List", Oceania 44: 216–232)에 따르면 현대 구구이미디르어에서 지금은 희귀한 크고 검은 캥거루 종을 gangurru 또는 ngurrumugu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 지역의 대형 캥거루로 동부회색캥거루(Macropus giganteus)가 있긴 한데 희귀종은 아니니 정확하게 무슨 종을 이르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쿡이 기록한 말은 분명히 캥거루의 일종을 일컫는 이름이었으며 원주민이 '못 알아듣겠다'라는 뜻으로 한 말이라는 속설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동부회색캥거루(Wikimedia: fir0002 CC BY-NC)

원 언어의 발음은 '캥거루'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 현대 구구이미디르어 gangurru는 [ɡaŋʊrʊ] '강우루'로 발음된다. 구구이미디르어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여러 언어처럼 폐쇄음의 유무성음 구별이 없어서 음소로서는 /k/ 대신 /ɡ/만이 있는데 Guugu Yimidhirr를 예전에 Koko Yimidir라고 썼던 것처럼 쿡은 이를 [k]로 인식하여 kanguroo라고 쓴 것이다. 한국어에서처럼 어두의 /ɡ/는 무성음화하여 [k]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다. 요즘에는 유무성음의 구별이 없는 오스트레일리아 언어를 표기할 때 b, d, g 등 유성음을 나타내는 글자로 통일하거나 p, t, k 등 무성음을 나타내는 글자로 통일하지만 예전에는 유럽인 입장에서 들리는대로 둘을 섞어서 적었다.

쿡이 쓴 철자 kanguroo에서 ng는 'ㅇ' 받침에 해당하는 소리인 [ŋ]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어중의 ng가 singer [ˈsɪŋəɹ] '싱어'에서처럼 /ŋ/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finger [ˈfɪŋɡəɹ] '핑거'에서처럼 /ŋɡ/를 나타낼 수도 있으므로 쿡이 의도한 발음과 달리 영어 화자들은 kanguroo를 보고 원어에 없는 /ɡ/를 삽입하여 발음하였다. 또 e가 뒤따르지 않는 영어 철자 ang에서 a는 /æ/로 발음되므로 첫 음절의 a는 /æ/가 되었으며 영어식 발음에서 강세가 없는 가운데 음절이 불분명한 모음인 /ə/가 되어 [ˌkæŋɡəˈɹuː] '캥거루'가 된 것이다. 이 불분명한 가운데 음절 모음 때문에 후에 영어에서는 kangaroo라는 철자로 굳어졌다.

다른 유럽 언어에서 쓰는 형태를 보면 옛 영어 철자 kanguroo/kanguru/kangooroo를 따라 가운데 음절을 '우'로 쓰는 것이 많다. 프랑스어에서는 kangourou [kɑ̃ɡuʁu] '캉구루'로, 포르투갈어에서는 canguru [kɐ̃ŋguˈɾu] '캉구루'라고 쓴다. 독일어에서는 Känguru [ˈkɛŋɡuʁu] '켕구루', 덴마크어에서는 kænguru [kʰɛŋˈɡ̊uːʁu] '켕구루'인데 영어의 /æ/를 /ɛ/로 흉내낸 것이다. 스웨덴어에서는 전설 모음인 /ɛ/ 앞에서 일어나는 k의 발음 변화 때문에 känguru [ˈɕɛŋːɡʉrʉ] '솅구루'이다. 핀란드어에서는 고유어에 /ɡ/가 없고 철자 ng가 /ŋ/을 나타내기 때문에 kenguru [ˈkeŋːuru] '켕우루'가 된다. 네덜란드어에서도 영어의 a /æ/를 /ɛ/로 보통 흉내내지만 kangoeroe는 프랑스어의 영향인지 [ˈkɑŋɣəru] '캉후루'로 발음한다. 네덜란드어에서는 g가 보통 마찰음 /ɣ/를 나타내며 한글 표기로는 'ㅎ'으로 적는다(여기서 쓰는 한글 표기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되 ng 조합에서 g의 표기는 실제 발음을 따른다).

러시아어로는 кенгуру (kenguru) [kʲɪngʊˈru] '켄구루'라고 하는데 러시아어에서는 보통 영어의 a /æ/를 е (e)로 흉내내지 않으니 독일어를 거친 형태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에스파냐어에서는 canguro [kaŋˈguɾo] '캉구로', 이탈리아어에서도 canguro [kaŋˈguːro] '캉구로'라고 하며 그리스어에서도 καγκουρό kagkouró [kaŋguˈro] '캉구로'라고 한다. 영어 철자의 -oo를 [o]라고 본 것인데 사실 oo가 '우' 비슷한 음을 나타내는 언어는 영어 외에 거의 없으니 잘못 안 발음이지만 이해할만하다.

영어에서 kangaroo라는 형태가 정착된 것은 유럽 여러 언어에서 kanguroo/kanguru/kangooroo 형태로 퍼진 이후의 일로 보인다. 그러니 오늘날 kangaroo 비슷한 형태를 쓰는 언어들은 대개 비교적 최근에 영어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영국 웨일스 지방에서 쓰는 웨일스어의 cangarŵ [kaŋɡaˈruː] '캉가루', 힌디어 कंगारू kaṃgārū [kəŋgaːˈruː] '캉가루' 등을 들 수 있다.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에서는 영어 kangaroo를 원형으로 삼되 철자 a를 '아'로 읽은 '캉가루'를 표준으로 삼으며 일본어에서도 カンガルー kangarū [kaŋɡaꜜɾɯː] '간가루'라고 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둘 다 말레이어를 공용어를 쓰는데 대신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라고 부른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둘을 합쳐서 '말레이인도네시아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같은 말레이인도네시아어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에서는 영어의 영향으로 kanggaru [kaŋɡaru] '캉가루'라고 하고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네시아에서는 네덜란드어의 영향으로 kanguru [kaŋuru] '캉우루'라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주로 쓰는 아프리칸스어는 네덜란드어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kangoeroe [ˈkɑŋɣəru] '캉후루'를 쓰는 네덜란드어와 달리 kangaroe [kɑŋɡəˈru(ː)] '캉가루'라고 한다. 가운데 음절 모음을 a로 적는 것은 영어의 영향일 수 있다. 그런데 아프리칸스어 kangaroe의 가운데 음절 a와 네덜란드어 kangoeroe의 가운데 음절 모음 oe는 철자는 달라도 둘 다 불분명한 모음 [ə]로 발음된다. 이 때문에 실제로 네덜란드어에서도 표준 철자는 아니지만 kangaroe, kangeroe 등으로 쓰기도 한다. 불분명한 모음 발음 때문에 영어에서 kanguroo가 kangaroo로 바뀐 것처럼 아프리칸스어에서도 이런 발음 때문에 철자가 바뀌었을 수 있으니 아프리칸스어에서 kangaroe라고 쓰는 것은 꼭 영어의 영향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아프리칸스어 화자들은 영어 화자들과 많이 접촉하였고 지금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2개 공용어 가운데 영어가 아무래도 위상이 제일 높기 때문에 아프리칸스어 화자 대부분이 영어를 배우므로 아프리칸스어 kangaroe는 영어의 영향일 개연성이 충분하다. 네덜란드어에서는 g를 마찰음 /ɣ/로 발음하지만 아프리칸스어에서는 영어처럼 폐쇄음 /ɡ/를 쓰는 것을 봐도 그렇다. 네덜란드어와 아프리칸스어에서 /ɡ/는 고유 음소가 아니고 더 최근에 들어온 차용어에서만 쓰이는데 오래된 차용어일수록 마찰음 /ɣ/ (네덜란드어) 또는 /x/ (아프리칸스어)로 대체되기 십상이다.

구구이미디르어는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쓰이던 수백 개의 언어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사용 지역에 제임스 쿡의 인데버호가 정박하는 바람에 전세계 수많은 언어에 '캥거루'라는 단어를 퍼뜨릴 수 있었다. 물론 영어식 철자 때문에 원 발음과는 차이가 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언어 가운데 아마도 가장 많은 단어를 퍼뜨린 것은 현재의 시드니 주변에서 쓰인 다루그어(Dharug)일 것이다. '코알라', '왈라비', '웜뱃', '딩고' 등 동물 이름과 '부메랑'은 원래 다루그어에서 왔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동물인 캥거루는 북동부 해안의 한 구석에서만 쓰이고 지금은 780명 정도만이 모어로 쓰는 구구이미디르어에서 부른 이름이 전세계에 퍼진 것이다.

김밥은 이제 [김ː빱]으로 발음해도 된다 한글과 한국어

그동안 '김밥'의 표준 발음은 [김ː밥]만이 인정되었다('ː'는 장음 표시). 표준어의 근간이 되는 이른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에서 원래 '김밥'을 이렇게 발음해왔기 때문에 이것을 표준 발음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 2016년 3/4분기 수정 내용을 보면 '김밥'의 발음 추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김ː밥]이 계속 표준 발음으로 인정되지만 이제는 [김ː빱]도 추가로 허용되는 것이다.

(Flickr: Hyeon-Jeong Suk CC BY 2.0)

예전부터 그랬는지 더 최근의 일인지는 모르지만 요즘에는 분명히 [김빱]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많다(현실 발음에서는 모음의 장단 구별이 사라진지 오래이므로 장음 표시는 생략한다). 이것은 사잇소리 현상 때문에 '밥'의 첫소리가 된소리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어의 사잇소리 현상은 합성 명사에 나타나는데 합성 명사라고 다 적용되지는 않는다. '나무로 만든 집'을 뜻하는 나무집 [나무집], '나무를 파는 집'을 뜻하는 나뭇집 [나무찝] 같이 앞뒤 형태소의 의미 관계에 따라 사잇소리가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언제 적용되고 언제 적용되지 않는지 규칙으로 설명하기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예외도 많다. 예를 들어 '비빔밥'은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나 [--빱]이지만 의미 관계가 유사한 '볶음밥'은 사잇소리 없이 [--밥]으로 발음되는 것을 설명할 규칙을 찾기는 힘들다.

'쌀밥', '계란밥' 등 앞의 형태소가 밥에 들어가는 재료를 나타낼 때에는 보통 사잇소리 없이 [밥]으로 발음한다. '김밥'도 비슷한 의미 관계로 보면 사잇소리가 없는 전통 표준 발음이 설명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김밥'에서 사잇소리를 넣는 것은 김이 재료로 쓰인다 해도 의미 관계가 '쌀밥', '계란밥'과는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앞 형태소가 한자어가 아니고 받침이 없는 경우에는 '냇가', '나뭇잎'과 같이 사이시옷을 넣을 수 있으므로 철자만 봐도 사잇소리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김밥'과 같은 경우는 철자만으로는 사잇소리가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 사잇소리를 쓸지 언중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국립국어원에서는 '잎새', '이쁘다' 등 현실 언어에서 기존 표준어 '잎사귀', '예쁘다' 등과는 다른 형태로도 쓰이는 것을 복수 표준어로 추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김밥'의 표준 발음을 [김ː밥]과 [김ː빱] 둘 다 허용하는 표준 발음 추가도 표준어 규정을 현실에 좀 더 가깝게 하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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